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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전체론·본질주의·경이(驚異)의 오류

  •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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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탐구 과정은 질문을 하고, 사실을 검증하고, 사실의 의미를 따지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 세 단계마다 나타나는 오류가 있다.
  • 지난 호까지는 역사탐구 중 질문이나 문제 제기, 사실 증명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살펴봤고 이번 호에선 사실의 의미를 따지는 작업에서 벌어지는 오류를 규명해보려 한다.
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는 것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 유사하다. 시장 물건을 모두 알아야 내가 살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역사를 쓰거나 읽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많은 사실이 우리 눈앞에 등장하지만, 그중 일부만 의도적으로 선별된다. 선별은 사실이나 사건의 의미, 즉 중요성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쉬운 듯하지만 막상 이 ‘선별’의 개념, 기준을 설명하라고 하면 막연하고 쉽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엄격히 말하면 선별과 관련해 발생하는 오류는 기준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 기준을 탐구대상과 연관시키려는 시도나 방식에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역사학도는 자신이 좋은 대로 어떤 연구 주제를 탐구할 수 있다.

하지만 탐구를 시작할 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설정한 전제로부터 비롯된 논리적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이성규 역, 서울대출판부, 1987)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자는 말한다. ‘천도(天道)는 특별히 친한 자가 없으며, 항상 선인(善人)과 함께한다’고. 백이(伯夷), 숙제(叔弟) 같은 사람은 정말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인(仁)을 쌓고 깨끗한 행동을 하였는데 굶어 죽고 말다니! 70명의 문도 중에서 공자는 안회(顔回)만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안회는 굶기 일쑤였고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고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도척(盜?)은 매일같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고기를 먹었으며, 흉포한 행동을 제멋대로 하면서 수천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결국 천수를 다하였다. (…) 나는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도대체 이른바 천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은 이렇게 천도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두고 싶었으리라. 사마천에겐 이처럼 천도로 설명되는 부분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했을 것이므로 그 지향과 전제를 기초로 사기의 열전을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 탐구에 대해 아카데믹한 규범을 들이대는 것보다, 모든 역사학도는 자신의 탐구 과정에서 뭔가 사실의 중요성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탐구하게 마련이고, 그 기준은 그들 자신의 목적 또는 방법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전교 석차

첫 번째로 살펴볼 오류는, 역사가는 전체 역사의 관점에서 세부 의미를 선별해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이다. 이는 전교 석차를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는 것과 닮았다. 이를 전체론적 오류(holist fallacy)라고 하는데, 전교 석차에 대해 갖는 이미지처럼 이런 방법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전교생의 이름과 신상, 성적을 확보하고 있으니까, 석차를 매기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행복은 성적순’이다.

그러나 전체론은 역사가가 모든 것을 다 알기 전에는 아무런 선별 기준을 가질 수 없을 것이란 점에서, 바보 같고 불가능한 방법이다. 역사가는 모든 것을 탐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역사를 탐구할 뿐이라는 논의는 이미 ‘신동아’ 2012년 11월호에서 했다. 역사가의 증거는 항상 불완전하고, 관점은 항상 제한되게 마련이다. 이 오류의 대표적 선구자가 헤겔이다. 그의 1822~31년 역사 강의를 묶은 ‘역사철학강의’(김종호 역, 삼성출판사, 1990) 서론을 보자.

“식물의 배아가 그 속에 나무의 전체 성질, 과실의 맛과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의 최초 발자취 역시 이미 역사 전체를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동방 제국의 사람들은 정신(das Geist) 또는 인간이, 그 자체로서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다만 한 사람만의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자유는 단순한 자의 횡포, 둔감 또는 단순한 하나의 자연적 우연, 또는 자의에 불과한 열정이다. 따라서 이 한 사람은 전제군주이지 자유로운 성인은 아니다.

자유의 의식이 최초로 생긴 것은 그리스인에게서이고, 따라서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또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던 데 불과하다. 인간 자체가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인은 노예를 소유했고 그들의 생활 전체 및 그들의 빛나는 자유의 유지는 노예제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게르만 여러 민족이 비로소 그리스도교 영향을 받고서야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이고, 정신의 자유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이룬다는 의식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 요컨대 세계사란 자유의 의식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 진보를 그 필연성에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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