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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길거리 간판만 봐도 안다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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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차분한 느낌을 주는 파리 시내의 한 상가.

파리 시내의 간판은 일단 그 크기가 작고 요란하지 않은 색으로 되어 있어 도시 전체의 안정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밤이 오면 은은한 전열등빛이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특정한 상업지구를 제외하고는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전광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흔히 보는 건물 옥상에 설치한 위압적인 광고탑도 파리에서는 보기 어렵다. 여기저기 빛을 발하는 붉은색이나 흰색 십자가는 서울이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서초구 강남고속터미널 앞 상가의 간판이 정비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서초구청이 어지러운 간판문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시범 사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상가 외벽에 붙어 있던 중구난방의 간판들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같은 크기 같은 글씨체의 네온 간판들이 설치되었다. 빨강, 자주, 보라, 초록, 노랑,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체에 귀여운 글씨체로 약국, 식당, 치과, 부동산중개업소, 세무사 사무실, 학원 등을 알리는 간판들이 설치되고 나니까 이전보다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갖가지 색채의 네온 간판들은 색동저고리나 오방떡을 연상시킨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구호와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서울의 활동적인 밤 분위기보다는 다소 지루하지만 안정되고 그윽하고 고요한 파리의 밤 분위기가 더 좋다.

풍경 #11 서울의 더블 에스프레소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서울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원액의 진한 커피인데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서울의 에스프레소 커피 맛은 이제 파리 여느 카페의 그것 못지않다. 그럼에도 개인적 취향 탓이겠지만 커피 가루를 머금은 커피 기계가 ‘치익’하는 소리를 내며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토해내는 파리의 카페 장면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다.

다른 한편 서울 카페의 메뉴판에는 ‘더블(double) 에스프레소’라는 것이 있다. 아메리카노 등의 커피에 비해 에스프레소 커피의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몇 모금 마시면 다 없어져버리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양에 섭섭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싱글(single) 에스프레소 값에 500원 정도만 더 내면 에스프레소 곱빼기가 나온다. 에스프레소는 진한 커피 몇 모금을 입에 털어 넣는 게 제맛이다. 그걸 양을 두 배로 늘려놓은 것은 숭늉을 마시던 한국인 몸에 길든 습관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물론 파리에도 더블 에스프레소가 있다. 그러나 에스프레소 하면 에스프레소 전용 작은 커피 잔에 3분의 2 정도가 차서 나오는 싱글 에스프레소를 말한다.



풍경 #12 아파트의 거실 중심구조

아파트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마당이 있는 한옥이나 이층 양옥집에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가 되었다. 방상훈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같이 아주 부자이거나 고만고만한 단독 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 주민을 빼놓고는 거의 다 아파트에 산다.

나는 파리에서 지은 지 100년 넘은 아파트에서 10년을 살다가 서울의 30년 된 아파트로 이사 왔다. 두 아파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 공간 구성의 방식이다. 서울의 보통 아파트에는 일단 넉넉한 거실과 커다란 안방이 있고 거실과 이어지는 간편한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함께 있는 안락하고 청결한 욕실이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 나머지 공간에 작은 방 두세 칸이 배치되어 있다. 거실은 가족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안방은 그 집 주부의 옷장과 화장대 그리고 침대로 꽉 차 있다. 작은방에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침대와 책상과 책꽂이가 들어가면 빽빽해진다.

그리고 공간과 공간이 서로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서 도대체 혼자 조용히 숨어 있을 구석이 없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전형적인 공동체적 생활양식의 표현이다. 안방은 과거와 같이 안방마님의 공간이고 거실은 과거 시골집에 있던 마당 구실을 한다. 아파트에는 과거에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사랑방이 없다. 직장 일에 바쁜 남자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지면서 남자들을 위한 공간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35평 크기이고 파리에 살던 아파트는 25평 규모인데 파리의 아파트가 훨씬 더 컸다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우선 거실과 주방, 안방, 서재가 확실하게 분리되어 어느 한 곳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공간은 복도와 문으로 잘 분리되어 있다. 공간마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외부 공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줬다. 게다가 천장이 한국의 아파트보다 훨씬 높아 공간의 크기가 훨씬 크다는 느낌을 준다. 파리의 그 아파트 출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은 방을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그 공간에 들어가 있으면 외부와 차단되어 어느 수도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마저 갖곤 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사는 나는 서울 아파트의 거실을 서재로 꾸미고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는 문을 설치해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파리 아파트에서와 같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풍경 #13 버스 색깔

한 도시의 분위기는 일단 거리에서 느껴지고 그 가운데 자동차의 색깔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세계 어느 도시 어디를 가든 시내버스는 모두 같은 색깔로 칠해져 있다. 파리의 시내버스는 특별한 녹색으로 되어 있다. 파리공공운송회사 RATP가 운영하는 파리 시내버스의 녹색이 아주 특별해서 RATP녹색이라고 한다. 파리 지하철도 같은 색깔이다. 지하철의 표 파는 사무실 전면도 같은 색깔을 칠했다. 그 특별한 녹색은 파리의 공공교통 수단을 상징한다. 파스텔 톤의 녹색은 파리 거리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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