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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옛것과 새것 섞어 신문명 일군 융합의 땅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콘스탄티노플

  • 안연희 | 서울대 강사·종교학 chjang1204@hanmail.net

옛것과 새것 섞어 신문명 일군 융합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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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660년경 형성된 이 도시의 첫 이름은 비잔티움이다.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오늘날의 도시명은 이스탄불. 콘스탄티누스가 호령하던 4세기의 이스탄불로 여행을 떠나보자.
옛것과 새것 섞어 신문명 일군 융합의 땅

이스탄불의 상징물인 아야소피아.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운 옛 도시의 자취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콘스탄티누스 광장에 우뚝 서 있던 그의 기념주는 남아 있던 일부마저 불에 타 복원 작업 중이다. 황제의 행렬이 지나던 메세(Mese·중앙의 큰 길)의 경로 중 일부가 현대 도시 이스탄불의 도로로 활용되는 게 몇 안 되는 남은 흔적 중 하나다.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잔해만 서 있는 오래된 돌담은 언뜻 콘스탄티누스의 성벽처럼 보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여행객의 추정일 뿐이다. 이스탄불을 찾은 관광객이 으레 들르는 토카프 궁전의 정문에서부터 펼쳐지는 제1정원의 왼쪽 담 안쪽에 자리 잡은 하기아 에이레네 교회는 콘스탄티누스가 아프로디테 신전을 개조해 세운 첫 비잔틴 교회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의 모습은 니카의 반란 때 하기아소피아와 함께 전소됐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재건한 것이다.

눈 밝은 여행자라면 유적이 즐비한 구시가지 쪽을 향해 걷다 밀리온(Milion·도로원표)의 흔적에 발길을 멈출 것이다. 주춧돌만 남은 밀리온의 잔해는 1960년대에 발굴됐다. 본래 4개의 아치형 개선문이 정사각형을 이뤄 둥근 돔형 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건축물이었다. 밀리온 위에는 콘스탄티누스의 모후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발견해 보낸 그리스도의 십자가 유물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밀리온은 신도시 콘스탄티노플의 첫 이정표이며 초석이었다. 흔적만 남은 밀리온의 기둥뿌리 앞에 서니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 이렇게 시작됐구나 하는 감회가 몸을 감싼다.

로마 대체할 ‘새로운 처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처럼 위풍당당한 로마 제국의 근간엔 제국의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간 로마 가도가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밀리온은 바로 그 모든 길이 시작되는 로마 가도의 원점, 곧 제국의 출발점이던 로마의 황금 밀리온(Miliarum Aureum)을 본뜬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의 메세는 밀리온에서 시작해 콘스탄티누스의 원형 광장으로 쭉 뻗어나간 중앙대로였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는 정적 막센티우스, 리키니우스 등을 차례차례 물리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이후 정제(아우구스투스)와 부제(카이사르)가 난립하던 사두정치를 끝내고 로마 제국의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 등극했다. 재통합된 제국을 더욱 효율적으로 통치· 방어하고 구(舊)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중앙집권적 권력을 확립하고자 그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유서 깊은 로마를 등지고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인 비잔티움에 도시를 새로 조성해 제국의 무게중심을 동쪽으로 옮긴 것이다.

비잔티움은 애초 기원전 7~6세기경 그리스인 비자스가 델포이의 신탁을 받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다. 그 뒤 로마의 속주로 편입돼 세베루스 황제 때는 욕장과 히포드롬이 있는 로마식 도시로 개조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마침내 ‘대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콘스탄티노플로 화려하게 탈바꿈한 것이다. 신도시의 건설은 새로운 로마, 그러니까 비잔틴 제국의 탄생이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의 바람에 따라 노쇠한 로마를 대체해 갱생시킬 ‘새로운 처녀’로 거듭난 콘스탄티노플은 옛 로마를 모방하고 변형했다. 비잔틴 제국의 원점이 되는 밀리온의 건축은 바로 로마의 황금 밀리온을 모방하는 동시에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로마의 중심을 만든 의례적 행위였다.

이 신도시의 건설 일화를 윤색한 후대 작가들의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콘스탄티누스는 긴 창을 들고 그 중심원점에서 직접 광활한 신도시의 경계선을 지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짐은 짐 앞에 걸어가는 보이지 않는 인도자이신 신께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널리 회자된 이 일화가 묘사한, 창을 들고 도시 경계선을 긋는 콘스탄티누스의 의식은 고대 로마 전통을 따른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이 오래된 도시지만 새로 건립됐다는 이중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행위였다.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콘스탄티누스가 새로운 로마, 제2의 로마 콘스탄티노플을 창건한 것이다. 남쪽의 마르마라 해에서 황금뿔 만(Golden Horn)까지 부채꼴 형상으로 이어진 콘스탄티누스 성벽의 경계선은 옛 비잔티움의 면적을 몇 배나 넓혔다. 적극적인 이주정책, 곡식 수송선의 정박, 건축주에 대한 세금 면제 등 콘스탄티누스의 정책은 콘스탄티노플을 단기간에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황제의 개종

콘스탄티노플의 또 다른 이점은 로마의 유서 깊은 가문과 원로원의 권위도,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크와 같은, 확립된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뜻대로 도시를 설계하고 그에 부합하는 제국의 종교로 그리스도교를 세우고 다듬기에 두루 용이했던 것이다. 옛 제국의 영광과 권위를 모방하면서도 새로움이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콘스탄티누스의 유일무이한 권력을 효과적으로 상징화해 전시하도록 기획됐다. 웅장한 황궁과 함께 바실리카 구조의 원로원 의사당을 새로 세웠으며 기존의 공중욕장과 히포드롬을 더욱 크고 화려하게 증축했다. 황제가 신민에게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전차경기장과 광장은 상징적으로 특히 중요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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