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박원순 시장 아들 결혼식 ‘호화’ 혹은 ‘특혜’ 논란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3-06-1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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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결혼식 했다는 ‘서울 모처’, 알고 보니 최고급 예식 장소
    • 대관료 2000만 원, 꽃 장식 1200만 원, 1인당 식대 12만 원…
    • 한국가구박물관 관계자 “여기서 결혼한 건 맞다. 더는 말할 게 없다”
    • 박 시장 “평소 철학에 따라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노력했다”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매주 토요일 정오 무렵이면 서울시청 신관 시민청에서는 작고 뜻깊은 결혼식이 열린다. 허례허식을 없애고 신부 드레스부터 하객 식사비까지 500만 원 안팎의 비용으로 백년가약을 맺으려는 젊은 커플들이 이 ‘시청 결혼식’의 주인공이다. 시민청 사용료는 6만6000원. 하객들의 식사로는 비빔밥 등 소박한 음식이 나온다.

    서울시가 이처럼 결혼문화 개선에 나선 것은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소개하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다. 박 시장은 시민청(관청을 뜻하는 ‘廳’이 아니라 ‘들을 聽’을 쓴다)을 시민을 위한 참여와 소통의 공간으로 개방하고 예식도 치를 수 있게 했다. 시민청 결혼식 가이드북은 ‘허례허식으로 시민의 삶에 고통을 가져다준, 대한민국 결혼문화의 폐단을 개선하려는 공공의 결심’이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이런 취지는 시민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청자가 많아 심사를 통해 시청 결혼식을 치를 예비 신랑신부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작은 결혼식’ 공언한 박 시장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도 ‘작은 결혼식’을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와 조선일보가 함께 진행한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동참하며 “내 아이들도 작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정말 멋진 결혼식은 호텔에서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치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장소를 찾아 정말 가까운 사람들을 모시고 치르는 예식”이라고 했다.

    그런 박 시장이 최근 치른 아들 결혼식과 관련해 호화 혹은 특혜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역에서 성북동쪽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간송미술관과 길상사를 지나 한국가구박물관(관장 정미숙)에 이른다. 금요일이던 지난 5월 24일 오후, 흰색 카니발 승용차가 한성대입구 역과 가구박물관을 오가며 이 박물관에서 열리는 결혼식 하객들을 바쁘게 실어 날랐다.

    한국가구박물관 정문 옆에는 꽤 널찍한 박물관 부설 주차장이 있다. 예식 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벤츠, 아우디, 제네시스 등 고급 승용차가 속속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직원들은 차량마다 방문 목적을 확인한 뒤 주차를 안내했다. 박물관 정문에서는 두세 명의 직원이 찾아온 손님들의 이름을 하객 명단과 꼼꼼하게 대조한 뒤 입장을 허락했다.

    정문 안쪽으로는 양가 혼주가 밝은 표정으로 하객을 맞는 모습이 보였다. 신랑 측에는 박원순 시장이 부인, 딸과 함께 서 있었다. 박 시장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부인은 파랑 저고리에 하늘색 치마 한복을, 딸은 무릎까지 오는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화환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저녁 연합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에는 박 시장이 롯데호텔 임원과 사돈을 맺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박 시장의 아들 박모(28) 씨가 롯데호텔 맹경호 이사의 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것. 신랑신부는 오래 연애한 사이로, 신랑은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고 신부는 해외 유학 중이라고 한다.

    결혼식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신랑신부와 양가 혼주들이 작고 소박한 결혼식을 하기로 뜻을 모아 △서울시내 모처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박 시장 쪽 직계가족 30여 명 등 양가 가족 및 친인척들만 참석한 채 예식을 치렀으며 △청첩장에 혼주 이름이나 장소 등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나흘 후인 5월 27일 박 시장은 YTN 라디오에 출연해 아들의 ‘비밀 결혼식’에 대해 “제가 서울시 고위공무원이다보니 사회지도층들이 작고 조용한 결혼식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대관료만 2000만 원

    박 시장 측이 말하는 ‘작고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서울 모처’란, 한국가구박물관이다. 한국가구박물관은 2500여 평(약 8265㎡)의 대지에 들어선 총 10여 채의 한옥에 정미숙 관장이 오랜 세월 수집한 전통 목가구를 전시하는 곳이다.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종종 결혼식이 열리는데, 그 비용은 특급호텔을 뛰어넘는다. 꽃 장식 비용이나 식대 등은 비슷하지만, 특급호텔에서 받지 않는 대관료와 케이터링, 주차 대행 서비스 비용 등을 청구하기 때문에 전체 예식비로 따지면 특급호텔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

