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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⑤

소쇄원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천국에 사오?”라고

  •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소쇄원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천국에 사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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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최근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을 찾았다. 소쇄원은 인품이 맑고(瀟) 깨끗해(灑) 속기(俗氣)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꿈꾸던 이상세계 건설이 물거품이 되자 그의 제자들이 만든 ‘작은 천국’ 소쇄원.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은 천국’을 체험하니 속세도 천국으로 바뀌었다. 물을 보며 나를 버리니, 내가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되었다. 조광조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임금을 가르쳤던 것이다.
소쇄원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천국에 사오?”라고

전남 담양의 소쇄원 광풍각(光風閣).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려보내기 위해, 지상에 천국을 세울 만한 곳을 찾았다. 거기가 지금의 한국이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桓雄)은 이 땅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이 땅을 신들이 사는 곳이란 의미에서 신시(神市)라고 했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불만이 없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만족하며 사는 나라가 천국이다. 천국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산다. 우리나라는 지상에 건설한 천국이었다. 그 천국에 살았던 경험이 아직도 우리 유전자 속에 남아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인은 늘 천국을 꿈꾼다. 그럴수록 혼란한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마음은 안타깝다. 안타까우면 안타까울수록 천국 건설을 향한 꿈은 더욱 강렬해진다.

천국 건설의 꿈은 비단 단군신화, 국조신화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불교는 불국토(佛國土) 건설을 꿈꾸었고, 한국의 유교는 이상사회 건설을 꿈꾸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이상사회의 건설을 향한 강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조광조 선생이 있었다. 유학에서 이상사회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이 모두 군자(君子)가 될 때 찾아온다. 그런 사회를 건설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미 군자가 된 사람이 나서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왕이고 신하다. 그러므로 왕과 신하는 반드시 군자여야 하고 성인이어야 한다. 정암 선생은 군자이고 성인이다. 그러므로 그가 성스러운 임금을 만나기만 하면 이상사회 건설은 가능했다. 정암 선생은 중종을 살펴보았다. 당장은 성인이 아니더라도 성인의 충분한 자질이 엿보였다. 때는 왔다. 지금의 임금을 성인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정암 선생은 중종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시켰다. 임금이 공부하는 공간을 경연(經筵)이라고 한다. 정암 선생은 경연에서 열심히 임금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병폐를 제거하고 제도를 고쳐나갔다. 그런 정암 선생의 노력은 남곤, 심정 같은 소인배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고 선생은 희생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에서는 이를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한다.

정암 조광조와 기묘사화

이를 지켜보아야 했던 정암 선생의 제자 김인후 선생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던 하서 선생에게도 기회가 왔다. 하서 선생은 중종의 아들 인종의 스승으로서 인종이 세자였을 때부터 가르쳤다. 인종은 너무나 훌륭했다. 성군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서 선생은 스승 정암 선생이 꾸었던 천국 건설의 꿈을 다시 불태웠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인종이 독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30세로 즉위한 인종은 즉위 8개월 뒤 삶을 거뒀다. 하서 선생이 우려하던 바가 현실이 되었다. 야사(野史)는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건넨 오색떡을 먹은 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전한다. 야사뿐 아니라 당시 사림(士林)도 인종의 독살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서 선생에게도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그는 모든 꿈을 접고 고향 장성으로 내려갔다. 문정왕후는 인종이 죽고 자신의 아들 명종이 12세에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했다.

장성에 내려온 하서 선생은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 해마다 인종의 기일이 되면 뒷산으로 올라가 통곡을 했다. 아무리 통곡을 해도 이룰 수 없는 꿈.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하서 선생은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서라도 천국을 건설하자. 그러면 그것이 불씨가 되어 온 세상에 천국이 찾아오겠지.”

때마침 친구이자 사돈인 양산보(梁山甫)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서 선생은 양산보가 가진 땅에 천국을 건설하기로 했다. 양산보 역시 정암 선생의 제자였다. 현재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은 그렇게 하서 선생과 양산보 등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 인품이 맑고 깨끗해 속기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천사들이 사는 천국이란 뜻이다.

세상살이가 심란하면 반드시 찾아보는 곳 중의 하나가 소쇄원이다. 천사들의 천국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는 대나무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대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그런 대나무 숲을 걷노라니 내 마음도 쭉쭉 펴지기 시작한다. 내 마음은 세파에 시달려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일이 뒤틀릴 때도 꼬였고, 남에게 무시를 당할 때도 꼬였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볼 때도 꼬였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볼 때도 꼬였다. 그렇게 꼬이기만 하던 나의 마음이 쭉쭉 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나무 숲에서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바람소리는 막혀 있던 내 가슴속을 시원하게 뚫고 지나간다. 심신이 상쾌해진다. 선경(仙境)으로 들어서는 나를 느낀다.

봉황을 기다리는 집

대나무 숲을 지나자 정자가 나온다. 대봉대(待鳳臺)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기다릴 대(待), 봉황새 봉(鳳), 집 대(臺). 봉황을 기다리는 집이다. 글 시작 부분에 찍는 두인(頭印)도, 끝 부분에 찍는 낙관(落款)도 없다.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없다.

현판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의 글씨인지 알고 싶어 한다. 얼마나 값이 나가는 작가의 글씨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세속인의 관심사일 뿐이다.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누가 썼더라도 모두 천국의 사람이 쓴 글씨다. 고려 자기에도 작가의 이름이 없고 조선 백자에도 작가의 이름이 없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천국이다. 천국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세속에서는 차별이 심하다. 장미꽃은 값이 비싸고 비싼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오랑캐꽃은 값이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랑캐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은 장미꽃 백만 송이를 합쳐도 흉내 낼 수 없다. 오랑캐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태양이 빛났고, 비도 내렸다. 사계절이 순환했고, 소쩍새도 울었다. 우주가 동원되어 겨우 오랑캐꽃 한 송이를 피운 것이다. 오랑캐꽃 한 송이는 우주의 주인공이다. 오랑캐꽃뿐만이 아니다. 나도 우주의 주인공이다. 우주의 주인공, 나는 봉황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봉황이다. 대봉대에 이르러 필자는 그것을 깨달았다. 대봉대는 바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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