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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박원순·노무현과의 만남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박원순·노무현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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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 시절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경환(63)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회고록을 연재한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샌타클래라대에서 법학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필자는 한국헌법학회 회장, 서울대 법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운영위원장,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을 맡으며 시민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학계와 관계, 시민사회를 두루 거친 그가 자신이 본 한국 정치·사회의 이면을 고백한다. <편집자주>
11월25일로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설립 열 돌을 맞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10년은 유럽의 50년에 비견될 정도로 긴 시간이라고도 한다. 그럴듯하다. ‘괜찮게 사는 나라’치고 사회 변화의 속도나 역동성에 있어 대한민국과 비교할 나라는 없다. 선진국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계사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느닷없이 대한민국이 경제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도 하다. 그러니 압축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앞만 보고 내달리다보면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갑자기 경제선진국이 된 나라가 경제력에 상응하는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년도 길다. 5년의 재임 기간을 통틀어 흔들림 없이 국정을 주도한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다. 인권도 우리 사회에서 엄연한 권력으로 인식된다. 그러니 정권의 성격에 따라 인권이 부침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權’이란 글자는 원래 저울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해득실을 저울질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권력의 본령이다. 법가(法家)의 완성자, 한비자는 공리와 해악을 정확하게 저울질하는 지혜로운 권능을 거듭 강조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조류와 사회통념에 따라 인권의 범주나 내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시대의 변화를 재고 담는 지혜가 바른 권력의 핵심이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설립돼 10년이 지나면 지위가 안정돼 있어야 한다. 인권이라는 권력을 담당하는 인권위도 그런가? 답은 국민의 의식 속에 자리한 인권위의 위상과 관련돼 있을 것이다. 인권위가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고 있는가? 국민은 인권위의 존재와 비중을 느끼고 있는가?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 당당하고 타 기관도 인권위의 업무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가? 이 모든 기준에 비춰볼 때 인권위는 아직 국정과 국민의 일상 속에 든든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권 교체가 가장 큰 이유다. 그동안 속칭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었다. 인권이 정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은 인권을 진보정권의 특징처럼 여긴다. 보수정권이 표방하는 인권 항목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저 ‘인권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다’‘인권 주장도 법과 질서를 유린해서는 안 된다’ 등속의 부정적인 관념이 보수의 특성으로 인식될 뿐이다.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시대 발전에 따라 인권은 진전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시대의 진보에 조응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출범 10년 인권위

설립 후 최초 6년 동안 인권위는 비교적 순항한 편이다. 유엔총회 결의에 따른 권고를 받아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설립됐다. 인권위법 제정 과정에 시민단체의 역할이 지대했다. 우리나라 입법사에서 법률이 입안·제정되는 과정에 시민사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 인권위의 규모나 활동은 돋보였다. 규모에 관해서는 설립준비기획단을 이끈 김창국 변호사의 배포와 조용환 변호사의 치밀함이 크게 기여했다. 여러 사람의 증언과 자료릍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용환은 내가 만난 무수한 후배, 제자 중에 지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하나다.

2001년 11월, 인권위 출범과 함께 그동안 언로가 막혀 있던 각종 청원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신생 국가기관의 사명감도 빛났다. 무엇보다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인권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표방한 진보정권의 후원 내지는 관용이 결정적인 원군이 됐다. 그러나 때때로 인권위가 제시하는 낯선 가치와 기준에 대한 국가기관과 대중의 불편함이 누적됐다. “이해가 백배가 되지 않으면 법을 바꾸지 않고 공이 열배가 안 되면 그릇을 바꾸지 않는다(利不百, 不變法; 功不十, 不易器)”는 상군서(商君書)의 구절처럼 오래된 제도와 해묵은 통념은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런 중에 일어난 정권 교체는 그동안 과도했던 인권위의 행보에 대한 정당한 제동이라는 명분을 제공했을 것이다.

여느 정무직과는 달리 인권위원회의 정무직, 즉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3인의 상임위원은 임기 3년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현임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에 앞서 위원장을 맡은 전임자 4명 중 법정임기를 채운 사람은 초대 김창국 변호사뿐이다. 이 사실만 봐도 인권위는 안정된 기관이 아니다. 2대 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영도 변호사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언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3개월 만에 물러났다. 일단 제기되면 좀체 해명되지 않는 것이 의혹이다. 그의 뒤를 이어 3대 수장이 된 조영황 변호사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자리에서 옮겨왔다. 김창국, 최영도 두 변호사는 주류 법조인 출신이고 인권위 설립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를테면 창업공신에 속했다. 시민단체 대표를 역임했고 지지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 여지가 없었다.

조영황 변호사는 사정이 좀 달랐다. 그는 외인부대 출신이다. 중졸 학력으로 독학 끝에 변호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춘 그는 기득권자·엘리트 법조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비주류, 소수자 출신의 법조인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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