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집단소송은 변호사 배만 불린다?

  • 입력2011-08-23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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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플사가 아이폰의 기능을 사용해 아이폰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사용자 2만7643명은 1만6900원씩 내고 애플사에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포털사이트 네이트 해킹사태로 가입자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자 가입자들이 SK커뮤니케이션즈에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후 서초구의 재해 예방·사후조치 미흡이 산사태 피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이 제기될 전망이다.

    지난 2개월간 신문 사회면 주요기사로 소개된 뉴스다. 최근 몇 년간 수천~수만 명의 원고가 참여하는 대규모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집단소송의 유행이라고 할만하다.

    1984년 망원동 수재민 2400명이 서울시와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한 이후 항공기 소음피해, 일조권 침해, 고엽제 피해 등 다방면에서 집단소송이 제기돼왔다. 특히 2008년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회원 1081만명의 정보가 유출되자 이 중 14만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낸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소송의 기폭제가 됐다.



    이러한 유행은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하고 국가나 대기업에 대한 대중의 의견표명이 활발해진 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단소송의 의미와 효과, 어떻게 집단소송을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봤다.

    미국식 집단소송과 딴판

    집단소송은 본래 미국의 클래스 액션(class action)을 번역한 용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집단소송은 클래스 액션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경향이다. 우리나라의 집단소송은 다수의 원고가 모여 ‘집단’으로 소(訴)를 제기한다는 의미일 뿐 실제 절차나 효과는 보통의 민사소송과 다를 바가 없다. 민사소송법에서는 이렇게 당사자가 다수인 소송을 ‘다수당사자 소송’이라고 한다. 따라서 같은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 중 일부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더라도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혜택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식 집단소송인 클래스 액션은 소수의 피해자가 기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하는 경우,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다수의 피해자도 특별히 제외신청을 하지 않는 한 같은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인해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금 지급판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단소송은 더욱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다. 2000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순회법원은 5개 담배회사가 50만명의 흡연 피해자에게 무려 1450억달러(174조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한 바 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식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건 증권 관련 소송일 뿐이다. 2004년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제정되었는데 누군가가 내부자거래, 주가 조작, 허위공시 및 분식회계 등으로 다수 투자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소송이다. 피해자 중 일부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다른 투자자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최초의 증권 관련 집단소송 사건은 2010년 ‘진성티이씨’라는 코스닥등록업체가 파생상품계약 손실액을 주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주주들이 제기한 사건으로, 법원은 27억원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피해 주주들에게 나눠주라고 판결했다.

    집단소송과 비슷한 용어를 쓰는 소송으로는 단체소송이 있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단체소송은 독일의 단체소송(Verbandsklage)에서 유래한 제도인데 개인 각각이 원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체’가 원고가 되는 소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부터 소비자기본법에 의해 소비자단체가 원고가 될 수 있는 소비자단체소송이 시행되고 있다. 원래 소송의 원고는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국한되지만 소비자단체소송은 피해를 본 개별 소비자를 대신해 소비자단체가 나서서 소송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호 소비자단체소송은 소비자시민모임 등 4개 소비자단체가 하나로텔레콤에 대해 고객정보 무단 제공을 이유로 2008년 7월 제기했다. 원고는 하나로텔레콤이 정보통신망법이 정하는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려 문제가 해결되는 바람에 소송이 취하됐다.

    ‘데모’에서 ‘집단소송’으로

    그러나 소비자단체소송은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지만 금전적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는 불완전한 성격이다. 이 때문인지 더 이상 소송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 피해사건은 소액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된다는 게 특징이다. 피해자 개인이 이렇게 소액 피해를 구제받겠다고 소송을 제기하다보면 배(손해배상금)보다 배꼽(소송비용)이 더 커지게 된다. 미국식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비록 피해액이 소액이지만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찾아낸 방안이 바로 현재의 집단소송이다.

    개별적으로는 국가나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것이 힘들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다수의 피해자가 십시일반하면 변호사 비용을 크게 낮추어 대등한 법적 싸움을 벌일 수 있다. 이것이 집단소송의 가장 큰 이점이자 기본적인 작동원리일 것이다.

    집단소송은 국가나 대기업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다수가 부당한 관행에 제동을 걸어서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효과를 낸다. 소송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고양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일부 집단소송은 불합리한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듯이 집단소송에도 어두운 측면이 있다. 첫째 개인정보유출 사건과 같이 소비자에게 실제의 재산적 손해가 아닌 정신적 손해를 끼친 사건의 경우 법원의 위자료 인정기준이 매우 인색해 소송의 실익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GS칼텍스가 100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건에서 법원은 위자료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둘째, 손해배상을 인정받더라도 원고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금액에 비해 변호사가 받는 수임료가 훨씬 커서 ‘변호사 배만 불리는 소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11년 7월 법원은 SK브로드밴드가 고객 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했다며 2340명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1인당 평균 17만원을 받게 되지만 이 중 20~30%를 변호사의 수임료로 내야 하므로 최후의 승자는 변호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집단소송에 참여하고자 할 때 우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부당한 행위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면 1,2,3심까지 수년간 계속될 수도 있는 소송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 집단소송 자체에 대한 불만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억울함을 풀고 정의를 세우겠다는 생각도 있다면 집단소송은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소송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집단소송의 상대방은 개개의 국민에 비해 월등한 힘을 가진 쪽이다. 이들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거액을 들여 대형 로펌을 선임한다. 이런 상대와 맞서 싸우는 소비자 쪽 변호사에게도 무기를 충분히 공급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집단소송 담당 변호사의 수임료가 마냥 아까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

    집단소송을 맡은 변호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있다. 소송에 대한 사명의식이 그것이다. 대중이 집단소송이라는 판을 벌이면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가 멋진 법정 퍼포먼스를 펼쳐 승리하는 그림을 꿈꾸어본다.

    집단소송은 변호사 배만 불린다?
    필자는 신용카드 회사가 원래 약속한 마일리지 제공기준을 축소한 것에 대한 집단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경험이 있다.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참으로 길고 고독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안으로는 수많은 의뢰인의 요구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거대한 상대방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업무량이 수반됐다. 이때 이 소송의 역사적 의미와 정의 실현에 대한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이야말로 고된 여정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 변호사의 처지에서 집단소송은 돈만 보고 뛰어들면 견뎌내기 힘든 여정이다. 여기에다 패소까지 한다면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과거 시민운동은 ‘데모’라는 물리력으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했다. 집단소송은 권위주의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좀 더 세련되고 지적인 시민운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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