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모텔의 진화

하룻밤 숨어들던 곳에서 다중문화 공간으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0-04-06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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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레파킹, 적립카드, 인터넷 무료사용, 간식 제공, 무한 대실, 그리고 고객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예의와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죄책감마저 없애주기 위해 신경 쓴 인테리어와 목욕용품. 요즘 모텔들이 이렇다.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용 후기와 댓글을 남긴 고객에겐 적절한 보상을 한다. 시설이 훌륭하고 서비스가 좋은 모텔을 이용하려면 인터넷 예약은 필수다.
    모텔의 진화
    “깔끔한 스타일! 남자친구가 딱 좋아할 스타일! 프런트에서 친절하게 맞이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역시 친절은 기본! 간식도 많아서 좋았어요.”

    아니, 이런 곳이 있다니, 궁금하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용 후기’의 한 토막이다. 스타일이 살아 있는 공간, 친절하고 간식도 제공되는 공간, 어디일까? 가보고 싶다. 이어지는 ‘이용 후기’를 좀 더 살펴보자.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ㅎㅎ. 인테리어가 독보적이고, 앤티크한 가구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해서 고풍스럽군요.”

    “어제 이용했던 605호실입니다. 공휴일이라서 빈방이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해봤는데요. 겨우 하나 남았다고 해서 얼른 갔지요.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방이 따뜻하고 깨끗해서 괜찮았어요. ㅋㅋㅋ.”

    “일 때문에 708호에서 숙박하게 되었네요, 벽면이 황금 벽면. 불이 밝은 편이고 침대가 넓고 푹신해요~.”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화곡동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소문대로 말이 필요 없는 곳이네요. 역시 ‘서울○○○’이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이제 조금은 알 듯하다. 화려하거나 깔끔한 인테리어에 거울, 침대, 수건 등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공간!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중에는 바로 그 감각의 공간에 대한 상세한 점검과 평가까지 덧붙이는 이용자도 있다.

    “DVD 플레이어는 10만원도 안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서비스보다 DVD 타이틀을 비치해도 좋을 듯. 화질이 떨어지고 잡음이 나던데, 단자를 보니 RGB 연결이 안 되어 있더군요. DVD 기기를 바꾸고 컴포지트로 연결하면 완벽해집니다.”

    이처럼 꼼꼼한 ‘이용 후기’이다보니 읽는 사람도 댓글로 화답한다. ‘객실 정말 깔끔해 보이네염.’ ‘화장실 구조가 특이하네요. 불편하진 않나요?’ ‘널찍한 객실이 좋네요. 자외선 소독기도 눈에 띄는군요.’ ‘예약 안하면 못가겠네요. 워낙에 인기가 많은 곳이라.’ ‘일회용품이 너무 일회용품스럽더군요.’ ‘객실이 넓고 소음 차단도 확실하지만 영화, 간식, 5.1채널 등이 아쉽군요.’

    궁금하다. 그리하여 나는 모텔을 찾아 나섰다.

    화곡동 모텔이 유명한 이유

    모텔의 진화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골목

    왜 화곡동일까? 우선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넷의 모텔 안내 사이트들을 검색해 보면, 서울의 경우 몇 군데 거점 지역이 떠오른다. 강남, 종로, 영등포, 신촌 등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다. 강남의 신천이나 잠실은 바로 강남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유가 되고 종로는 1970년대부터 지하철 1호선과 직장인과 맥줏집으로 인해 유서가 깊은 곳이며, 신촌은 젊은 세대의 아지트라는 간명한 이유가 있다. 영등포는 기차와 지하철이 지나는데다 온갖 형태의 유흥업소와 쇼핑 공간이 즐비해 유동인구가 엄청나다. 그런데 화곡동은? 나는 화곡동 모텔촌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 일대의 모텔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용 후기’에 따르면, 화곡동이 개발되기 전에 큰 하천이 있었다. 그 양옆으로 허름한 주택과 논밭이 있었는데 경인고속도로가 뚫리고 하천이 복개되면서 소규모 공장이나 유통시설이 들어서고, 유흥업소와 숙박시설도 빠르게 번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옛날 유일한 국제관문 노릇을 했던 김포공항이 인접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화곡사거리에서 곰달래길로 접어들면 그 전면과 이면 도로에 모텔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한 곳은 널찍한 객실 안에 간이 수영장까지 있어 성탄절이나 연말이면 단체 손님의 예약 전화가 줄을 잇는다. TV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쓰였다.