    ‘신동아’가 입수한 한국가구박물관 예식 견적서에 따르면 대관료가 2000만 원이고, 케이터링 및 주차 대행 서비스 비용으로 각각 550만 원, 330만 원을 내야 한다. 꽃 장식은 1200만 원, 1인당 식대는 12만 원이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10%를 따로 내야 하고, 식대와 케이터링 서비스에는 10%의 봉사료(Service Charge)가 더 붙는다. 한국가구박물관 웨딩 업무 담당자는 “우리는 결혼식을 1년에 한두 번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시공간을 비워야 결혼식장을 꾸밀 수가 있고, 예식 후 다시 전시물을 들여놓는 데 1주일가량 소요된다”며 “호텔에서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한국가구박물관 결혼식 안내 브로슈어에 실린 박물관 내 예식 모습.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신동아’가 입수한 한국가구박물관 결혼식 견적서.

    한편 한국가구박물관이 요구하는 최소 보장 하객 수는 120명이고, 최대 200명까지 초대할 수 있다. 120명은 박물관 내에서 식사하고, 나머지 하객은 인근 레스토랑으로 옮겨가 1인당 8만 원짜리 식사를 하게 된다.

    ‘신동아’는 국내 특급호텔 중에서도 예식비용이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신라호텔 영빈관과 한국가구박물관의 예식비를 과 같이 비교해봤다. 신라호텔은 꽃 장식이 1300만 원으로 가구박물관보다 100만 원 더 비싸고, 가구박물관에는 없는 400만 원짜리 웨딩무대 및 로비 장식 비용이 추가된다. 하지만 대관료 등으로 인해 전체 비용은 가구박물관이 더 높다. 하객을 200명으로 계산하면 총 비용이 한국가구박물관 6160만 원, 신라호텔 4300만 원으로 20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기타 비용 및 부가가치세 제외· 참조).

    한국가구박물관은 스스로를 ‘실제 한옥에서 우리 가구의 쓰임새와 실내장식, 그리고 생활 방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정미숙 관장은 평생을 항일·민주화 동지로 함께한 정일형 이태영 부부의 막내딸로 사재를 들여 15년에 걸쳐 가구박물관 내 한옥들을 건축했다고 알려졌다.

    한국가구박물관은 지난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때 영부인 오찬을 성공리에 개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구찌(Gucci) 91주년 특별 전시를 유치하고 큐레이팅까지 직접 맡아 화제를 모았다. 또 미국 CNN 웹사이트(www.cnngo. com)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꼽기도 했다. 그 동안은 외국인 손님을 비롯해 일부 단체에만 공개되다가 지난해 9월부터 일반인도 사전 예약을 하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대단히 품격 있는 공간”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박 시장은 이 박물관에 지난 4월 처음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북지역 유지(有志)들로 구성된 성북역사문화아카데미 최고위과정에 강사로 초청돼 4월 1일 가구박물관에서 ‘새로운 서울 만들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날 강연 서두에서 “가구박물관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굉장히 문화적인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강연에 참석한 정 관장을 향해 “돈이 있다고 해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대단히 품격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했다.

    ‘신동아’는 박 시장 아들의 가구박물관 예식에 관한 취재 과정에서 △양가 가족·친지뿐만 아니라 친구 및 지인들도 참석했다 △하객이 100~150명 정도였다 △가구박물관이 예식비를 대폭 할인해줬다는 등의 증언을 들었다. 또 언론에는 청첩에 양가 혼주 및 장소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됐는데, 신랑 측과 신부 측이 청첩을 따로 찍었는지 ‘신동아’가 신부 측 하객으로부터 입수한 청첩에는 혼주 이름은 없었지만 여느 청첩과 다름없이 지도와 교통편 등 예식장소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나와 있었다.

