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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양~단둥 도로의 풍경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중국 선양~단둥 도로의 풍경들

중국 선양~단둥 도로의 풍경들

단둥의 6·25전쟁 참전 펑더화이와 중국군 조각상.

차를 타고 세계 여러 나라의 도로를 달려봤지만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단둥(丹東) 도로 여행에서와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약간 무시당하는 기분, 가본 적 없는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 미래에 대한 들뜸이 혼합된 어떤 생경한 감정이다. 이 근저에는 평소에는 거의 떠올릴 틈이 없던 ‘민족(民族)’이라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관념적 실체가 자리하고 있었던 듯하다.

“선양과 한양이 비슷하지 않나요?” 여행 안내자의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았다. 선양이 한자어로 ‘瀋陽’인데 ‘심수(강 이름)의 북쪽지역(양)’이라는 뜻이란다. 한양은 ‘한수(한강)의 북쪽지역’이라는 의미로, 선양과 같은 중국 전통 지명표기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다.

단둥으로 가는 차가 출발한 선양 도심의 ‘중산공원’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저항한 조선 삼학사가 처형된 곳이다. 주변엔 당시 인질로 끌려온 조선인 60만명이 노예로 거래된 시장이 있던 ‘남탑거리’도 있다. 이어 구한말 한인(韓人)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한 옛 ‘일본 관동군사령부’ 건물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식사를 한 ‘우의궁’은 녹음이 우거진 명승지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에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청 태종 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선양에서 북한 신의주 접경 단둥까지는 고속도로가 닦여 있다. 그러나 오가는 차는 많지 않은 편이다. 시내를 벗어나 톨게이트에 이르자 이 도시의 자랑거리인 ‘선양군구’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옛 고구려군 본영이 지금은…

1950년 6·25전쟁 때 한반도로 출병해 한국군과 미군을 밀어낸 중국인민지원군의 본영이 선양군구라고 한다. 인민지원군은 인민해방군과는 다른 비정규군 뉘앙스이며 중국 본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런 용어를 쓴 것이라고 한다.

선양~단둥 간 고속도로와 국도는 역대 한국의 왕조가 중국으로 진상품을 싣고 가던 조공길이자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뒤 만주로 진출한 루트라고 한다. 단둥에 가까워오면서 요하강과 이어지는 태자강이 보인다. 이 강을 따라 옛날 수·당을 물리친 용맹한 고구려의 백암성, 신성, 안시성, 요동성이 이어져 있다. 지금도 성의 흔적들이 꽤 남아 있다고 한다.

단둥으로 조금 더 차를 타고 달리자 도로 왼편으로 서울의 북악산과 비슷한 형상의 바위산인 봉황산이 펼쳐진다. 이 봉황산의 품 안에 고구려군 10만이 주둔하던 천혜의 요새 오골성이 있었다고 한다. 연개소문이 이 성에서 전군을 지휘하며 지원병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이다. 이어지는 말이 급반전이다. 지금은 선양군구의 대군이 이 오골성 자리에 곰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압록강을 넘는 데엔 수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지안(集安), 룽징(龍井) 등 고구려의 향수가 깃든 곳은 6·25전쟁 때 중국군이 한반도로 넘어온 주요 루트이기도 했다.

단둥을 40㎞ 정도 앞두고 옛 ‘고려문’이 있던 곳이 나온다. 일종의 세관으로 조선에서 중국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부터 중국’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이 일전에 “단둥을 포함해 서간도가 원래 조선이었다는 건 서양 고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고 이야기한 게 떠오른다.

네 시간 동안 타자화된 경험

중국 선양~단둥 도로의 풍경들
단둥 시내로 접어드는 언덕 위에 ‘중·조 우의의 탑’이 우뚝 서 있다. 이 탑 아래에 6·25전쟁 때 미군 폭격을 피해 열심히 굴을 파느라 다 닳아 없어진 중국군의 야전삽 같은 것이 수북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차는 단둥 시내로 들어와 더는 갈 수 없는 압록강철교 앞에 멈췄다. 그 옆 단둥의 ‘랜드 마크’인 압록강단교는 6·25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그대로 서 있다. 다리 위엔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6·25전쟁의 중국식 명칭)을 지휘하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그 아래에 영어로 ‘For Peace(평화를 위해)’라고 새겨져 있다.

이렇게 선양~단둥 도로를 달리는 네 시간 동안 철저하게 ‘타자화’ ‘사물화’ 되어봤다.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듣거나 직접 체험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동아 2011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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