    그 가운데 한 곳, 차를 밀어 넣기 좋은 모텔로 핸들을 꺾자 곧 주차관리원이 마중을 나왔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일대의 모든 모텔은 건물 안팎에 CCTV를 설치해놓고 고객이 들고나는 것을 신속하게 파악한다. 도심에, 심지어는 주택가와 인접해 있지만 이런 공간에 방문자들이 할인매장이나 미용실에 갈 때처럼 무덤덤하게 찾아가지는 않는다. 약간의 호기심과 망설임과 기대와 주저함이 뒤섞여 있게 마련인데, 고객의 이런 일렁이는 마음을 재빨리 정중하게 안심시켜주는 것 또한 모텔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일종인 것이다.

    번호판 가리기는 범죄?

    중년의 주차관리원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일급 호텔의 도어맨과 엇비슷한 차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호텔 도어맨은 차량의 문을 익숙한 솜씨로 열어주는 반면 모텔의 주차관리원은 고객이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혹시라도 차 안에서 커플끼리의 ‘약속’이 설익어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고객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이 업계 종사자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그것은 고객 서비스 차원이기도 하고, 평일 저녁에 모텔을 방문하는 사람과 그들의 주차 편의를 도와주는 사람 사이에 작용하는 심리적인 회피 기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소문난 갈비집에 차를 세우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나의 경우는 조금 예외였다. 주차관리원은 혼자인 방문자를 조금은 의아하게 바라보더니, 방을 사용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왜 혼자서?’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를 대신해 주차를 했다.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바라보니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다른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내 차 번호판도 널찍한 판자로 가려졌다.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이렇게 숙박업소에서 자동차의 번호판을 가리는 것은 불법이다. 2008년 10월13일, 서울 강남의 어느 모텔 종업원이 늘 하던 대로 모텔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의 번호판을 직사각형 판으로 가렸는데, 이날 단속을 나온 경찰이 이 종업원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겼다. 자동차관리법(10조)은 ‘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 종업원은 “고객들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고 항변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1심 재판부는 종업원의 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번호판을 가리는 것을 무조건 처벌 대상이라고 한다면 다른 차량의 번호판을 우연히 가리고 주차한 경우나 주차장에 셔터를 설치한 경우까지 모두 처벌해야 하는데 이는 부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종업원이 모텔 이용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번호판을 가린 것은 자동차의 효율적 관리나 안전 확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에 검찰은 “모텔을 이용하는 범죄자들이 번호판을 가려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단속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이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모텔 종업원에게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2009년 3월의 일이다. 2심 재판부는 “자동차관리법은 번호판을 가리는 금지 행위에 대해 장소적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법적 다툼에도 불구하고 모텔에서는 여전히 고객 차량의 번호판을 가린다. 그렇다고 이 대도시가 범죄 소굴인 건 아니고, 사랑의 공화국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범죄나 사랑이나 은밀하게 진행되기는 마찬가지다. 범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모든 차량의 번호판을 노출해놓는 쪽보다는 은밀한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 번호판을 살짝 가려주는 쪽으로 현실의 심정적 무게 추가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주차관리원은 홀로 찾아온 방문자를 위해서도 번호판을 말끔히 가려주었다.

    남루한 여인숙의 기억

    모텔의 진화

    경기 수원의 한 모텔.

    프런트의 여직원은 인터넷 이용 후기에 나와 있는 대로 친절하게 마중을 했다. 물론 그녀도 혼자서 방문한 사내를 훑어보기는 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따로따로 오는 커플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그런가보다’ 생각했는지 702호실 키와 1000원짜리 일회용품 세트를 내놓았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 기억 속의 여인숙과 여관과 모텔들을 상기했다. ‘우웅~’ 하는 기계음을 따라 7층까지 올라가는 데 겨우 10초쯤 걸렸는데, 그 사이 열아홉 살 때 하룻밤 묵었던 청량리 지중해다방 뒷골목의 여인숙에서부터 지지난해 심포지엄 참가차 이용했던 목포 하당동 모텔 밀집 지구까지 한순간에 필름이 돌아갔다.