    박 시장 아들의 가구박물관 예식은 예식비를 제대로 치렀다면 호화 예식 논란을, 예식비를 할인받았다면 특혜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사안이다. ‘신동아’는 박 시장 아들 결혼식에 대한 취재 내용을 정리해 6월 11일 박 시장에게 질의서를 보냈고, 나흘 후인 14일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의 답변서를 받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소 처음 결혼식장으로 정한 곳은 신랑신부가 다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결혼식 날짜와 장소가 주위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조용한 결혼식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조용한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 알고 지내던 가구박물관 관장이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 가구박물관에서 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객 신랑 측에서는 청첩을 찍지 않았고, 직계가족 등 30여 명만 초대한 것이 맞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초대받지 못한 친인척, 시(市) 직원과 지인, 심지어 비서진으로부터도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작고 조용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신부 측에도 최대한 양해를 구했으나 아무래도 신랑 측보다는 많이 참석하게 되었고, 양가 합하여 100~1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비용 작고 간소한 결혼식을 원하는 양가의 뜻을 존중한 가구박물관 측이 내용을 조정해주어 간소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사는 1인당 4만 원 선에 맞춘 샐러드바 형식으로 음식 가짓수를 10개 미만으로 조정했고, 꽃 장식도 2개만 하는 등 간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가구박물관 측이 조정해줬다”

    ‘신동아’ 질의서에는 가구박물관의 예식비 견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관료, 케이터링 및 주차 대행 서비스 비용에 대해 박 시장이 알고 있었는지, 예식비용으로 총 얼마를 지불했는지를 묻는 항목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답변서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서울시 비서실 관계자는 “대관료 등에 대해서는 시장님이 모른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답변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이미 성실하게 답변했다고 생각한다”며 “일정이 너무 많으셔서 개인적인 일을 불쑥불쑥 물어보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일반 고객이 100~150명의 하객을 초청해 견적서에 나온 가격대로 예식을 치른다면 5280만~5760만 원(기타 비용 및 부가가치세·봉사료 제외)을 지불해야 한다. 가구박물관은 박 시장 자녀 예식에 한해서만 ‘가격 조정’을 해준 것일까, 아니면 견적은 견적일 뿐이라 일반 고객도 작고 간소한 예식을 원한다면 음식 종류와 가짓수를 조정해 식대를 깎아주고 꽃 장식 규모를 줄여주고 있을까. 그리고 박 시장 측으로부터 대관료 등의 비용을 일반 고객과 마찬가지 조건에서 받았을까, 아니면 이것 역시 ‘조정’ 대상에 포함됐을까. 가구박물관 관계자는 11일 “여기서 결혼한 것은 맞지만 더는 말할 게 없다”며 전화를 끊은 뒤 기자가 수차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응답하지 않았다. 두 차례 e메일로 보낸 질의서에 대해서도 회신하지 않았다.

    박 시장의 해명을 종합하면 그는 △가구박물관 예식의 일반 견적가를 모른 채 △가구박물관이 예식 내용을 조정해줘서 △1인당 식대 4만 원 등으로 양가 합쳐 100~150명의 하객을 초청해 간소하게 자녀 예식을 치렀다. 하지만 아무리 일반 견적가를 몰랐고 내용을 간소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예식을 올리려면 수천만 원을 내야 하는 장소를 택한 점은 공인으로서 주의 깊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 ‘작은 결혼식’은 단지 규모를 작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시민청결혼식 가이드북에 적혀있듯 허례허식(虛禮虛飾)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박 시장 자녀 결혼식은 과연 그가 평소 강조하고 장려해온 ‘작은 결혼식’ 취지에 맞는 것이었을까. 박 시장은 답변서 끝에 “작고 조용한 결혼식을 하겠다는 평소 철학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노력했음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특급호텔보다 비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작은 결혼식’?

    2010년 11월 G20 서울정상회의 때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영부인 오찬.



    ‘신동아’는 2013년 7월호 “박원순 시장 아들의 수상한 ‘작은 결혼식’ 특급호텔보다 비싼 곳에서 특혜 의혹” 제하의 기사에서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고 공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들의 결혼식을 호화롭게 치렀거나 특혜를 받았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박 시장 측은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장소를 찾다가 한국가구박물관에 문의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친인척 등 30여 명만 초대하고 청첩장도 찍지 않는 등 호화 결혼식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알려왔으며, 한국가구박물관은 ‘이전에도 혼주 측이 원하는 취지와 내용에 맞게 비용을 협의해 결혼식을 진행했고, 박 시장 측도 그 절차에 따라 협의했기 때문에 박 시장이라서 특별히 싸게 한 것은 아님’을 알려왔습니다.

    박 시장 측이 ‘마치 호화 또는 특혜와 관련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기에 이를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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