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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⑩

일본 ‘장례식 불교’는 토착문명과의 대충돌 결과물

  • 이미숙│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일본고전문학 mslee82@snu.ac.kr

일본 ‘장례식 불교’는 토착문명과의 대충돌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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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례식 불교’는 토착문명과의 대충돌 결과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

“우리나라 왕은 항상 천지사직의 백팔십신(神)을 춘하추동 제사 지내오셨습니다. 지금 그것을 바꾸어 타국 신을 예배하신다면 반드시 국신(國神)의 노여움을 살 것입니다.”

‘국신’이란 일본 고래의 신으로 가미(神)를 가리킨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부처를 ‘타국 신’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전래 당시 일본인에게 석가모니는 ‘타국 신’이었으며 불교는 ‘타국 신의 가르침’으로 이해된 것이다. 불교에 기대한 것도 치료와 연명 등의 현세 이익과 죽은 자의 공양이었다. 그래서 나라 안에 역병이 돌거나 하면, 국신이나 타국 신의 지벌이라고 여겼다.

결국 긴메이 대왕은 소가 이나메에게 불상을 하사하고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도록 허락했다. 소가 이나메는 자기 집에 불당을 차리고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역병이 창궐하고 병에 걸려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배불파는 숭불파가 타국 신을 예배한 탓에 국신의 지벌을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배불파는 왕의 허락을 얻어 소가 이나메가 모시던 백제 불상을 오늘날 오사카인 나니와(難波)의 하천에 내던져버리고 가람에는 불을 질렀다. 역병 발생의 근원인 불상을 빨리 백제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최초의 불교탄압’이다. 569년경의 일이었다.

그 뒤 한동안 불교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비다쓰 대왕(敏達大王·재위 572~585) 때인 584년, 백제에서 미륵 석불을 들여온 것을 계기로 소가 이나메의 아들인 우마코가 아버지 유지를 이어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는 고구려 승려인 혜편(惠便)을 스승으로 하여 세 명의 비구니를 출가시켰다. 저택 동쪽에 불전을 만들어 미륵 석상을 안치하고 법회를 열었다. 그때 사리가 나와 진기한 영험을 보였고, 소가 우마코의 불심은 더욱 깊어졌다. ‘일본서기’에는 불법이 여기에서 비롯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다음해인 585년, 법회를 열고 얼마 뒤 소가 우마코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점을 쳐봤더니, “아버지가 모시던 부처님이 지벌을 내리셨다”고 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국신이든 타국 신이든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여긴 것이다. 우마코는 더욱 간절히 미륵 석불에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나라 안에 역병이 돌아 오히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모노노베 오코시의 아들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배불파의 대표였던 모리야가 나서 왕에게 아뢰었다.



“어째서 저희들의 의견을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선친이 생전에 모시던 임금 때부터 전하 대까지 역병이 유행해 백성이 남아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소가씨가 불법을 일으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왕은 불법을 금했다. 모노노베 모리야는 직접 절로 가 탑을 무너뜨려 불태우고 불상과 불전에 불을 지른 뒤 타고 남은 불상은 나니와의 하천에 내다버렸다. 이것이 ‘두 번째 불교탄압’이다. ‘간고지 연기(元興寺緣起)’라는 책에는 이때 불교탄압을 명한 주체가 비다쓰 대왕이라고 명기돼 있다. 긴메이 대왕 소생으로 왕좌에 오른 네 명의 임금, ‘비다쓰-요메이-스-스이코 대왕’ 가운데 비다쓰 대왕만 유일하게 어머니가 소가 이나메의 딸이 아니었다. 그 뒤 왕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고 부스럼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나라 안에 가득했다. 모두들 불상을 태운 벌이라고 수군댔다. 이에 왕은 다시 불도를 믿게 해달라는 소가 우마코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만 특별히 홀로 불도를 믿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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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불교는 비다쓰 대왕의 사후 즉위한 요메이 대왕 때 왕의 비호를 받고 한 걸음 나아갔다. ‘일본서기’에는 우마야도 왕자의 아버지인 요메이 대왕에 관해 “불법을 믿으시고 신도를 존중하신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도’라는 용어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원래 신도는 경전도 없는 자연종교다. 산, 나무, 바위 등 자연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불교라는 외래종교, 즉 타자와 조우하면서 고래의 토착종교를 ‘신도’라는 용어로 재구축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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