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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만신창이 숭례문 복원사업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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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나무에 단청을 붙이기 위해 아교를 썼는데, 그 모양이 길어서 ‘막대아교’라 했다. 막대아교로 붙인 단청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방법을 찾게 했다. 그리하여 막대아교 대신 합성수지로 화학안료를 붙이는 방법이 개발돼(1972년), 그것이 정부 표준 시방서에 올랐다. 이후 ‘합성수지+화학안료’ 단청이 대세가 됐다. 만봉 스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1973년 숭례문 단청을 했고, 1988년에는 그의 제자인 김형주 씨가 다시 숭례문 단청을 했다.

홍창원 씨는 1986년 스님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복원을 중요무형문화재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문화재 복원과 중수는 기술자가 소속된 업체에 의뢰한다. 1988년 홍창원 씨가 속한 업체는 서울 낙성대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해 숭례문 보수는 김형주 씨가 속한 업체가 맡게 됐다.

인프라 없이 ‘일본의 길’로

전통에 눌리고 정치에 밟히고…

숭례문 2층 누각의 추녀 끝 지붕판에 그려진 핑크빛(장단색) 단청이 떨어져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숭례문 복원을 앞두고 이런 관례를 깼다. 중요무형문화재 등 최고의 장인을 모아 복원한다고 선언하면서 홍 씨를 ‘징발’했다. 문화재청은 복원공사를 명헌건설에 맡기고, 홍 씨를 비롯해 다른 회사에 소속된 최고 수준의 장인들을 이 회사로 옮겨오게 했다. 그때만 해도 이것은 ‘영예로운’ 동원 이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홍 씨에게 천연안료로 단청을 하라고 주문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가 “국내에는 천연안료 전통이 끊어진 지 오래”라고 난색을 표하자 문화재청은 일본의 예를 알아보라고 했다. 우리보다 목조건물이 훨씬 많은 일본에서는 단청을 두 가지로 한다. 문화재가 아닌 일반 신사(神社)나 사찰의 단청에는 무슨 안료를 쓰든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보나 보물처럼 나라가 관리하는 목조건물에는 반드시 돌가루를 넣어 색을 내는(石彩) 천연안료로 단청을 하게 한다.



일본에서도 국보나 보물급 단청 공사는 발주가 적기 때문에 정부는 전통안료 단청의 경우 높은 공임을 주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제한해놓는다. ‘이너서클’을 만들어 자부심을 갖게 하고, 그들이 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청장의 길을 걷는 젊은이들은 선택을 한다. 실력이 달리면 일감이 많은 화학안료 쪽으로 가고, 자신 있으면 천연안료에 도전한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천연안료 제작술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장단색의 예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이미 합성(화학)안료를 만들어 썼다.

우리의 문화재 보수 복원 기술은 대부분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오사카에는 593년 준공됐다는 시텐노지(四天王寺)라는 절이 있다. 일본은 백제 기술자 3명을 불러 이 절을 짓게 했다는데, 그중 한 명이 유중광(일본명 시게미쓰)이다. 유중광은 578년 ‘공고구미(金剛組)’라는 조직을 만들어 공사를 했는데, 이 조직이 14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파산했지만, 다른 건설회사가 인수해 여전히 사찰 건축과 개보수를 하고 있다.

일본 문화재계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한 분야의 일만 해온 공방(工房)이 적지 않다. 공방에선 신참자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고 5, 6년은 청소 등 잡일만 하게 한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인성도 순화됐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기술을 가르쳐준다. 문화재청이 전통 방식대로 국보 1호를 복원하겠다고 한 것은 ‘일본의 길’을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엔 인프라가 있고 우리에겐 전혀 없다는 중요한 차이를 간과했다.

6월부터 단청 떨어져

2010년 홍창원 씨는 일본산 천연안료를 구입해 왔다. 그러자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들의 제보로 각 언론에서 ‘국보 1호에 일본 단청을 칠하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러나 천연안료를 구하려면 그 방법뿐이었기에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천연안료로는 필요한 모든 색을 낼 수 없기에 끊어진 지 오래인 전통 안료 기법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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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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