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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③

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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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유엔군은 38선을 넘으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1950년 10월1일 38선을 돌파한다. 그리고 11월24일 미 육군 7사단 선발대가 압록강에 도달한다. 유엔군의 진군은 거기까지였다. 전세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앞세운 중국이 30만 대군을 파병하면서 역전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 해병 1사단도 얼어붙은 장진호에서 중국군에 포위돼 전멸의 위기를 맞는데….
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1950년 12월 흥남 사단묘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희생자 추모예배에서 미군 해병대 대원들이 전사자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1950년11월24일 함경남도 장진군 유담리.

미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장 로버트 테플렛 중령은 쌍안경에서 눈을 뗐다.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색뿐이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광활한 개마고원과 얼어붙은 장진호.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왔다.

원산에 상륙한 미 해병 1사단은 북진을 계속해서 마침내 개마고원에 이르렀다. 애초의 임무는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로 진격하는 것. 그러나 갑자기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무평리로 진격해 서부전선에서 퇴각 중인 8군을 돕는 것으로 임무가 수정되었다. 중국군 따위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 속에서 험준한 낭림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은 솔직히 겁이 났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작전장교 케니 소령이 쌍안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테플렛 중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역전의 두 해병 장교는 기분 나쁜 정적 속에서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의 실체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마치 눈 덮인 계곡 사이사이에 하얀 악마가 숨을 죽이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테플렛 중령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정찰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오자 해병대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차가운 비탈길에 쭈그리고 앉아 공수된 칠면조 고기를 뜯고 있었다. 이날은 마침 추수감사절이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에 질린 듯 잔뜩 움츠리고 있는 해병들을 보며 테플렛 중령은 과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호언대로 크리스마스를 고향에서 보낼 수 있을지 회의가 일었다. 대대 지휘소 천막에 걸린 화환에 ‘메리 크리스마스, 제기랄!’이라고 쓰인 글은 해병들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었다. 적은 두렵지 않지만 솔직히 빨리 싸움을 끝내고 돌아가고픈 심정이었다. 보급도 걱정이다. 흥남항에서 125㎞나 떨어져 있는데 보급로라고는 오로지 첩첩산중 사이를 지나는 외길뿐이다. 그 길이 차단되면 해병 1사단은 꼼짝없이 얼어붙은 장진호에 고립될 판이었다.

테플렛 중령은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빌며 상황실로 들어섰다. 그러나 테플렛 중령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하갈우리의 사단 사령부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긴급 하달된 것이다.

맥없이 끝난 원산상륙작전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총공격을 감행하면서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북한군은 무서운 기세로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국군은 패주를 거듭하며 낙동강까지 쫓겨 갔다. 이대로 한반도는 적화통일되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미국이 참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적의 허리를 끊고 낙동강 전선에서도 반격을 개시하며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군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인천상륙작전의 선봉에 섰던 미 해병 1사단은 서울이 수복되자 전선을 육군에 인계하고 다시 배를 타고 원산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세기의 도박’이라는 인천상륙작전과는 달리 원산상륙작전은 맥없이 끝났다. 북진 속도가 워낙 빨라서 해병대가 상륙하기 전에 육군이 이미 원산을 점령한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원산에 상륙한 미 해병 1사단은 강계로 진격했고 마침내 얼어붙은 장진호에 당도한 것이다.

평균해발 1000m에 달하는 개마고원은 한반도의 지붕이고, 장진호는 발전을 위해 장진강 상류에 일제가 조성한 면적이 64㎢에 이르는 넓은 인공호수다. 개마고원 한복판에 있는 함경남도 장진군은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온도가 무려 영하 40℃까지 떨어진다.

꽁꽁 얼어붙은 장진호에 도달한 미 해병 1사단은 사단 사령부와 포병 11연대를 장진호 초입의 하갈우리에 설치하고 예하의 3개 보병연대 중에서 5연대와 7연대를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 그리고 1연대를 후방 고토리에 배치했다. 장진호 동쪽은 한·소 국경으로 진출하려는 미 육군 7사단 31연대가 이동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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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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