    청량리 지중해다방 뒷골목의 여인숙에서 잠을 다 이루지 못하고 술에 취한 동행자를 남겨두고 혼자서 경동시장 쪽으로 걸어 나왔던 그 겨울은 ‘딜리트(Delete)’ 키로 지워버리고 싶은 멀미나는 기억이다. 점퍼도 벗지 못한 채, 이불은 술에 취한 동행자의 몫으로 밀어놓고, 누런 비닐장판 한쪽 구석에 뜬눈으로 웅크려 있었다. 문득 ‘이러한 시공간과는 재빨리 작별해야 한다’는 확신을 안고 미명의 새벽거리를 털레털레 걸어 나오다 돌아보았던 그 여인숙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남루한 공간이다. 나는 얼마 후 입대 영장을 받았다.

    그에 비해 목포 하당동의 모텔촌은 근사했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하룻밤 머무른 공간의 현대성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 도시로 출장을 가면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인근의 관광호텔 대신에 신장개업한 모텔을 이용한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부터 그랬다. 심포지엄이나 특강, 혹은 취재를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면 잠자리가 편한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 사용이 편리한 곳을 선호하게 된다. 2007년 경남의 어느 소도시 관광호텔에서는 크게 낭패 본 일이 있었다. 별 세 개짜리 관광호텔이었는데 객실에 컴퓨터가 비치되지 않았을뿐더러 노트북 이용자를 위한 인터넷 랜 시설도 없었다. 할 수 없이 1층 로비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했는데, 500원을 넣으면 20분 동안 작동하고 외장 하드나 메모리 사용은 불가했다. 그날의 원고 마감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정말 그랬는데, 요즘 경향 각지의 모텔은 애틋한 시선을 교환하는 커플은 물론 이런저런 일로 하루를 유숙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편의를 제공한다. 다음은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모텔촌에서 내가 메모한 것이다. 지난해 가을 센텀시티 취재차 부산에 갔을 때 일이다. 그곳 모텔의 광고 문구가 이채로워서 적어둔 것인데 순서 없이 나열해본다.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있는 모니터

    ‘해운대역에 도착해서 전화주시면 저희 모텔 차량으로 직접 모셔드립니다. 적립카드를 드립니다. 10% 적립됩니다. 광케이블 인터넷, 산소공기청정기, 연수기, 월풀 욕조, 한국성인방송, 일본성인방송, 미국성인방송, 구강청정제, 은나노 신발 살균 소독기 등이 기본 제공됩니다. 비치파라솔, 선텐의자, 비데, 홈씨어터, 스팀사우나, 여성세정기, 100인치 시네마스크린 등이 별도 제공됩니다, 특실에서는 사랑하는 분을 볼 수 있는 LCD모니터와 카메라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입실용과 퇴실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퇴실용 엘리베이터 앞으로 차를 대기시켜드립니다.’

    나는 아직도 ‘사랑하는 분을 볼 수 있는 LCD모니터와 카메라’가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10여 년 전 도심지 외곽의 모텔 입구마다 내걸려 있던 ‘러브 체어 완비’와 같은 맥락의 것일 거라고 상상해본다.

    아무튼 심포지엄 관계자들과 나는 목포의 신식 모텔을 이용하고 난 후 “과연 새로운 세기에 살고 있구나”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모텔에 구비된 시설과 도구를 ‘실제로’ 사용해봤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말이다.

