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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아이들 ②

초등학생 휩쓰는 가학 · 변태 놀이문화 진단

‘체벌놀이’에 빠진 동심, 또래 사이 성폭력으로 비화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초등학생 휩쓰는 가학 · 변태 놀이문화 진단

  • 사이버 세계에서 어린이들이 그룹을 이뤄 성적인 가학·피학 역할 놀이를 하는 이른바 ‘체벌놀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또래 집단 사이에서 이와 비슷한 성폭력 ‘놀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음란물 등에 노출되며 생겨난 그릇된 놀이 문화가 아동 대상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초등학생 휩쓰는 가학 · 변태 놀이문화 진단
“제가 여자인데요 친구가 체벌 놀이를 하자고 하네요. 그럼 체벌표를 짜야 되는 건데요. 좀 짜주세요~ 항문체벌 **체벌 가슴체벌 등 다 있게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체벌놀이’를 검색하면 상위에 올라오는 질문 내용이다. 한 네티즌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친구끼리 서로의 몸을 성적인 방법으로 학대할 수 있는 ‘놀이’ 방법을 적어 놓았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와 더불어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할법한 가학-피학 매뉴얼이 담겨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이른바 ‘체벌놀이’의 실상이다.

‘체벌’을 테마로 가학-피학적인 성적 유희를 즐기는, 혹은 즐기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체벌’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관련 카페가 수십 개 등장한다. 회원 수가 많게는 5000여 명에 달하는 이 카페 글의 대부분이 위와 같은 내용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체벌놀이’ 혹은 ‘체놀’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신종 놀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물 등을 접한 아이들이 상상 속에서 만든 놀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소설 형태로 공유할 뿐, 실제로 그런 일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상력’의 극단성에 충격을 받고 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는 “아이들이 현재 ‘놀이’나 ‘상상’으로 즐긴다고 해서 방치해도 되는 수준이 아니다. 성폭력을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 상상력이 퍼져나가고 공유되면 반드시 실험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것이 현실화될 때 학교 현장에서 끔찍한 성폭력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폭력 ‘놀이’

초등학생 휩쓰는 가학 · 변태 놀이문화 진단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체벌놀이’를 검색하면 가학피학 역할 놀이와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성폭력이 놀이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의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 47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43명(0.9%)이 강제로 키스를 당했고, 강제 포옹은 93명(2%), 누군가 강제로 가슴을 만진 경우는 38명(0.8%), 강제로 성기 만짐을 당한 경우는 76명(1.6%), 강제로 성기 접촉을 요구받은 경우는 23명(0.5%)으로 나타났다. 이들 피해자의 상당수는 가해자가 ‘학교 친구’라고 답했다. 강제 키스의 경우 같은 학교 친구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례가 41%(16명)로 가장 많았다. 강제 포옹과 가슴 강제 추행, 성기 강제 추행의 경우에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가해자인 비율이 가장 높아 각각 23.5%, 33.3%, 71%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성기를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라는 항목에 응답한 강제 성기 노출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학교 친구라고 답한 비율이 35.8%였다. 최근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게 유행해 충격을 받은 여학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또래 성폭력은 동성 간에도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특히 성기 강제 추행의 경우 전체 피해 아동 119명 중 남자 어린이가 113명이다. 이들 피해자 중 47명은 부모님, 선생님 등 주위의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자가 또래 친구이기 때문에 폭력과 놀이의 경계에 있어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성행동을 또래 집단의 놀이 문화로 보고 지나칠 경우 청소년이나 성인기에 성폭력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문 결과를 분석하면 연령층이 높을수록, 특히 초등학교 6학년에 해당하는 12세 집단 아동일수록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동 성범죄자 양산 막아야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이 늘면서 음란물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된 성의식이 그릇된 놀이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해 전국 중고교생 28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음란물을 처음 접한 나이는 7세 이전 0.7%, 8∼10세 5.5%, 11∼14세 38.8%, 14∼17세 51.6%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45%가 14세가 되기 전 음란물을 접한 셈이다. 또 음란물을 처음 보게 된 경위는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보는 경우(41.4%)와 스팸메일을 통한 경우(10.5%) 등 의도치 않은 접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보건 교사인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아직 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갖춰지기 전 음란물을 접하면 중독되기 쉽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해 잘못된 성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어린이·청소년 성폭력 가해자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아동 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범죄 발생건수는 2006년 1571건에서 2009년 2934건으로 3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동·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 역시 아동·청소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예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의진 교수는 “사이버 세계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칠 것 없이 폭력적인 상상력을 드러낸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 왜곡되기 전에 포털사이트 등 관련 업체와 정부가 ‘체벌놀이’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2011년 5월 호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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