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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⑧

서울 → 필리핀 → 가봉 → 미얀마 15년 이어진 질긴 암살극의 끝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 오세영| 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

서울 → 필리핀 → 가봉 → 미얀마 15년 이어진 질긴 암살극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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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 1·21사태로 시작된 북한의 남한 대통령 암살 기도는 무려 15년간 거듭되다 1983년 10월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로 막을 내린다.
  •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 과정에 대통령 영부인과 여러 수행원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 국내와 필리핀, 가봉, 미얀마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목숨을 노린 무모한 도발의 실체를 추적했다.
서울 → 필리핀 → 가봉 → 미얀마 15년 이어진 질긴 암살극의 끝

1983년 10월9일 아웅산 테러 당시 묘소에 도열한 각료들. 진혼 나팔이 울리면서 천장에 장치된 폭탄이 폭발하기 몇 분 전의 모습이다.

1981년 5월. 오스트리아 빈.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던 제임스 최와 찰스 스티븐 야노버는 호텔 방문이 열리자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곧 경계를 풀었다. 들어온 사람은 둘이서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두 달 만이군요. 잘 지내셨소?”

방으로 들어선 사람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빈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직함을 가진 그는 ‘35호실’로 불리는 대외정보조사부 소속으로 제임스 최와는 구면이었다.

“평양에서 재가가 떨어졌소.”

공작원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두 사람을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북한 공작원과 전문 킬러 야노버는 지금 반한(反韓)활동을 벌이고 있는 캐나다 교포 제임스 최의 중재로 한국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을 모의 중이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남조선 대통령은 7월에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오.”

공작원이 가능하겠느냐는 얼굴로 야노버를 쳐다봤다.

“7월이면 시일이 촉박한데…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오.”

야노버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니 자세한 정보를 주시오.”

“그야 물론이오. 지금 알려진 사실은 7월 중에 필리핀을 방문할 것이란 사실뿐이오.”

“착수금은….”

제임스 최가 중재하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음 달에 마카오에서 한 번 더 만나기로 합시다. 그때 자세한 정보와 착수금을 전달하겠소.”

공작원은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北, 국제 킬러와 손잡다

민주정에 조종을 울린 유신체제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그 끝을 맞았다. 그렇다고 강권통치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서울의 봄은 짧았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세로 부상하면서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장악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80년 8월27일에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유신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국민에게 인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12·12와 ‘광주’라는 ‘원죄’를 안고 있었다. 자연히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해외 교민들은 격렬하게 반정권 활동을 벌였다.

안에서 잃은 인기를 밖에서 만회할 셈으로 전두환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보다 부지런히 해외 순방에 나섰다. 미국은 현실을 인정하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고 있었다. 전두환은 1981년 3월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번에는 개정된 헌법에 따라 선출됐지만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과 북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로 이렇다 할 큰 충돌 없이 지내고 있었다. 전쟁에 의한 통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군사정권 유지가, 북은 후계자를 굳히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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