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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동기와 기회가 만나 확신을 낳다

테러의 방정식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동기와 기회가 만나 확신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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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꿈을 이룰 수 없다”…분노, 좌절이 테러의 씨앗
  • ● 테러범은 확신범…처벌 강화로는 못 막아
  • ● 범행 기회보다 범행 동기를 줄여라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Waco)는 인구 12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다. 1993년 4월 19일 미국인도 잘 모르던 이곳에서 미국 역사에 흔적을 뚜렷이 남길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발단은 51일 전인 2월 28일이었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다윗파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와 신도들이 기관총 등 불법무기를 쌓아놓고 마약 복용, 미성년자 간음 등을 일삼는다는 제보에 따라 이날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 요원들이 수색영장을 발부받고 웨이코 북동부에 위치한 다윗파 집단 거주 건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윗파 신도들이 총격전을 벌이면서 저항해 요원들은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51일간 대치가 지속됐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는 4월 19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중심으로 장갑차까지 동원한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최루탄을 건물에 투입하면서 작전이 시작됐는데, 건물 안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린이 21명과 임산부 2명을 포함해 7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연방정부를 전복하라!”

비극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이라고 해야 하나. 1993년 3월 웨이코에서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이곳을 방문한다. 그의 이름은 티모시 맥베이. 그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조용하게 지낸 맥베이는 2년제 대학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걸프전에 참가해 무공훈장까지 받은 맥베이는 1991년 12월 제대한 뒤 뉴욕 버팔로에서 잠시 경비원으로 일하다 극우파 민병대(militia)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맥베이는 청소년기부터 무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극우파 민병대는 연방정부와 진보 좌파가 국민을 억압, 수탈한다고 여기는 단체다. 정부의 폭정에 무력으로 대항해야 하며 이것이 미국의 헌법정신이라고 믿는다. 200여 년 전 영국의 폭정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미국 독립을 성취한 민병대와 자신들을 동일시한다. 또한 자유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연방정부를 뒤엎는 것이야말로 ‘제2의 미국혁명’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규율이 잘 갖춰진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 정부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행여나 연방정부가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재와 폭정을 휘두르지 않을까 염려했다. 만약 연방정부가 ‘괴물’로 변해 각주의 자치권과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려 든다면 또다시 총기를 들고 연방정부를 타도해야 하므로 총기 보유 권리를 헌법 조항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땅이 넓다. 100㎞를 달려도 집 한 채, 사람 한 명 만나기 어려운 지역이 꽤 있다. 예컨대 강도를 당해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최소 몇 시간이 걸리는 곳이 많다. 따라서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극우파 민병대 조직이 주로 인구밀도가 아주 낮은 미국 북서부 지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우파 민병대는 개인의 총기 보유를 신줏단지처럼 신봉하기 때문에 정부의 총기 규제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들은 언젠가 있을 ‘제2의 미국혁명’을 위해 수시로 비밀 집회를 열고 깊은 산속에서 집단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는다.

연방정부에 적대감을 가진 맥베이는 1992년 불법 무기소지 혐의로 민간인 랜디 위버가 연방수사관들에게 반항하다 사살되자 증오심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웨이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4월 19일 참사 소식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불을 지폈다. 정부에 대한 응징을 결심하게 만드는 직접적 동기가 된 것.

1995년 4월 19일. 웨이코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하게 2년째 되던 날, 오클라호마의 연방 청사 건물이 폭파되고 16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맥베이와 그의 동료 테리 니콜스의 범행이었다. 오클라호마 중심가에 위치한 뮤러(Murrah) 빌딩을 무너뜨린 폭탄 테러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할 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테러 사건이었다. 사망자가 168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엔 6세 미만 어린이도 19명 있었다. TNT 2300t 규모의 폭발이었다. 리히터 지진계는 3.0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측정했다. 엄청난 폭발력으로 인해 폭탄이 터진 뮤러 빌딩 주변 건물 324채가 부서지거나 손상을 입었고 86대의 차량도 파손되거나 불탔다. 재산 피해가 6억5000만 달러(약 7100억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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