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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법과 정의는 픽션이자 환상이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법과 정의는 픽션이자 환상이다

법과 정의는 픽션이자 환상이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한 검사장 집에서 홈스테이(home stay)를 한 적이 있다.

저녁 식사 후 다소 피곤했는데 검사장은 “와인이나 한잔하자”며 기자를 계속 붙들어놓는다. 기자라는 직업이 그의 호기심을 끄는 듯했다. 그는 언론을 좋아했다. 자기가 맡은 사건이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적이 있다면서 “세상에, 내가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다니!”라고 스스로 감격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와 대화하면서 미국 검사는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다. 우선 검사가 되는 과정이 다르다. 그는 어떤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했다. 30대 초반에 진로를 바꿔 로스쿨을 졸업한 뒤 한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이어 지방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검사장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검사는 형사사범을 기소하는 것이 임무다. 범죄를 스스로 인지해 사법처리하고 경찰이 조사하는 사건을 지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검사로서 명성을 얻으려면 전자(前者)를 잘 해야 한다. 반면 그는 후자(後者)를 더 중시한다고 했다. 검찰(檢察)이란 본래 ‘경찰을 검증하는 역할’이고 그것은 ‘경찰권이 국민에게 남용되지 않도록 경찰을 검증한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검찰관(觀)이다.

미국 법조계는 전관예우 모른다

법과 정의는 픽션이자 환상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후보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그 대상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자이든 일반시민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법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재선(再選)을 원했다. ‘불공정하다’는 평판이 돌면 유권자로부터 선택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검사는 시민에게 따뜻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가 기소한 시민을, 형기를 마친 뒤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작은 도시여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러한 마음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검사장을 연임한 뒤 변호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그에게 ‘전관예우’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관뒀다. 미국 법조계에선 한국 법조계와 같은 전관예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단어조차 없다. 그래서 백과사전에 전관예우에 해당하는 영어단어가 ‘Jeon-gwan ye-u’로 표기된다. 그는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미국에서도 행정관료 출신이 퇴임 후 공직경력으로 보수가 많은 직장을 얻는 일은 흔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가 대검찰청 차장 퇴임 직후 로펌에 들어가 7개월 만에 7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판·검사 하다 나온 직후 월 평균 1억원씩 받는 건 흔히 볼 수 있다. 전관예우가 작용했으리라고 보는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법과 정의는 픽션이자 환상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전관예우란 검찰·법원에서의 직전 직위로 인해 일반 변호사보다 사법절차에 더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에 그 능력을 비싸게 사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정의의 추락’과 연결되고 만다. 그 능력을 살 수 있는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에게 법과 정의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재생산 구조와 다름 없게 된다.

청와대는 불법이 없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려면 ‘공정한 사회’는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 법조계 전관예우가 존재한다면, 그것만큼 ‘우리사회에서 법과 정의란 하나의 픽션이자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신동아 2011년 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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