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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만신창이 숭례문 복원사업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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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통령을 위한 문화재 복원…참담한 결말
  • ● 공짜로 하겠다 내놓고 공사비 올려달라며 태업
  • ● 한겨울에 난로 켜놓고 한 단청 공사
  • ● 전통의 해석은 ‘그때그때 달라요’
  • ● 匠人과 문화재청의 야합…국고가 샌다
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1 복원식 직후부터 단청이 벗겨져 떨어지는 현상이 발견된 숭례문. 2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불타 무너지는 숭례문.

백화가 만발한 지난 5월 4일, 문화재청은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해 숭례문 복구 준공식을 열었다. 옥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 차림의 박 대통령은 취임식 때보다 더 환한미소를 지으며 “대한민국의 얼굴인 숭례문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감격의 순간을 국민과 함께 맞게 돼 기쁘다”며 “숭례문의 부활로 우리 민족의 긍지를 되살리고 새로운 희망의 문, 새 시대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여름 한 철을 지내고 가을을 맞은 지난 10월 숭례문이 ‘앓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숭례문의 서까래를 빛내주는 단청이 벗겨져 떨어지더니(박락·剝落), 기와가 변색됐다고 하고, 누각 기둥이 갈라져 터져나갔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숭례문 부실 복구는 물론 문화재 행정 전반을 철저히 조사해 엄중히 책임을 물으라고 지시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사색이 됐고, 국민은 숭례문이 불탔을 때만큼이나 속이 타들어갔다.

숭례문이 일찍 앓아눕는 바람에 더 큰 낭패를 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올 연말 정부는 복원에 참여한 이들에게 훈·포장을 줄 예정이었다. 대상자 선발과 공적 조사를 마친 상태에서 부실 복원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훈·포장 수여 후 이 사태를 맞았다면 더 큰 소동이 일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의 문화재 관리·운영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민과 정부는 문화재를 중시해야 한다는 ‘원칙’만 알았지, 그 원칙을 지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여기에 ‘문화재 정치학’도 개입했다.

숭례문 부실 복원은 한마디로 ‘전통대로’와 ‘잘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화재 발생 3개월 뒤인 2008년 5월 문화재청이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중요무형문화재 등 기술자들이 참여해 전통기법과 도구를 사용해 복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 화근이었다. 전통대로 한다고 해서 꼭 ‘잘하는 것’은 아닌데, ‘잘하는 것’으로 꾸민 것이 문제였다.

처음 문제가 된 단청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단청공들은 전통 안료와 아교를 사용했다. 아교는 단청색을 붙여주는 기능을 한다. 전통안료가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안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화학안료를 만들어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도 화학안료 써

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5월 4일 숭례문 복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그는 문화재 행정 경험이 적은 변영섭 교수를 문화재청장에 ‘전격적으로’ 지명했다가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숭례문에서는 서까래 끝에 그린 장단색(핑크빛에 가깝다) 단청이 주로 떨어졌는데, 이 색을 만들려면 유황과 녹인 납을 섞어야 한다. 우리 선조는 오래전부터 이 방식으로 장단색을 만들어 썼는데, 이는 화학식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화학안료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이전에 쓰던 것을 전통안료라고 일컫는다.

화학식으로 정리된 본격적인 화학안료는 1885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색깔이 좋고 오래갔기에 이 안료는 곧장 세계로 퍼져나갔다. 1901년 조선은 덕수궁 중화전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때 서양의 화학안료로 추정되는 ‘양록’과 ‘양청’을 구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몇 년 후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고 이후 화학안료가 빠르게 보급됐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문화재 보수와 관련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전통안료가 어떻게 단절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의 문화재 정책은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릉을 우연히 발굴하면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민족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신라의 능을 발굴하고 문화재를 적극 복원했다. 이 바람에 단청장(匠)을 비롯한 문화재 기술자들이 바빠졌다. 그 무렵 국내 최고의 단청공으로 활약한 이가 2006년 세속 나이 94세로 입적한 태고종의 만봉 스님이었다. 스님은 단청보다는 불화(탱화)에 더 능했는데, 1971년 정부는 스님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했다.

숭례문 단청 작업을 한 홍창원 씨는 15세이던 1970년 만봉 스님 밑에 들어가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배웠다. 그는 “스님의 뒤를 이어 인간문화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은 없었고, 그저 입에 풀칠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따라다녔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시멘트를 써서 석조 문화재를 복원하던 시절이라 누구도 전통 안료를 찾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색을 내고 그 색이 오랫동안 가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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