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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⑨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역사적 질문’의 발견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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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연구 혹은 기록에서 나타나는 오류나 왜곡을 체계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크게 보자면 역사의 탐구(질문), 설명(서술), 논쟁(토론)의 범주 정도가 될 것이다.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것, 그것을 인간 본연의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 호기심은 질문을 수반한다. 질문은 궁금증일 수도 있고, 문제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질문 프레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류와 왜곡을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다. 우선 쉬운 것부터 보자.
이순신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이순신 장군이 각 대첩을 통해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그 패퇴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그런 결과에 ‘필수불가결한’ 인물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추앙과 역사 서술이 갈리는 지점이다.

무전제라는 오류. 뻔히 알면서도 종종 빠지는 오류다. 어떤 역사가가 미리 생각해둔 질문, 가정, 이론, 패러다임, 편견 같은 일반적인 전제의 도움 없이, 전체적인 진실을 획득할 때까지 도토리를 줍고 딸기를 따듯이 어두운 과거의 숲 속을 탐사한다고 보는 것. 지금도 이런 분이 많다. 이는 역사가가 실행 불가능한(impracticable) 방법으로 불가능한(impossible)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중적 결함이 있다.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단순히 귀납(induction)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이것을 실행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하고 싶다. 과거에는 무한대의 개별 사건이 있기 때문에 개별에서 일반으로 귀납할 수가 없다. 개별 사건의 진리성은 연구자와 독립해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다. 그러나 그 개별성은 각 연구자의 탐구에 따라 분리되고 정의된다. 아무리 작은 역사 문제에 대해서라도 거기에 적합한 사건의 수에 제한이 있을까. 게다가 각각의 거짓(falsehood)은 이른바 진실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에, 거짓은 언제나 진실만큼 많다.

둘째, 불가능한 목표란 전체적인 진리에 대한 요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는 통상 세 형식 중 하나의 모습을 띤다. ① 가끔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고 시도하는 신(神) 같은 분들이 있다. ② 때로 모든 것에 대해 어떤 측면을 알고자 하기도 한다. ③ 가장 빈번한 경우는 몇몇 관심 사실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 가지 목적은 어느 것도 실현될 수 없다. 역사가는 어떤 것에 대한 어떤 부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전제가 없다?

‘어떤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치 피라미드처럼 전공논문을 모으고 쌓다보면 언젠가 아이작 뉴턴 같은 존재가 나와서 전체 피라미드를 완성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역사 저술의 역사를 언뜻 살펴보기만 해도 역사 서술이 이렇게 발달해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통상 전문논문이 먼저 나오고 일반적인 해석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몇몇의 건축 대가가 거친 피라미드 그림을 그리고, 무수한 노동자가 거기에 맞추어 돌을 다듬는다. 그러다가 다 완성되기도 전에 패션이 갑자기 바뀐다. 피라미드에서 오벨리스크(obelisk)로! 또 다른 건축 대가가 모래 위에 스케치를 남기고, 돌 다듬기와 깎기가 시작된다. 피라미드를 쌓으려던 몇몇 돌은 재활용되겠지만, 대부분은 다시 잘라야 할 것이다.

이는 역사 연구가 상대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인류의 필요에 시급하고 적절하며 중대하고 핵심적인 진리, 과거를 말해주는 많은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 그러나 귀납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발견되는 그런 전체적인 진리는 없다는 뜻이다. 모든 진실한 역사적 언명은 ‘한’ 역사가가 던진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무슨 대표 질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어떤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백지 전제의 오류는 랑케를 떠올리게 하지만, 피스텔(Fustel de Coulanges· 1830~1889)의 경우가 더 선명하다. 어느 날 그의 강의를 듣던 학생이 강의에 감동한 나머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피스텔은 “나를 칭찬하지 말게. 자네에게 말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입을 통해서 나온 역사라네”라고 했다. 겸손한 듯한 오만함. 이 사람은 역사가는 선입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질문이나 작업 가설조차 말이다. 그는 실수의 가능성마저 역사가의 왜곡이 아니라 그가 가진 증거의 갭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구치(G. P. Gooch)는 “피스텔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자신과 독립된 것으로 여겼고, 비판을 마치 신성모독인 듯 생각했다”고 평했다. 피스텔은 당시 호전적 민족주의자였던 동료 역사가들과는 달리 자신은 민족주의적인 왜곡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했지만, 프랑스-프러시아 간의 보불전쟁 이후 그의 주요 저술의 요점은 다른 학자들이 프랑스와 영국 제도의 발달 속에서 발견했던 튜톤(Tueton·게르만)의 영향이 갖는 중요성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피스텔에서 이미 몇 세대가 지난 요즘 역사학자들은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런 오류를 저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상대주의자들이 그 일처리를 맡았는데, 이것이 그들이 했던 가장 건설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이 구식 오류는 모든 역사가의 가슴속 깊은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필자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역사학에서는 역사가의 질문이 중요하다는 언명을 거부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실전에서는 그 원칙을 곧잘 잊는다.

역사학에는 질문, 가정, 모형에 대한 세습적인 반감 같은 것이 있다. 그 결과, 많은 역사 전공 논문에 개념 빈곤이 나타난다. 이 개념 사용 능력의 빈곤은 단순히 저자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연구의 조직화, 가정의 구체화, 의도의 명료화 등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적 혐오의 결과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때가 되었다.

“역사학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가정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가장 그럴 법한지 주장할 수 있는 사람, 그 가능성의 정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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