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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태 씨 유서는 유족이 조작했다

정수장학회 사건 이면의 또 다른 진실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김지태 씨 유서는 유족이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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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려받은 기업을 부실 경영해 무너뜨린 유족들. 그들은 김지태 씨가 사망하자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김 씨의 유서를 만들고 그 유서를 진짜로 만들기 위한 모종의 공작을 했다. 세월이 흘러 모든 시효가 만료되는 시기가 오자 그 유서는 가짜였다고 밝히며 다시 재산 다툼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제기한 것이 ‘정수장학회를 강탈당했다’는 주장이었다.
김지태 씨 유서는 유족이 조작했다

김지태 씨 사후 유족들이 조작한 김 씨의 유서. 유족들은 스스로 이 유서가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작은 사진은 기업을 경영해 일가를 이뤘던 김지태 씨.

지난해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수장학회 ‘장물(贓物)’ 논쟁이 벌어졌다. 5·16군사정변 직후 부산에서 조선견직, 한국생사라는 실크 제조업체와 신발 제조사인 삼화, 그리고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등 여러 회사를 경영하던 김지태 씨가 1년 사이에 두 번 구속됐고, 그가 내놓은 부일장학회와 언론 3사의 주식을 기반으로 5·16재단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정수장학회가 됐으니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정권이 빼앗은 장물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정수장학회는 지금도 부산일보 주식 100%와 문화방송 주식의 30%를 갖고 있다. 총자산은 238억 원. 정수장학회의 명칭 ‘정수’는 박정희의 ‘정’에 육영수의 ‘수’를 합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1994~2005년 이 장학회의 8대 이사장을 지냈다.

정수장학회가 김지태 씨의 재산을 강탈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검증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와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다. 그러나 박 정권이 강탈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재산헌납으로 처벌을 면하고, 김지태 씨가 계속 기업을 운영하게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법처리를 받게 된 대기업 회장들이 수천억 원을 사회에 헌납하고 풀려난 것과 비슷한 경우라는 것이다.

김지태 死後 등장한 유서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을 거듭한 유족의 도덕성도 검증해봐야 한다. 김 씨의 유족은 수차례에 걸쳐 소송을 벌였는데, 그중에는 유족들끼리 제소한 것도 많았다. 대부분 재산 다툼 때문이었다. 이 소송에서 김지태 씨 사후(死後) 나온 김 씨의 유서는 가짜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을 거쳐 확정 판결한 것이니 유서 조작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김 씨 유족들은 스스로 그의 유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것을 추인한 것뿐이다. 유족들은 왜 유서 조작 사실을 까발렸는가. 그 내막은 김 씨 유족들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유족들이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김지태 씨의 가족관계는 좀 복잡하다. 유족이 제기한 송사(訟事)의 판결문을 종합하면 그는 7남5녀 모두 12남매를 낳았다. 사별한 첫 부인의 사이에 9남매, 둘째 부인에게서 3남매를 낳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그 시절 ‘소실(小室)’로 불린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그의 아이를 낳은 소실은 두 명인데, 첫 번째 소실이 낳은 남매는 첫 부인, 두 번째 소실이 낳은 자식은 후처 앞으로 입적돼 있다. 봉건적 제도가 남아 있던 광복 전후엔 유력 정치인과 사업가들 중 소실을 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 씨도 그런 시기에 사업가로 활동했으니, 지금 관점에서만 보고 소실 둔 것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혁명자금 지원 요청 없었다

김 씨는 1982년 4월, 74세로 타계했다. 그가 유력한 사업가였던 만큼 동부산세무서는 유족에게 상당한 금액의 상속세를 부과하려고 했다. 2011년 5월에 나온 서울고법 민사9부 판결문에 따르면 1984년 2월 동부산세무서는 상속세 94억 원, 방위세 22억 원 등 116억 원을 부과했다. 당시로선 거금이다. 고심하던 유족들은 유서 조작과 소송을 통해 상속세 부과를 피해 갔다.

먼저 국세심판소에 심판 청구를 했다가 기각되자 대구고법에 상속세 부과 취소 소송을 내 승소하고, 대법원에서도 이겨 상속세 등을 내지 않게 됐다. 그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그들이 조작한 김지태 씨의 유서(정식 명칭은 ‘유언증서’)였다. 당시 법원은 뒤늦게 등장한 이 유서를 진짜로 인정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2011년 대법원과 서울고법은 이 유서가 허위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허위로 보고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 환송하자, 서울고법 민사 9부가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가짜라고 최종 판결했다.

시점을 반세기 전으로 돌려보자. 김지태 씨는 ‘서울의 이병철, 부산의 김지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저명한 기업인이었다. 당시는 6·25전쟁 직후라 군인들의 영향력이 컸다. 그는 전쟁 직전 선출한 2대와,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바 있고 국회 국방위원을 지냈기에 유력 군인을 여럿 알고 있었다.

1959년 박정희 소장이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김 씨가 사주로 있는 부산일보의 황용주 주필이 박 소장과 대구사범 동기라, 김 사장은 박 소장과 안면을 텄다. 1960년 4·19 후 박 소장은 부산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 5·16군사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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