    화곡동 모텔의 702호에 들어서자 목포에서 보았던 그 시설과 도구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블랙 톤을 유지한 가운데, 부분 조명들이 밀폐된 공간의 비현실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리넨(원래 의복용 섬유를 말하지만 숙박업계에서는 객실에 제공되는 각종 비품을 통칭한다)은 정확히 2인용으로 세팅되어 있다. 두 개의 베개는 흡사 이 공간이 완성된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다녀간 일이 없다는 듯, 정확하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켤레의 슬리퍼, 두 개의 컵, 두 벌의 가운, 두 대의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사진작가 이은종은 대도시 곳곳의 모텔을 가감 없이 과감하게 정면의 시선으로 찍음으로써 한 시대의 정서적 초상화를 그려내어 전시한 적이 있다. 그는 “모텔은 정해진 금액으로 일정시간 동안 점유할 수 있는 사적 공간으로, 휴식과 일탈의 자유를 만끽하게 하는 감정과 행동들을 수용하고, 가슴 후끈한 첫사랑을,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며 또 다른 사랑을, 이탈된 사랑을, 또는 집은 없지만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죄를 짓고 숨어 있는 도피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전시도록에 썼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모텔은 그 기능에 적합하도록 끝없이 회전한다. 쉬지 않고 고객이 밀려들고, 서로의 몸이 식고 나면 곧 빠져나가고, 뒤를 이어 또 다른 커플이 들어선다. 내 차를 맡았던 주차관리원은 이중삼중으로 차를 빼곡하게 정돈한다.

    ‘대실’이라는 말이 이 업계의 근간을 이룬다. 숙박하는 고객보다 대실하는 고객 덕분에 이 업종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실이라고 하면 2~3시간 머무는 것을 뜻하는데, ‘무한 대실’이라는 말도 있다. 오전에 방문한 고객에게 8시간가량 대실해주는 것이다. 새벽이나 오전 10시 전후에 숙박 고객이 빠져나가면 공실이 생기는데, 객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저녁 고객이 방문할 때까지 한낮의 고객에게 많은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월요일 대낮이면 요금이나 시간의 혜택이 더 크다. 이렇게 특정 요일이나 특정 시간대를 정해 혜택을 준다고 알려지면 ‘정보에 빠른’ 커플들의 예약이 줄을 잇는다. 모텔 업계에서는 홈페이지나 모텔 전문 사이트를 통한 홍보를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부티크텔’ ‘럭셔리텔’

    젊은 커플들에게 ‘인터넷 모텔 예약’은 익숙한 트렌드다. 이 분야의 선두 사이트는 ‘모가’(www.moga.co.kr). 2001년 포털 사이트의 카페 ‘모텔가이드’로 시작해 현재 회원수 50여만명을 자랑한다. ‘모가’는 각 지역 모텔의 시설과 서비스, 요금, 예약 정보를 제공하는데, 모텔 전문 VJ들이 다소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제휴 모텔들의 시설과 서비스를 동영상으로 소개한다. 이용자를 위해 각종 이벤트를 열고 쿠폰과 선물도 준다. 조심스럽게 골목길로 들어가 선팅 된 유리문을 반쯤 밀고 “저기, 방 있어요?” 하고 나직하게 물어보는 건 이제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젊은 커플들은 이 신생 공간에서, 사랑의 열병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숙제하고 영화 보고 게임도 한다. 40인치 이상의 평면 TV(심지어 100인치 안팎의 대형화면도 있다)에 인터넷 가능한 컴퓨터는 물론 게임기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소니사의 플레이스테이션(일명 플스)이 유행했다. 하지만 고객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3D에 의존한 남성용 게임 타이틀이 들뜬 남녀 커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것이다. 요즘은 ‘닌텐도 위’가 대세다. 게임의 원리나 방식을 몰라도 누구나 즉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이 많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위해 ‘닌텐도 위’를 선택한다.

