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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⑨

‘우리에겐 왜 佛 퀼튀르 같은 라디오 방송이 없나’

스마트폰 시대의 라디오 사랑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우리에겐 왜 佛 퀼튀르 같은 라디오 방송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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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이 휙휙 돌아가도록 빨리 변하는 이미지 세상이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소중한 친구다. 그러나 광고도 없고 수준 높은 강연과 토론이 매시간 벌어지는 프랑스 퀼튀르 같은 방송은 우리에게 없다.
  • 세상 돌아가는 큰 이야기를 해줄 라디오 방송이 없어 아쉽다.
‘우리에겐 왜 佛 퀼튀르 같은 라디오 방송이 없나’

실내 흡연 금지 규정에 따라 파리 봉마르셰백화점 직원들이 밖에서 흡연하고 있다.

파리에서 한 달을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파리 생활이 다소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길을 걷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지하철을 탈 때 문득문득 시적 영감과 정신적 고양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 생활은 편리하지만 특별한 감흥이나 정취가 없다. 파리 곳곳에는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서울의 거리에는 오래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오늘의 모습만 존재한다. 무언가를 환기시키는 기억의 장소가 부족하다.

서울은 모든 것이 고정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늘 유동하는 도시다.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앞서 가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 않으려고만 해도 항상 마음이 바쁘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이고 안정된 상태에 머무르기가 힘들다. 늘 붕 떠다니는 느낌으로 살게 된다.

파리라는 도시에는 오래된 역사의 넝쿨이 덮여 있고 이야기를 담은 삶의 이끼가 끼여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이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걸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도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도시 구석구석을 다듬어놓았다. 부분과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그럼 서울은 어떤가? 19세기 말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변모했다고 하지만 서울은 1960년대 이후 50여 년 사이에 환골탈태한 신흥 도시다. 그간의 역사는 앞서가는 나라들을 따라잡는 추격형 근대화였고 막무가내로 나아가는 돌진형 근대화였다. 사회학자 장경섭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구겨 넣은 우리의 근대를 ‘압축 근대(compressed modernity)’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시간대가 다른 비동시적 형상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단적인 보기를 들자면 강남과 강북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도시다. 1980년대 이후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강남에는 모든 것이 새것인 반면 원래의 서울인 강북에는 새것과 옛것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한강을 경계로 갈라진 그 두 도시 사이에는 연계가 부족하다. 내 몸은 현재 강남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내가 자란 강북에 있다. 북촌과 서촌, 세종로와 남대문, 동대문과 청계천, 종로와 을지로, 명동과 소공동 근처에 가야 내가 서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가야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가 생각나고 서울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상생활이 때로 지루하고 따분해진다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대로 진행되며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은 모레와 다르지 않은 삶은 평화스럽지만 권태롭기도 하다. 그런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는 능력만 갖춘다면, “다 그런 거지 뭐!”라는 의식 상태가 아니라 “아니 저건 또 뭐지?” 라고 물을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일상의 모험이 가능하다. 호기심과 경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루한 시간이 없다. 그런 열린 마음으로 서울생활을 하다보면 다시 낯선 풍경들이 나타난다. 익숙한 거리를 전에 와본 적이 없는 것처럼 새롭게 둘러보면 잠복해 있던 풍경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풍경 #74 12월의 백화점 풍경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선물이 오고가는 크리스마스 철에 든 생각이다. 서울 시내 백화점들은 건물 안과 밖에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안에는 각 층을 오가며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고객님’들로 가득하다. 포근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백화점은 소비의 궁전이고 소비주의의 신전이다. 많은 사람에게 소비는 휴식이고 취미이고 여가생활이 되었다. 주말이면 백화점은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그곳에는 언제나 구경거리가 넘친다.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명품’이 즐비하게 전시된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보면 돈만 있으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852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백화점, 파리의 봉마르셰 백화점은 올해 16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영화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파리 센 강 좌안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열 군데 장소를 정하고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행사다. 센 강 좌안은 이전엔 가난한 학생들이 머물던 지역이었고 지금은 카페와 바가 늘어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센 강 우안은 예부터 상업지구로 유명하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그래서 봉마르셰 백화점은 우안의 프랭탕, 라파예트 백화점 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기념행사에 ‘물질적 소비’뿐 아니라 ‘정신적 사치’라는 이미지를 가미한 것이다.

봉마르셰는 19세기 후반 이후 파리의 부유층에게 고급 식료품과 온갖 생활용품, 사치품을 공급하는 소비의 궁전이었다. 19세기 말 개화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구인의 소비생활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개화기 조선의 부유층 양반들은 이미 유럽 상류층의 소비생활을 모방하고 있었다. 1892년부터1894년 사이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 겸 영사로 근무하던 이폴리트 프랑뎅이 쓴 ‘조선에서’(1905)를 보면 서울 상류층 사람들이 프랑스로부터 포도주와 샴페인을 사들여 마시면서 거의 모든 유럽식 놀이를 즐겼고 부인들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화장품과 옷을 사들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894년에 나온 ‘독립신문’을 보면 하단에 양변기, 커피, 마카오 양복지 등 수입된 고급 상품을 알리는 광고가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파리와 서울의 백화점에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물건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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