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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③

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디오니소스의 두 얼굴

  • 김기영│정암학당 연구원∙문학박사 kimky@snu.ac.kr

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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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한스 폰 아헨 작 ‘바쿠스, 케레스, 아모르’.

디오니소스는 이집트 신과도 비슷하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하토르 신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디오니소스의 제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헤로도투스의 보고에 따르면 자신을 죽여 매장하고 부활해서 망자들의 왕이 된 오시리스가 디오니소스로 불린다고 한다. 또 기원전 6세기 중반 아티카의 도기화를 살펴보면 디오니소스가 축제의 행렬 가운데 바퀴가 달린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광경은 이집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의 여러 제의에서 사람들이 신의 배들을 손에 들고 나르거나 바퀴를 달아서 굴리는데, 이는 디오니소스 숭배가 이집트 오시리스 숭배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뜻한다. 또 디오니소스가 기둥에 매달린 마스크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놀랍게도 성적 에너지와 도취의 여신인 하토로의 열주(列柱·줄지어 늘어선 기둥)와 매우 흡사하다.

요컨대 디오니소스는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신인데다, 여러 이방의 신과 융합되는 등 자신을 스스로 변형하는 신성으로 나타난다. 디오니소스의 정체는 한마디로 ‘모호하다’ 하겠다.

토착과 이방의 갈등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 열두 신 가운데 마지막이면서 인간 여자에게서 태어난 신이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통해 토착과 이방이란 두 가지 상반된 요소가 어떻게 디오니소스 안에서 공명하는지 살펴보자.

그리스 본토가 아닌 트라키아에서 디오니소스의 탄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부터 살펴보자.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결합으로 태어난다. 페르세포네가 뱀의 모습으로 위장한 제우스와 동침하고 나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아기의 이름이 자그레우스다. 자그레우스의 탄생에 분노한 헤라는 티탄들을 부추겨 아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찢겨진 고기를 먹어버리게 한다. 이윽고 데메테르 여신이 조각 난 시신을 봉합해 디오니소스는 부활하게 된다.



또 다른 탄생신화는 그리스 테베에 연원을 두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의 아들로 나타난다. 하지만 세멜레는 불덩어리로 나타난 제우스의 사랑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불에 타 죽어버린다. 그러자 제우스가 불타는 세멜레의 자궁에서 아기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심어 봉합했고 석 달이 지난 후 디오니소스는 허벅지에서 태어난다. 뉘사산(山)에서 이렇게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요정들의 손에 양육돼 성장한다.

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의 그림 ‘바쿠스’.

이처럼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테베에서 태어난 신이지만 여러 다른 신화는 디오니소스가 외지에서 도착한 신성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카리오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뤼디아에 와서 포도주를 전한 신이라고 한다. 아티카 지방의 농부인 이카리오스는 디오니소스 신을 잘 대접했고 그 보답으로 포도나무 재배법과 포도주를 만드는 비법을 배운다. 그는 자신이 만든 포도주를 다른 농부들에게 마셔보라고 주었는데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정신이 몽롱해지자 이카리오스가 독약을 주었다고 믿고 그를 살해하고 만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이카리오스의 딸 에리고네는 연못 근처에서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곤 통곡하며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이카리오스와 에리고네 부녀의 희생을 다룬 이야기는 포도주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포도주는 인간에게 고통을 망각하게 하고 잠을 선물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는 이렇듯 포도주의 전래와 관련해서도 양가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갈기갈기 찢어라”

다음에 소개하는 신화도 디오니소스가 외지에서 도착하는 이야기인데 그리스 본토에 디오니소스 종교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왕가 세력이 신에게 저항한 것과 관련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디오니소스를 거부하지만 신을 거부한 자들이 처벌을 받고 나서 디오니소스 종교를 수용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아울러 이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 제의의 두 가지 요소인 ‘희생제물을 갈기갈기 찢는 것’과 ‘날고기를 먹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 두 가지 요소는 디오니소스 종교가 이방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임을 잘 보여준다. 물론 신화 속에 실제 제의의 구체상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돼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에 이방의 요소가 담겨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비슷한 종류의 신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테베 왕 펜테우스 신화다. 이 신화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박코스의 여신들’에 잘 나타나 있다. 뤼디아의 사제 모습으로 분장한 디오니소스가 연설을 하면서 극이 시작되는데, 신은 이렇게 자신의 도착을 알린다.

‘나는 뤼디아인들과 프뤼기아인들의 황금이 많은/ 들판을 뒤로하고, 페르시아인들의 태양이 작열하는/ 고원들과 박트리아의 성벽들과 메디아인들의/ 혹한의 나라와 부유한 아라비아와 짠 바닷물 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아 전역으로 갔는데/ 아름다운 성탑의 도시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그곳에서는 헬라스인(그리스인들과 이민족이 살고 있지/ 내가 인간들에게 신으로 보이도록 아시아를/ 춤추게 하고 그곳에 내 비의(秘儀)를 확립한 뒤/ 비로소 나는 헬라스인들의 이 도시로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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