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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읽기 ⑨

아파트 모델하우스

욕망의 전시장, 간절한 꿈의 신기루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아파트 모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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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목표’를 확인하러 들어가서는 마치 금방이라도 살 것처럼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곳. 가질 수 없는데도 만져보고 앉아보고 누워보며 마음속 꿈의 공간과 저울질해보는 곳. 인생을 걸고 매달려도 손에 넣기 어려운 대형 아파트를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놓고 주인인 양 행세할 수 있는 모델하우스는 화려한 연극무대와 닮았다. 길어야 6개월 공연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자동차들은 전진하지 않는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은 채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아무래도 신호 교대를 두 번쯤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출근 시간대의 사거리는 사방의 골목에서 기어나온 차들로 꽉 차 있다. 신도시의 사거리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간선도로를 찾아 헤매는 차륜의 행렬은 마치 숙영지를 떠나가는 지친 군사들처럼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담배 한 모금을 위해 차창을 연다. 담배 연기는 비좁은 실내를 벗어나 영하의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일순간 매서운 바람이 답답한 차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차창을 올리다가 문득 건너편 건물을 바라본다. 마침내 저 인공의 가설물이 단장을 끝냈다.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공사 중이었다. 개관을 하지 않아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필경 바깥의 단장만큼이나 내부도 섬세하게 다듬어냈을 것이다. 저 가설물은 연말과 연초의 숨가쁜 시간대에 걸쳐 꾸준히 치장을 했다.

예전에는 다른 형상이었다. 다른 건설사의 다른 아파트 브랜드 모델하우스가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그 자리를 새 건설사의 새 브랜드가 꿰찬 것이다. 신도시 중심가의 텅 빈 부지는 꽤나 오랫동안 여러 건설사의 브랜드로 자주 옷을 갈아입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혹은 교통체증 때문에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한참이나 사거리 한복판에 서있을 때면 수시로 변하는 저 가설물의 외양을 바라보곤 했다. 그 외양에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욕망이 함축되어 있다.

가설무대 위의 연극배우

이 비루하고 헛헛한 삶을 일거에 해방시켜줄 것만 같은 욕망! 이 곤고한 한반도의 삶을 지탱케 하는 거의 유일한 목표! 생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 부어야만 하는 간절한 신기루! 비록 20년 장기 상환의 기나긴 멍에를 짊어질지라도 우선 그 공간 안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애를 밀어넣어야 하는 생활의 전체, 곧 아파트라는 이 시대의 화두가 바로 저 가설물의 화려한 외장과 근사한 인테리어에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에 가보셨는가? 그렇다면 그 행렬의 팽팽했던 긴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인파 때문에 번호표를 받고서야 입장이 가능했던 모델하우스도 적지 않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모델하우스 부지에 들어서면 우선 감색 작업복 차림의 안내원 수신호에 따라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마음속엔 두 가지 무늬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번잡한 도로를 정면으로 한 모델하우스 전면은 이국적이며 화려하게 치장돼 있는데, 그 주차장은 대체로 비포장의 공사 현장이다. 전면의 근사한 화장과 대조적으로 모델하우스의 뒷모습은 임시 가건물 특유의 골조를 덩그러니 드러내놓고 있다. 전 생애를 바쳐야만 이룰 수 있는 중형 아파트를 향한 꿈은 비포장의 임시 주차장만큼이나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윽고 입구에 들어선다. 널찍하게 마련된 전시 로비와 안내 데스크와 급하게 가져다 놓은 듯한 화환과 총천연색으로 큼직하게 써놓은 문구들이 마중을 한다. 평형별로 구획된 곳으로 들어가면 텔레비전 광고에서 자주 보았던 최신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두리번거린다. 당신도 두리번거린다. 가공의 거실을 걸어보고 주방의 장식장이나 식탁을 손으로 만져보고, 간혹 물이 나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싱크대 수도꼭지를 돌려보기도 한다. 하나의 연극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가설무대 위의 연극배우처럼 임시로 설치된 소도구들을 만져보고 적당한 자리에 배치된 소파나 장식 의자에 앉아보는 것이다.

동시에, 당신처럼 그 공간을 찾아온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다. 애들 방이 조금 작지 않으냐는 어느 부인의 뒤를 따라 서재라는 임시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 부부는 시공사에서 서재라고 명명한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을까 잠깐 상의하면서도 그들 마음속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야, 이 정도면 바깥에 나갈 이유가 없겠어.” 남편이 말을 한다. 그는, 당신처럼, 정말로 근사한 서재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노부모의 거처나 직장 다니는 큰아들 방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이 모델하우스에서만큼은 그 서재가 바로 그 남편, 곧 당신의 몫인 것이다. 시공사 측이 서재에 배치해놓은, 저 19세기 말엽 스코틀랜드 디자이너 찰스 매킨토시풍의 중후한 책상과 의자 앞에서 당신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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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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