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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흔들리는 인권위라면 아예 문 닫는 편이 낫다

인권위 대규모 징계 사태를 보는 전직 위원장의 고언

  • 안경환│서울대 교수,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정권 따라 흔들리는 인권위라면 아예 문 닫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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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인권위

정권 따라 흔들리는 인권위라면 아예 문 닫는 편이 낫다

2008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을 만나 국제 인권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안경환 당시 인권위 위원장.

2006년 10월30일, 내가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제4대 인권위원장에 임명된 사실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참여정부의 출범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앞선 정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권이든 창출에 기여한 바가 없다. 노 대통령 역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대통령의 측근 중에도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참여정부에 대해 원천적인 기대와 호의를 갖고 있었지만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의 글을 쓰기도 했다. 교수 생활을 시작한 전두환 정권 때부터 견지해 온 원칙이자 습관이었다. 지위와 신분이 보장된 교수의 책무 중의 하나가 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인권위의 설립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하지도 않았다. 엄동설한에 명동성당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활동가들의 소식을 듣고도 한 번도 현장에 들르지 않았다. 마음은 주되 몸은 인색한 편이었다. 강의, 연구, 보직, 학내 일만 해도 힘에 부쳤다. 아무리 세상에 대한 책임, 실천하는 지성을 내세워도 내게는 학교가 가장 소중했다. 그래서 교수로서 본연의 역할을 고집하는 편으로, 의도적으로 현장과 거리를 두려고 애쓰기도 했다.

나의 취임에 시민단체의 반응은 비판적이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은‘심히 우려되는 바’라고 했다. 내가 ‘자리’를 찾아다니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인데다, 한국의 인권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며, 인권 감수성이 모자란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래 시민단체의 평가는 균형감을 잃기가 일쑤다. 이상주의자, 원칙론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겨서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 신문은 내가 거의 모든 일간지에 칼럼을 썼고, 이슈에 따라 진보와 보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확실한 ‘관(觀)’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런가하면 같은 사실을 유연하다, 합리적이다, 균형 감각이 있다, 친화력이 있다 등의 표현으로 평가하며 ‘기대를 거는’ 언론도 있었다. 나 자신은 전연 개의치 않았지만 그 정도면 크게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권위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었다. 인권위가 설립된 직후 초대 위원장인 김창국 변호사의 요청에 의해 인사위원으로 직원의 채용에 관여했다.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APF)의 자문법률가(AJ)에 위촉돼 국제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다만 인권위의 의욕적인 행보는 사안에 따라서 좀 과도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권위는 당시 나의 인권의식 수준보다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언로가 막혀 있던 각종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신생 국가기관으로서 강한 존재감을 심겠다는 직원들의 넘치는 의욕과 사명감이 때때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기도 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나를 인권위원장에 임명하면서 임명권자가 사전에 주문한 사항은 없었다. 임명장을 받고 다과를 나누는 자리에서 의례적인 격려의 말 몇 마디를 던진 뒤 대통령은 재빨리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인권위에 대해 일정한 정치적인 통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소한에 그치겠다, 그런 취지였다. 나도 말을 좀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약간 흠칫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그러라고 했다. 애써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는 듯 비쳤다. 첫째, 나는 정치적인 입장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인권위의 업무를 수행하겠노라고 했다. 둘째, 국제적인 업무에 주력해 나라의 위상을 올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제적인 업무는 좋은 착상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인권위와 정부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다. 인권위의 ‘거침없는’ 행보에 노 대통령이 격노한 적도 있다. 아무 구속력이 없는 의견일 뿐이지만 인권위의 쓴 소리는 정부로서도 성가시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관계 부처의 누적된 불평이 보고돼 대통령이 그렇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후일 그 시절에 국무총리를 지낸 분에게서 들었다. 내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정치적 통제’ 운운했던 배경에도 이러한 선입관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내심으론 불만이 많았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인권위는 ‘쓴 소리’를 하라고 만든 기관임을 인정했고, 심지어는 정부와 같은 의견을 내는 인권위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까지 했다. 인권위의 특성을 십분 이해하거나 최소한 양해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통령이었기에 상임위원을 대동한 업무보고 자리에도 특별한 긴장은 없었다. 나 스스로 청와대와 거리를 두려고 의도적인 노력을 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인권위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심 일차적 과제로 삼았던 조직 내부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모든 위원과 직원을 끌어안자.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자.’ 수시로 다짐했던 내심의 업무수칙 제 1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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