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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제3의 생각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제3의 생각

숫자는 강력한 설득 도구다. 가덕도 38.3점, 밀양 39.9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둘 다 합격점인 50점 이하로 나왔으니 동남권 신공항은 지으면 안 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한 국책사업의 예타니 B/C(예비타당성조사 편익/비용) 숫자가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마사지’되는 걸 지켜보아왔다.

사람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숫자만 덜렁 내놓고 끝내선 안 된다. 예컨대 ‘영남에서 해외 나가는 사람이 연간 100만명인데 이걸로 국제공항이 될 리가 있겠는가’와 같은 상식선에서 수용할 만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발표엔 숫자만 있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이렇게 말한다.

“신공항이 밀양이 되면 부산 민심이 총 들고 오고 가덕도가 되면 대구·경북이 그런다. 내년 총선에서 마이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둘 다 탈락시켰다.” 이 설명이 소수점 첫째자리까지 써놓은 숫자들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 이게 진실인지 모른다. 비로소 왜 양쪽이 다 떨어졌는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뉴욕 JFK공항 vs 보스턴 로건공항

‘신공항은 안 된다’는 논리에 대해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적자투성이 지방공항들이 이미 널렸다’는 논리. 그러나 신공항은 영남권 전체의 국제선 허브공항이므로 기존의 국내선 지방공항과 차원이 다르다. 대형 세단과 경차를 비교하는 격이다. 신공항이 서면 기존 지방공항들은 신공항으로 통폐합된다. 인천국제공항 국제선을 이용하는 영남권 수요가 신공항으로 전환된다. 영남권엔 1300만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KTX 타면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 세 시간이면 간다’는 논리. 그러나 인구 300만 이상 외국 대도시 중 공항에서 도심까지 한 시간 더 걸리는 곳이 없다. 이때 대부분 차로 이동한다. 인천공항에서 부산까지 차로는 7시간 걸린다. KTX 세 시간도 너무 길다. 외국인, 외국기업이 수도권에만 몰리는 이유다. 국제화 시대, 공항은 세계와 연결되는 길이다. 길이 없는 곳은 맹지다. 맹지는 결국 쇠락하고 만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축된다’는 논리. 그러나 수도권 2000만 인구가 여전히 인천공항의 수요층이므로 문제가 안 된다. 미국 보스턴과 뉴욕은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인구 400만 권역의 보스턴엔 로건(Logan) 국제공항이 있다. 그렇다고 뉴욕 JFK공항이 위축되지 않는다. 로건공항은 연간 2600만명이 이용하고 이 중 380만명이 국제선 이용객이다. 항공기는 여러 국제선 노선을 포함해 37만 회 운항한다. 로건공항은 흑자공항이다. 국제공항이 없었다면 지금의 글로벌 도시인 보스턴,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 시애틀, 라스베이거스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서울 이외 또 다른 글로벌 도시들이 나와야 한다.

‘신공항에 들어가는 10조원이 과다하다’는 논리. 그러나 여러 여론조사 결과 영남권 주민 1300만의 절대다수가 신공항을 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세금을 내는 다수의 주권자는 그 일부를 자신이 너무나 원하는 일에, 확신하는 일에, 행복추구권을 구현하는 일에 사용할 자기결정권이 있다.

기자는 이 반론들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즉 신공항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반전 : 두 번째 진실

이쯤에서 반전이 필요할 것 같다. 밀양과 가덕도가 모두 탈락하자 영남권 언론은 수도권이 반대해서 신공항이 무산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하자면, 수도권이 신공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결사적으로 막은 건 아니다.

정두언 최고위원이 이미 진실을 말한 바 있다. 영남권 신공항은 영남권 남북의 요령부득의 비타협과 갈등 때문에 무산된 것이다. 양쪽이 극한적으로 싸워 현 정권이 어느 한편을 들어줄 수 없기에 숫자의 힘을 빌려 공약을 파기한 것이 맞다고 본다.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제3의 생각
가덕도 공항이라도, 대구로선 인천공항보다는 훨씬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밀양 공항이라도, 부산 역시 인천보다는 훨씬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1시간이냐 3시간이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40분이냐 1시간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 어바인은 LAX 국제공항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공항의 혜택을 누리며 가장 잘사는 도시로 성장했다. 영남권의 남북이 스스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도 신공항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신동아 2011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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