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

  • 입력2011-06-22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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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최근 한명숙 전 총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 바닥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를 밟고 헌화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에 강재천 민보상법개정추진본부장이 한 전 총리를 ‘국기모독죄’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한 전 총리는 처벌받을까? 국기모독죄는 형법에 있다. 형법 제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의도 없으면 국기 모독 아니다

    국기모독죄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문서위조죄, 불법체포·감금죄와 같은 정도의 형량이다. 남의 물건을 부수면 성립되는 손괴죄도 3년 이하 징역이고, 간통죄·협박죄·과실치사죄가 징역 2년 이하, 유기죄·허위진단서작성죄도 징역 3년 이하다. 이에 비하면 국기모독죄가 얼마나 중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형법에서 국기모독죄를 중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기모독죄가 단순히 국기를 손상·모욕하는 행위라서가 아니다. 국기 모욕을 통해 대한민국을 모욕하려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서다.



    국기모독죄가 성립하려면 특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를 목적범(目的犯)이라 한다. 보통 범죄는 범죄행위와 결과, 고의성만 있으면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기모독죄가 성립하려면 이외에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문서·공문서·통화 위조죄가 대표적인 목적범이다. ‘행사할 목적’으로 문서 또는 통화를 위조한 경우에만 범죄가 성립한다. 행사할 목적 없이 교육이나 영화촬영을 위해 지폐를 위조하면 통화위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설령 한 전 총리가 태극기를 밟은 행위 자체가 태극기를 모욕했더라도, 한 전 총리를 국기모독죄로 처벌하려면 그가 대한민국을 모욕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스스로 ‘국기를 모욕하는 행위를 한다’고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 사진을 다시 보자. 우선 한 전 총리가 태극기 위에 올라간 것은 태극기 위에 놓여 있던 추모비에 헌화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신발을 벗고 있었다. 바닥의 태극기 주위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당시 한 전 총리는 태극기를 모욕하려는 의사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시내 곳곳에 걸린 G20 홍보물에 누군가 생쥐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그림을 덧그렸다. 왕객기씨는 그 그림 속 생쥐 옆에 ‘MB’라고 써 넣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왕씨를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형법에 ‘국가원수 모독죄’가 있다. 그러나 ‘국내에 있는 외국의 원수’를 모욕하거나 명예훼손을 한 경우에만 적용되고, 우리나라의 국가원수나, 외국에 있는 외국 원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2008년 말 이라크를 방문한 부시 당시 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이라크 기자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우리 법원도 비슷한 수준의 형량을 선고할 것이다. 형법은 “외국 국가원수를 모욕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모독 형사처벌 근거 없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모독하더라도 대통령이 상대를 일반 모독죄로 고소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할 근거는 없다. 한편 우리나라 원수를 모욕해도 처벌할 법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의 원수를 모욕했다고 징역 5년 이하의 형벌을 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적절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외교관계를 감안한다”며 엄하게 처벌하지만, 정작 우리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에 가 모욕을 당했을 때 그 나라에서는 별문제가 안 된다면 머쓱한 일 아니겠는가.

    ‘정치지도자를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가’는 그 나라 언론 자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 대부분은 정치지도자를 마음대로 풍자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우리나라는 군사정권 시절 정부를 비판하던 인물이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여전히 대통령은 ‘모독해서는 안 될 신성’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언론 자유가 넓게 보장되는 선진국과 아직도 언론 통제가 심한 중동국가. 이 중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이 어느 쪽인지 자명하지 않은가?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산 김지름씨는 옷이 사진과 크게 다른 것에 실망하고 환불을 요청했다. 하지만 쇼핑몰 측에서 거절하자 김씨는 여러 포털사이트에 해당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올렸고, 이로 인해 쇼핑몰 매상이 크게 줄었다. 김씨는 쇼핑몰의 영업을 방해한 것일까?

    법 상담을 하다보면, ‘일반인은 업무방해 범위를 상당히 넓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위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해야 한다.

    허위사실유포는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과거나 현재의 사실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하는 행위를 뜻한다. 10여 년 전 모 우유회사가 “다른 우유회사 제품은 고름우유”라는 광고를 냈다. 그때 그 우유회사 대표는 허위사실유포로 인한 업무방해죄로 기소됐다.

    ‘위계’는, 상대방의 착오나 부지(不知)를 악용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학력을 허위 기재한 이력서를 제출해 취업했거나, 시험에 대리응시했거나, 학원이 학교 시험문제를 유출했을 때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처벌받는다.

    ‘위력’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유·무형의 힘을 말한다.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거나, 여러 사람이 농성을 하며 영업을 방해한 경우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 상가관리사무소가 입주상가의 전기나 수도를 끊은 행위도 마찬가지다.

    사실에 부합한 글 업무방해죄 안 돼

    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업무방해로 처벌하려면 영업이나 업무가 방해를 받았다는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수단으로 허위사실유포, 위계, 위력 중 하나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은 경우는 업무에 방해가 됐다고 하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

    업무방해죄의 보호를 받는 ‘업무’가 꼭 합법적일 필요는 없다. 무허가 포장마차 영업이라도 영업을 방해했다면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 도박 등 업무가 불법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오히려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에 업무방해죄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 위 사례의 김씨가 인터넷에 게재한 글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그 글로 인해 쇼핑몰에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업무방해죄가 될 수는 없다.

    #최울컥씨는 친구 박뺀질씨의 뻔뻔한 행동에 열 받아, 박씨의 멱살을 한 번 잡았다. 최씨는 멱살을 잡는 순간 자신이 폭력 전과 3범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결국 최씨는 분을 억누르고 잡은 멱살을 놔줬다. 최씨는 “나도 내 행동을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했지만 며칠 후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폭행죄로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출두하라는 것.

    멱살만 잡아도 폭행죄

    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사람들은 보통 누구를 때리는 것을 폭행이라고 생각한다. 폭행의 사전적 의미가 ‘난폭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세계에서 폭행은 ‘타인 신체에 대해 물리력을 가하는 행위’로 해석한다. 사람에게 물리력, 즉 일정한 힘을 가했다면 때리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폭행죄가 될 수 있다는 것. 만약 사람의 발 앞에 화분을 던졌거나, 심한 폭언을 계속했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등 사람을 직접 때리지 않았더라도 폭행에 해당한다.

    앞의 사례에서도 최씨가 박씨의 멱살을 잡았다 바로 놓았지만, 멱살을 잡은 행위만으로도 형법상 폭행에 해당한다. 폭행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하지 않는 범죄(반의사불벌죄)다. 최씨는 폭력 전과 하나 늘리지 않으려면 박씨에게 사과하고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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