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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파워엘리트 서울고 27회

장관급 5명 동시 배출…각 분야 최고전문가 수두룩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新 파워엘리트 서울고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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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파워엘리트 서울고 27회
‘전국구’의 힘

1974년 서울지역 고등학교가 평준화하기 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수재 학교는 경기고였다.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가 명문고의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긴 했지만 서울대 합격자 수나 사법고시 합격자 수에서 경기고와 서울고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1946년 개교한 신흥 공립학교인 서울고가 일제강점기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에서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의 경기고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경복고는 일제강점기 경성제2고등보통학교가 전신이다. 당시 ‘경기고는 공부만 아주 잘하는 학생, 서울고는 공부도 잘하면서 세련되게 잘 노는 학생, 경복고는 촌스럽지만 우직하며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라고 세 학교를 비교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줄곧 2위에 머물던 서울고에서 어떻게 27기 같은 ‘돌연변이’ 집단이 나온 것일까. 서울고 27회 동기회 총무를 10년 넘게 맡고 있는 강승문 한강농수산 사장은 “27기는 평준화 이후 후배들과는 물론, 위 선배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27기는 1972년 3월 입학해 1975년 2월 졸업했다.

“우리 1957년생은 선배 세대에 비해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그만큼 입시경쟁도 치열했다. 더구나 우리 바로 위 선배들까지만 해도 서울중학교에 입학하면 서울고까지 무시험으로 진학했다. 그런데 1970년 중학교가 평준화하면서 서울중학교가 폐교했다. 바로 우리 기수부터 100% 입학시험으로 신입생을 선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방 장관도 전남에서 올라왔고, 최 원장도 충청도에서 올라왔다. 그러니 학교는 서울에 있어도 동문회는 제주도 지부까지 전국적으로 다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전국의 수재들이 경쟁했으니 당연히 입학 성적도 좋았다. 합격 커트라인이 경기고와 1점밖에 차이가 안 났다. 만점 합격자도 경기고만큼 수두룩했다. 우리 다음 기수인 28회까지 전국적으로 선발했다가 29회부터 고교평준화가 이뤄졌다.”



그는 27기가 졸업할 때 서울대 합격자가 경기고보다도 더 많았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당시 입시전문지 ‘진학’에 따르면 1975년 서울대 합격자수는 경기고 512명, 서울고 435명으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서울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숫자는 아니고 해당 학교별 발표 자료를 추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강 총무는 “그건 재수생, 삼수생까지 포함한 숫자다. 고3에서 바로 입학한 숫자는 380명 정도로 우리가 경기고보다 더 많았다. 당시 우리가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27회 때문에 후배인 28회가 손해를 많이 봤다고 했다.

“28회도 전국에서 인재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교수나 연구원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려 해도 바로 1년 선배인 우리가 선점하고 있으니까 길이 막혔다. 그래서 학계나 연구기관보다는 기업 쪽으로 간 후배가 많다.”

新 파워엘리트 서울고 27회
교수·의사·연구원 300명 넘어

서울고 27회 동기회에서는 졸업생 730여 명 중 작고하거나 이민 등으로 근황 파악이 안 된 경우를 제외하고 60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졸업생들의 직업을 분류해보니 의사만 100명이 넘었다. 대학교수 또한 100명이 넘었다. 연구기관 등에 몸담고 있는 경우도 50명이 넘었다. 지금은 이직이나 이민 등으로 줄어서 그렇지 처음엔 교수와 의사 숫자가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법조계는 의외로 적어 12명에 불과했다.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도 10명 안팎이었고, 언론인도 10여 명에 불과했다. 경기고는 법대 등 인문계에 강해 ‘엘리트형 인재’가 많고 서울고는 이공계에 강해 ‘전문가형 인재’가 많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듯하다. 서울고 27회 출신 교수와 연구원들을 분석한 결과도 이공계 쪽 비율이 훨씬 높았다. 특히 CEO의 경우 이공계 출신이 적은 국내 기업 풍토에서도 서울고 출신 사장들은 자연계열 출신이 많았다.

법조계는 물론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등을 통해 직업공무원으로 진출하는 숫자가 적은 이유에 대해 한 동기는 “서울고 교풍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고 교훈은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 지키자’다.

“서울고 출신은 연줄을 만들고, 로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도 내가 잘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1학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남 눈치 안 보고 깨끗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데 가장 적합한 직업이 의사, 교수, 연구원이다. 사실 법조계란 곳이 혼자 깨끗하다고 살아남는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법조계로 진출한 인사들은 그렇게 빛을 보진 못했다. 박삼봉 대전고등법원장 겸 특허법원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장판사 때 일찌감치 옷을 벗었다.

“법조계 쪽이 약하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다들 잘나갔다. 조관행 변호사만 해도 판사 시절 그 기수에선 선두였고, 정병욱 변호사도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먼저 잘나가면 견제가 심하지 않나. 좀 억울하게 옷을 벗은 감이 없지 않다. 일찍 옷을 벗은 이유란 게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은 성격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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