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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②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일리아스’에 그려진 적과의 동침

  • 김헌 | 서울대 HK연구교수·고전학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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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 진영의 주요 인물이나 그들의 회의장 분위기를 비교해본다면 그리스인보다는 오히려 트로이인이 훨씬 더 신사적이고 인간적이다. 언어가 아니라 야만성의 기준으로 본다면 트로이 쪽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쪽이 더 포악하고 그야말로 야수에 가까워서 ‘바르바로스’라는 말에 더 어울릴 지경이다. 이 사실은 전투의 최절정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최고 전사며 헥토르는 ‘트로이의 성벽을 지키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트로이 동맹군의 보루다. 두 영웅의 결투는 곧 트로이 전쟁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판이다. 열세에 놓여 있던 그리스 군이 아킬레우스의 활약으로 전세를 뒤집고 트로이 군을 몰아붙이는 장면이 ‘일리아스’ 제22권에 나온다. 헥토르는 자기 병사들을 모두 성 안으로 안전하게 들여보낸다. 병사들이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헥토르는 마침내 적의 수장 아킬레우스와 일대일로 맞선다. 인간적이며 희생적인 지휘관의 모습이다. 아킬레우스도 다른 병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홀로 헥토르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것은 동료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적의 최고 전사를 무너뜨리는 영광을 다른 이가 넘볼 수 없게 하려는 다소 이기적인 의도에서였다.

잔혹한 전사

최후의 결전이 시작되기 전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일종의 신사 협상을 제안한다. 적으로서 서로 싸우긴 하되 서로를 존중해 승리자는 패자의 무구를 벗긴 후에 시신에 모욕을 가하지 않고 온전하게 돌려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럴 맘이 없다. “사자와 사람 사이에 맹약이 있을 수 있는가? 늑대와 새끼 양이 한뜻이 될 수는 없다. 둘은 언제나 적의를 품는 법. 나와 너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둘 사이에 맹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대는 이제, 대담한 전사가 되라. 그대는 곧 내 전우들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보상하게 될 것이다.” 헥토르의 제안은 신사적이고 인간적이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전사다운 것은 아니었다.

전사란 적과 타협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킬레우스는 철저히 전사였고 늑대고 사자였다. 반면 헥토르는 매우 인간적이며 새끼 양처럼 유약해 보인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달려들어 목구멍에 창을 밀어 넣는다. 헥토르는 단 한 방에 쓰러진다. 대결은 깨끗하고 간결했다. 사자가 인간을, 늑대가 새끼 양을 무참하게 쓰러뜨렸다. 전사의 일방적 승리다. 인간다운 헥토르는 전사의 치명적인 일격에 무참히 쓰러졌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말은 잔혹하다. “헥토르, 난 너보다 훨씬 강하다. 이제 개떼와 새떼가 너를 찢게 될 것이다.” 헥토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탁한다. 시신을 개나 새가 뜯어먹게 놔두지 말고 트로이로 돌려보내달라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너를 직접 저며 날로 먹고 싶다”라고 아킬레우스가 답했으니 말이다.



헥토르가 죽자 아킬레우스는 그의 무장을 벗겨냈고 다른 그리스인들이 달려들어 시신을 난도질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두 발의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를 뚫어 소가죽 끈으로 꿰어 묶고 전차에 매단 뒤, 전차를 몰아간다. 헥토르의 시신은 땅에 끌리며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킨다. 적을 최악의 상태로 잔혹하게 모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실체다. 그는 강력한 전사로 우뚝 서 있고 헥토르는 나약한 인간으로 짓밟혀 있다.

이 장면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때 야만의 이미지는 그리스인 아킬레우스의 것이며 ‘바르바로스’였던 헥토르는 오히려 세련되고 신사적이며 그래서 ‘문명스럽다’.

호메로스가 그려준 트로이인들의 반응도 인간적인 연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헥토르가 죽었으니 더 살아 무엇 하겠냐며 어머니 헤카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하고, 아버지 프리아모스도 지금 당장 나가 헥토르의 시신을 구해오겠노라 울부짖는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인 안드로마케도 달려와 애곡한다. 과부가 된 자신과 고아가 된 아들 아스튀아낙스가 맞게 될 고통과 괴로움을 한탄하는 것이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헥토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전투에 참가해 죽어간 모든 전사 아버지의 울부짖음이요, 어머니의 통곡이며, 아내의 비탄이다. 아킬레우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전사의 모습으로 서 있는 맞은편에 헥토르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과 지독하게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호메로스는 과연 누굴 진정한 영웅으로 보여주려고 했을까? 철저한 전사로서 슬픔과 고독 속에 우뚝 서있는 아킬레우스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쓰러져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과 애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헥토르인가? 그리고 누가 더 문명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인가? 누가 더 야만스러운 모습인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투스는 트로이 전쟁이 헬라스인(그리스인)과 바르바로스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트로이인을 바르바로스의 원조로 꼽는다. 그의 눈에 트로이인은 수년간 그리스 세계를 괴롭힌 페르시아인과 다를 바 없다. 타자이며 적대적인 존재다.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그리스를 자유의 수호자처럼 묘사했지만, 페르시아인은 바르바로스로 그렸으며 신이 정해준 몫과 정의를 무시하고 무례한 폭력을 일삼는 야만적 무리로 묘사했다. 그리고 폭력적인 지도자 밑에서 지내는 일반 백성을 자유도 모르는 노예와 같은 존재로 평가했다.

평화 갈망하는 민중

하지만 호메로스는 헤로도투스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드러낸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그리스 영웅들의 무공과 활약을 그리면서 그들의 강력함과 승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전쟁에 잘 어울리는 거칠고 잔혹한 모습 또한 묘사한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그리는 그리스 전사들의 모습 속에는 문명이 추구하거나 적어도 명분으로 내거는 반전(反戰)과 평화의 갈망을 찾기 힘들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불멸의 명예를 추구할 만큼 무모하고 동료들의 파멸에 눈도 깜짝 않을 수 있으며 재물에 대해서도 탐욕스럽다. 심지어 ‘일리아스’ 제2권에서는 보잘것없는 일개 졸병이 나서 최고 사령관인 아가멤논을 욕하기도 한다. 문명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상호 존중의 미덕을 결여한 것이다.

상황은 이렇다. 전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트로이성이 함락될 기미가 없자 아가멤논은 병사들에게 전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제안은 병사들의 마음을 떠보려는 거짓말이었다. 지도자가 꼼수를 써서 민중을 우롱하는 모습은 분명 문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전쟁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는 듯이 무구들을 내던지고 함선으로 뛰어들어 귀향을 준비한다. 병사들은 영웅들의 전쟁놀음에 신물이 났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아무 소득이 없이 돌아가도 전쟁만 끝나면 좋다는 마음을 묘사하면서 민중이 갖고 있던 반전과 평화에 대한 열망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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