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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이스탄불의 무함마드 외투

  • 김능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aminkim@daum.net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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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카나 메디나가 아닌 이스탄불에 무함마드의 성물이 보관돼 있는 까닭이 뭘까.
  • 몽골의 침입으로 압바스 국이 무너진 후 그곳에 이주해 있던 투르크 족이 아랍인을 대신해 이슬람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슬람 수호자를 자임한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들은 여러 정복지에서 보물을 가져와 보존함으로써 그들의 위상을 강화하려 했다.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토프카피 궁 내 사실(私室) 전각.

터키 이스탄불의 토프카피(Topkapi) 궁 제3정원에 있는 사실(私室) 전각에는 이슬람 성물이 보관되어 있다. 주로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성물들이다. 무슬림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종교를 세상에 공표한 예언자이며 알라(Allah·하나님)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흔적을 보며 경의를 표하고 신앙을 다진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무함마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두 도시 메카와 메디나에서 활동했고, 그 지역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어떻게 그와 관련된 성물이 멀고 먼 이스탄불에 있게 됐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이슬람 역사에서 명멸한 주요 국가의 궤적을 살펴야 한다.

토프카피 궁의 이슬람 聖物

632년 무함마드 사망 후 아랍 무슬림들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우마이야 국(661~ 750)을 세웠다. 이후에는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압바스 국(750~1258)을 만들어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방대한 지역을 통치했다. 두 제국은 무함마드를 수장으로 하는 이슬람 공동체를 기반으로 했기에 ‘무함마드의 계승자’라는 의미의 ‘칼리프(khalifah)’를 최고 통치자로 삼았다.

1258년 압바스 국이 몽골의 침공을 받아 사라짐으로써 이슬람의 존립이 위태로워졌을 때 투르크족이 아랍인들을 대신해 이슬람을 지켜냈다. 투르크족은 이슬람을 근간으로 하는 셀주크 조(1077~1307)와 오스만 터키 국(13세기~1924)을 세웠다. 이스탄불을 수도로 한 오스만 터키 제국은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장장 500여 년간 중동의 패자(覇者)가 되어 아랍인들이 세운 칼리프 국가 체제의 명맥을 유지했다.

이것이 이슬람 상징물인 성물이 이스탄불에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오스만 터키 국은 중세와 근대의 오랜 기간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군림하면서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슬람 초기의 중요 유물을 보관했던 것이다.

16~19세기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군주)들은 이슬람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전리품으로 여러 정복지에서 중요한 보물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슬람 수호를 자임하면서 이슬람 성물들을 찾아내 보존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하려 했을 것이 분명하다.

외투에 얽힌 비밀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무함마드의 외투가 들어 있는 황금 궤(중앙의 긴 다리가 달린 궤).

토프카피 궁 사실 전각에는 무함마드의 발자국, 메카의 이슬람 신전인 카으바의 열쇠, 그 신전 안에 있던 흑석(黑石)의 덮개, 무함마드 교우들의 칼 같은 성물들이 여러 칸의 방에 전시돼 있다. 별도로 마련한 알현실에는 무함마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그의 치아와 턱수염 일부, 인장과 친필 서한, 그가 사용하던 칼과 활을 전시해놓았다.

일명‘성(聖)스러운 외투의 방’에는 무함마드의 외투와 그의 깃발이 들어 있는 황금 궤가 전시돼 있다. 필자는 무함마드의 외투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외투를 뜻하는 아랍어는 ‘부르다(burdah)’인데, 7세기 초에 지어진 유명한 ‘알부르다(al-Burdah·외투)’라는 제목의 고전 아랍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찬양하는 시인데, 혹시 이 시와 토프카피 궁에 전시된 외투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조사 결과 이 외투에는 이슬람 출현 당시인 7세기 초의 시대 변화에 따른 문명사가 담겨 있었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 외투는 무함마드가 이슬람 초기 시절 카읍 이븐 주하이르(662년 사망)라는 이름의 아랍 시인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왜 자신의 외투를 시인에게 줬을까. 카읍이 예언자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일까.

카읍 이븐 주하이르는 이슬람을 거부하고 무함마드를 비난했던, 그래서 무함마드의 명에 의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몰렸던 반(反)이슬람 시인이었다. 그런 카읍에게 예언자가 외투를 줬다니 의아하지 않은가. 그 문명사적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이슬람이 출현한 7세기 초의 메카로 돌아가보자.

무함마드는 40세 때인 610년 메카의 히라 산 동굴에서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632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계시(향후 이슬람 경전 코란으로 집성될)를 받으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갔다. 처음 메카에 이슬람이 전해질 무렵, 사람들은 무역에 종사하던 무함마드라는 자가 절대 유일신 알라에 대한 신앙과, 죄악에서 벗어난 올바른 삶을 강조하는 아리송한 내용의 구절을 말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초자연적 인식 능력을 타고났거나, 악마의 힘을 빌려 마력을 과시하거나, 부족의 신탁자로서 임무를 수행한 특출한 시인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겠거니 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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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amin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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