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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대선 뒤흔든 대한민국 50대의 자화상

  • 고승철│소설가 koyou33@empas.com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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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렸다. 데모하다 끌려간 친구의 재판정에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차도 사고 아파트도 장만하며 열심히 달렸지만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은퇴 후 등산 가서 야생화 사진 찍어 보내는 친구들, 그리고 암으로 세상 떠난 친구들의 부고(訃告)….
  • 박근혜를 새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의 50대. 그들은 누구인가.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1969년 여름, ‘3선 개헌’을 반대하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이 교문을 뛰쳐나와 시위하고 있다.

“뭣하러 태어났나,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몹시 당혹해지리라. 적절한 답변을 하려면 잠시 실존적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50대 남녀라면 별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존재 이유를 국가가 규정해줬기 때문이다. 1968년 12월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코흘리개들을 빼곤 국민 모두가 이 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야 했다. 초·중학생들은 뜻도 모르면서 암송했고, 암기력 떨어진 40대, 50대 공무원들은 부하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돌대가리’ 학생들은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몽둥이찜질을 당해가며 읊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누군가가 멜로디를 붙였다. 노래를 부르면 그 긴 가사가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으로 50대는 1954~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 세대에 속한다. 같은 50대라도 50대 초반과 후반의 의식구조는 꽤 다르다. 격변, 격동의 한국이기에 고작 몇 살 차이인데도 사회적 경험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입시제도만 해도 죽 끓듯 변덕을 부렸다. 1954년생인 필자의 삶을 뼈대로 삼아 오늘날 50대 세대의 초상(肖像)을 그려본다.

부산에서 태어난 필자는 경남 통영으로 전근한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 통영으로 이사했다. 부산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여섯 살인 1960년 어느 봄날, 고교생인 이종사촌형이 팔에 붕대를 친친 감고 통영 우리집으로 피신한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데모’에 참가했다가 팔을 다쳤다는 것이다. 형이 독립투사처럼 보였다. 형이 참여한 시위는 당시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의 ‘3·15의거’였다.

입시지옥의 몽둥이찜질

1961년 3월 통영(당시엔 ‘충무’였음)의 축구 명문인 충렬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음)에 입학했다. 한글을 모른 채 들어갔는데 그땐 그게 당연했다. 여러 대회에서 우리 학교 축구팀이 우승을 휩쓸었다. 김호, 김호곤, 고재욱 등 훗날 국가대표로 활약한 이들이 그 무렵의 선수였다.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세상이 바뀐 듯했다. 집에 배달된 여러 신문에서 검은 색안경을 쓴 군인 사진을 봤다.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였다.

1학기를 마치고 마산(지금은 ‘창원’으로 바뀜)으로 전학했다. 아버지 근무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2학년 때까지는 남녀 공학반이었지만 3학년 때 남자반, 여자반으로 나뉘었다. 남자반 교실 앞을 지나갈 때 여자 애들은 얼굴이 빨개졌다. 어떤 담임은 시험점수가 나쁜 사내아이들이 문제지를 들고 여자반 교실을 찾아가도록 해서 망신을 줬다.

5학년 때는 파월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게 주요 숙제였다. 답장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으레 “누나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서울 아이가 전학 오면 스타가 되었는데, 부드러운 서울말씨가 신기했다. 양동욱 군(한국은행 간부)이 그런 친구였다. 양 군은 공무원인 아버지 부임지를 따라 마산에 잠시 왔다가 곧 서울로 돌아갔다. 필자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수산업을 시작했다. 방학 때마다 부모가 사는 섬으로 가서 지냈다.

초등학교 6학년은 중학입시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하는 시기였다. 신문엔 ‘입시지옥’이란 제목이 자주 실렸다. 경기중, 경기여중은 전국의 수재가 모이는 명문학교로 소문났다. 지역별 명문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참고서로는 ‘동아전과’가, 문제집으로는 ‘동아수련장’이 가장 유명했다.

어린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매를 맞아가며 공부했다. 거의 매일 시험을 쳤는데, 한 문제 틀리면 몽둥이 한 대를 맞는 일이 허다했다. 학교는 입시를 준비하는 ‘수용소’나 마찬가지였다. 체육 실기 점수가 입시에서 10%를 차지해 비중이 높았다. 턱걸이, 달리기, 공 던지기, 멀리뛰기 등 4종목을 단련하느라 매일 운동장에서 뒹굴었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유행하면서 공부를 잘해도 운동을 못하면 명문학교에 합격하기 어려웠다. 친한 친구 L군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나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못 가고 이발소에 취직했다.

필자는 마산중에 들어갔다. 머리를 박박 깎아야 했고 검은색 교복,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 등교할 때부터 규율부 선배들이 완장을 차고 복장 위반 학생들을 잡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제 잔재가 조성한 ‘병영’ 분위기였다. 근육질의 체육교사는 툭하면 학생들을 ‘개 패듯’ 팼고 교장의 훈화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에 개통했다. 대전~대구 구간 개통식에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왼쪽). 외환위기 한파로 매출이 급락한 서울 상계동의 한 실내화 상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건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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