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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국가 브랜드는 ‘거리의 간판’에서 나온다

MB와 오세훈은 행동해야 한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국가 브랜드는 ‘거리의 간판’에서 나온다

국가 브랜드는 ‘거리의 간판’에서 나온다

강릉시의 ‘아름다운 간판 가꾸기’사업의 결과, 어지러웠던 경포해안상가(위)가 깔끔하게 정비됐다(아래).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2009년 12월12일 “전국 각지에 설치된 간판 555만여 개를 일제 정비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는 ‘혼’이 느껴졌다.

이명박 정권의 선전구호인 ‘선진화’가 처음으로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 김대중, 김정일은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눈을 뜨면 접하는 건 도시이고 거리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간판이다. 이런 점에서 간판 정비란 생활사(史) 측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된다.

한국 거리의 ‘주목 투쟁’

그러나 이 장관의 보고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은 서민경제가 어려운 만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본 뒤 시행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했다. 싱거운 결말이었다. 간판 정비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그 동력이 식어버렸다.

역대 정부와 시 당국은 ‘간판이 대수인가’라는 태도로 이 문제를 방임해왔다. 대한제국도 수도 한양 거리의 기와지붕 위에 올려진 조화롭지 못한 간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서민 생계가 어렵다’라는 논리는 지금이나 100여 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거리에서는 ‘주목 투쟁’(강준만)이 일상화됐다. 그러한 전통의 결과로 지금 모든 상가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크고 화려한 간판을 내걸어 누구도 돋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서울, 인천, 부산, 제주 등 한국의 국제화 도시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간판 공해를 안고 있다.

조흡과 강준만은 2009년 우리나라의 간판 문화에는 다섯 가지 속성이 있다고 했다. 속도주의, 평등주의, 형식주의, 최대주의, 냉소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해외의 학자와 미디어의 비판적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 수준을 대표하는 두 가지 아이콘이 ‘성냥갑 아파트’와 ‘간판’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지 못하는 이러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그대로 방치하는 한 ‘국가 브랜드(이명박)’나 ‘도시 디자인(오세훈)’ 캠페인은 말의 잔치이고 공허할 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 디자인 수도- 서울’을 강조하고 여기에 엄청난 예산을 사용해왔지만 그의 임기 내내 일부 시범사업을 빼면 시내의 간판 문제를 거의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시의 강석희 시장은 내게 “간판은 도시 디자인의 분자이고 원자”라고 말했다. “어지러운 간판을 그대로 두고는 어떠한 디자인도, 녹색 친환경도 빛을 잃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어바인시는 ‘잘 정돈된 고급스러움’으로 2008년 ‘미국 내 가장 살기 좋은 지역 3위’에 올랐는데 ‘작고 차분한 간판 문화’의 유지를 위한 시 당국의 규제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G20’ 기회 놓치지 말라

1988년 ‘88올림픽’ 때 노태우 정권이 벌인 질서문화 캠페인이 그 사회통제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는 간판 문화 개혁의 출발점이 될 충분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러한 기회를 사장시켜선 안 된다. 적어도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 주변만이라도 대대적 정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런 곳은 영세 상가가 적고 정비 효과가 크다. 도심과 부도심으로 확산하면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운영의 묘를 내면 된다. 문제는 국가 브랜드, 도시 디자인에 대한 행정가의 깊은 철학과 실행 의지다.

신동아 2010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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