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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내 몸 안의 ‘메멘토’, 그 한계와 도전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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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경험과 과거에 대한 유력한 전달방식인 기록과 기억을 통해 구성되는 역사는 층층의 한계를 지닌다. 왜곡의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벽이면서 시작을 의미하는 아포리아처럼 역사학은 그 한계와 왜곡을 하나씩 닦고 벗겨내면서 진실에 가까이 가는 학문이다.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 작업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어떤가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영화 ‘메멘토’에서 범인을 추적하며 잊지 않기 위해 몸에 정보를 새겨 넣은 레너드.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조금씩 기억을 잃어 보라.

그러면 우리 삶을 만든 것이 기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억 없는 삶은 삶도 아니다.……

기억이야말로 우리의 일관성이요, 이유요, 감정이며, 심지어 행동이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

숙제를 내드리겠다. 이 글을 읽을 독자 대부분은 이제 숙제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 있을 터, 그러니 이제는 숙제의 아스라한 추억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그런대로 운치 있지 않을까? 억울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 숙제, 필자에게도 해당된다.

자신이 겪었던 일 하나를 떠올리자. 오래전의 일도 좋고, 최근의 일도 좋다. 자신과 상관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하다. 사실이 분명하고, 증거가 있으면 더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과 기뻤던 일, 사회생활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 혹은 어떤 이의 숭고한 삶에 대한 회상도 좋다. 기억할 만한 어떤 사건을 A4용지에 적어보자. 절반도 좋고 다 채워도 좋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시 그 사건을 회상해 마찬가지 방법으로 적어보자. 이 연재가 한 달에 한 번 있으니까, 한 달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적었으면 저녁에 다시 적어보아도 되고, 하루 뒤, 일주일 뒤, 모두 상관없다. 여기가 끝이다. 숙제 참 쉽다. 이제 먼저 쓴 글과 다음에 쓴 글을 비교해보는 일이 남았다. 이건 한 달 뒤에 하자. 오늘은 그 비교를 위해 몇 가지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냉소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게 마련이고, 따라서 승자의 관점에서 왜곡되게 마련이라는 의미다. 이 말은 역사 또는 역사 기록의 한계를 언명하는 가장 소박한 형태의 냉소(冷笑)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동의하는 걸 보면 이 말에 뭔가 일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이,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가 승패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나는 삼시 세끼 먹고 월급 타고, 학생들 가르치다가 혼내기도 하고 혼내고는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아침에 연구실에 나가 자료 보고 새로운 문제는 노트도 했다. 점심때면 늘 그렇듯 학교식당이나 주변 식당에서 동료들과 즐겁게 또는 밋밋하게 식사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생일 턱을 낸 동료도 있었다. 학교, 사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글도 쓰고 평론도 했다. 이렇게 나의 시간은 흘러갔고, 앞으로도 대개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직장 다니는 많은 분이 필자와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승패의 삶이 없지는 않다. 승진을 승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몇 평 아파트, 얼마짜리 자동차를 가지지 못한 것을 인생의 패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업하는 분들 중에는 경쟁사를 물리치고 사업을 수주하거나, 4·11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처럼 그 결과에 따라 ‘당락=승패’가 엇갈린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역사상에 보이는 쿠데타와 혁명, 반정(反正)도 그런 승패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너와 나의 인생에서 승패가 그리 많지 않듯, 사회나 나라에서도 승패는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승패가 갈리는 선거가 이어지지만, 매년 예산이 짜이고 그에 따라 세입과 지출이 이루어지고, 국민은 그 틀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오히려 승패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대개 하루하루의 축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내다보니 나타나는 호들갑 때문이 아닐까 생각될 경우가 꽤 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 중 해당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명제다.

또한 승패가 나뉘는 경우에라도 그 사건 자체의 세팅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 사건에 대한 관찰이나 기록이 승자에 의해 왜곡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승패가 나뉘는 사안 또는 사건이라는 사실과, 그 승패가 승자의 손에 의해 왜곡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승패가 갈리는 그 사실을 승자만 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견해가 옳다면, 우리가 역사의 패자에게 보내는 그 많은 관심은 어디서 온 것이라는 말인가?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견해조차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관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승패가 나뉘고 그것이 기록될지라도 역사가 승자의 눈으로만 기록되지는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격언이 정녕 맞는 데가 있다면, 아마 역사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승패로 나뉘는 세상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평범한 진실에 더하여, 승패가 있다는 사실과 승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평범한 이치에 더해, 이쯤에서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관점이 갖는 함정 하나를 지적하고 가야겠다. 이 견해에는 무엇보다도 일부에 대한 진실로 전체를 덮어버리는 지적 게으름이 숨어 있다. 원래 게으름은 모든 냉소의 공통된 속성이라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적당한 전문성과 함께 이 냉소가 찾아올 경우 소심한 비전문가들은 포섭되거나 타협하고 말기 때문에 짚어두고 싶다. 털고 가자.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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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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