    남루하고 칙칙했던 여인숙이나 여관이 모텔로 바뀌었고, 전동기구나 월풀 욕조를 앞세우던 과거와 달리 모텔은 이제 ‘다중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좁고 밀폐된 객실을 적절하게 꾸미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 층이나 객실에 테마를 부여하거나 아예 모텔 자체를 ‘부티크텔’ ‘럭셔리텔’ 같은 콘셉트로 치장하고 있다. 아이스크림, 계절 과일, 스낵, 팝콘, 맥주, 와인, 원두커피 등이 이 신생 공간을 부드럽게 장식한다. 자주 이용하는 고객이나 경품에 당첨된 고객에게는 백화점 상품권, 놀이공원 이용권, 패밀리 레스토랑 시식권 등도 준다. 무료 대실이나 숙박권 혹은 무한대실(8시간)이 제공되는 것은 기본이다. 생산자를 알 수 없는 저가 용품 대신에 젊은 세대가 잘 알 만한 브랜드의 목욕제품이 심리적 안정감을 더한다. 시사 주간지나 영화 주간지를 객실마다 비치한 곳도 있다. 격정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밀고 들어온 어두침침한 모텔이 아니라 정열의 한순간을 맘껏 소비할 수 있는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욕망의 공간으로 신속하게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의 어느 모텔은 숙박업소 분위기를 말끔히 털어내고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봄직한 오피스텔처럼 꾸며놓았다. 문화적으로 ‘익숙한 공간’을 꾸며놓음으로써,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서는 커플들의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인테리어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이 모텔은 총 28개의 객실을 9가지 콘셉트의 디자인으로 차별화했다. 예약한 고객이 도착하기 전에 월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둔다니, 경기 서부 권역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따악 오늘 하루만 같이 있자”

    모텔의 진화

    파주 헤이리 인근의 모텔촌.

    시설과 마케팅이 급변한다고 해서, 젊은 세대의 표현 방식이 예전과 다르다고 해서 사랑의 무늬가 금세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인숙이든 여관이든 모텔이든 러브호텔이든, 사랑의 체위도 크게 달라진 것 없고 한정된 시간 동안 서로 애틋하게 보듬고자 하는 열병 또한 쉽게 변하지 않는다.

    188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이 생겨났고 1902년에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이 세워졌다. 그때만 해도 그러한 공간은 일부 상류층과 외국인의 전용 시설이었다. 전통 사회의 주막집을 대체하는 근대적 숙박업인 여관은 1883년에서 1890년 사이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1910년 이후 일제에 의해 번성했다. 그러던 것이 ‘여관 문화’라고 할 만한 시대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지방 곳곳에서 일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를 공간이 필요했고 반대로 지방의 소도시에는 봄가을로 찾아오는 여행객이 머무를 공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각종 유흥업이 발달하면서 이른바 ‘장급 여관’이 1980년대 이후 부도심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교외에 모텔촌이 형성됐다. 러브호텔이라는 말이 나온 게 이 무렵의 일이다.

    1999년 이전의 공중위생법은 숙박업소를 면적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했다. 여인숙은 바닥 면적이 10평 이상, 여관은 객실 10실 이상, 호텔은 객실 30실 이상이었다. 이 중에서 여관의 경우 19실 이하는 을이고 20실 이상이면 갑이라 불렀는데, 이 갑에 속하는 여관이 바로 장급 여관이다. 1999년에 이 규정이 폐지되었으며 현재의 공중위생관리법은 숙박업소를 이렇게 세분하지 않는다. 2000년부터는 모든 숙박업소가 간판에 ‘호텔’이라고 내걸 수 있게 됐다. 사랑과 관계의 방식이 다채로워지면서 이러한 행정 구분과 별개로 숙박업소들은 저마다 ‘부티크텔’ 같은 신조어를 사용한다.

    나는 화곡동 모텔의 702호를 둘러보면서 이러한 변화를 증거하는 몇 편의 소설을 생각해보았다. 소설가 박영한의 중편 ‘우묵배미의 사랑’은 비닐하우스에서 이뤄진다. 서울 외곽의 자그마한 치마 공장, 그곳의 남녀 미싱사가 정분이 났다. 배일도와 공례, 그들은 매일같이 주인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만나 가마니때기에 누워 서로 사랑했다. 둘의 운명이 다하던 순간, 배일도가 공례에게 말한다. “따악 오늘 하루만 나랑 같이 있자.” 그것은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가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했을 바로 그 말이다.

    아날로그적 관계 vs 파편적 관계

    에세이스트 고종석은 ‘한국일보’에 연재한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에서 ‘열정의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여자와 처음 잠을 잔 게 열아홉 살 세밑이었다. 신촌의 허름한 여관에서였다. 잠을 잤다는 말은 정확지 않다. 나는 그 밤 한숨도 못 잤으니까. 여자(A라 하자)는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다. 통금이 해제되고 한 시간 뒤쯤, 우리는 여관을 나왔다. 어둑새벽이었다. 우리는 로터리 쪽으로 잠시 걷다가, 신촌시장의 밥집으로 들어가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그렇게 시작한 고종석의 기억 더듬기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가 뭉개졌다가 다시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건 그렇고, 아내는 나말고 몇 남자(또는 여자)에게나 열정을 느껴봤을까? 아니, 몇 남자 또는 여자와 열정을 실천해봤을까? 하나보다는 많고 넷보다는 적었으면 좋겠다. 그쯤 돼야 공평할 테니까.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많은 편이 낫겠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할 테니까.”(‘한국일보’ 2008년 7월7일자)

    그런 시대를 엇비슷하게 경과한 소설가 김훈은, 신도시의 귀퉁이마다 속속 모텔이 들어서고 이에 일부 학부모단체와 종교 관계자들이 집단 항의를 했을 때, 이렇게 쓴 적 있다. “적법하게 허가된 숙박업소에서 성인 남녀들이 자유로운 합의하에 ‘러브’를 할 때, 시장의 행정력이 이 ‘러브’를 단속할 법적 근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행정력뿐 아니라 경찰력이나 계엄령으로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태처럼 보인다. 러브호텔 주차장 입구는 비닐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비닐커튼은 자동차를 가려서 러브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장치다. 구청에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혼내 정사건, 눈먼 치정이건, 다급한 간통이건, 매춘이건 간에 러브의 익명성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간통과 치정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익명성의 존엄을 편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커튼은 위선과 기만의 장치다.”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도 모텔이라는 공간을 의미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장은진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문학동네)에서 눈먼 개와 함께 모텔을 전전하는 남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권정현은 작품집 ‘굿바이! 명왕성’(문이당)을 통해 이 사회의 ‘정상성’이라는 가혹한 시선에서 배제된 소수자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들을 모텔이라는 익명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200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미끼’로 등단한 소설가 김갑수는 바로 그 작품에서, “주머니에 있는 오천 원짜리를 세어보니 열일곱 장이었다. ‘아모르’든 ‘파인힐’이든 어디나 ‘대실료 이만 원’하고 허연 현수막으로 휘날리고 있었으니 그 애에게 줄 돈까지 셈해보면 꼭 삼만오천 원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아이는 영영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주인공은 그 아이의 휴대전화 번호도 물어보지 못한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가 김도언 역시 ‘랑의 사태’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모텔의 맨 꼭대기 666호에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한다. 김애란은 단편 ‘성탄 특선’에서 가난하고 헛헛한, 보기에 정말로 안쓰러운 젊은 커플이 편히 쉴 수 있는 모텔을 찾아 전전하는 씁쓸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비극성을 드러내온 백가흠은 어느 부부가 웰컴 모텔에 아이를 유기하고는 도망쳐버리는 ‘사건’을 들려준다.

    비교적 연배가 있는 작가들이 여관이나 모텔을 통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인간관계의 추억을 더듬어보았다면, 그보다 젊은 작가들은 이 공간이 가진 익명성, 폐쇄성, 인공성, 일시성이라는 점에 주목해 파편화되고 단절된 오늘의 관계망들을 포착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퇴실 버튼을 눌렀다. 702호에 머문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달리 만날 사람이 없었으므로 혼자 실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9시 뉴스를 시청하고, 스포츠 뉴스까지 보고 나자 나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입실문이 아니라 퇴실문 쪽으로 한걸음 나서자 출구 바로 앞에 내 차가 운전석과 조수석 쪽 문이 반쯤 열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시동이 걸려 있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신속히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아쉽게도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열린 문을 닫고, 다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주차관리원이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와서 혼자 떠나는 사람을 위해 주차관리원은 골목 바깥에 나가서 차량을 유도했다. 나는 그의 손짓을 따라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신속하게 화곡터널 방향 대로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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