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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을(乙)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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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 가치의 교환’

거래의 기술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비정형 가치를 평가하고 주고받는 일이다. 예컨대 부모는 아이가 ‘산수 시험에서 100점 받은 것’을 어느 정도의 가치로 평가해 그에 합당한 선물을 줄 것인지를 잘 결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 계산을 잘 해내지 못한다. 거래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울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비정형 가치에 관한 개념이 형성되면 차분하게 계산하는 쪽으로 성격이 바뀐다. 거래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변모해가는 것이다.

모태갑은 유전자 속에 그런 코드가 담겨진 채 탄생한다. 어린 시절부터 슈퍼갑인 부모의 어깨너머로 거래의 기술을 배운다. 청년 시절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거래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유전자 속에 그런 코드가 없이 태어나는 대다수 모태을은 가정에서조차 거래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슈퍼을 또는 슈퍼갑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거래와 관련한 수많은 경영서가 있다.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거래비용 이론도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도 잘 먹히는 을의 거래 기술은 대부분의 을이 참고할 만하다.



정치권에서 거래는 일상적이지만 모든 정치인이 거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불법선거자금 수수 혐의로 처벌을 받은 실세 정치인이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당연히 당 안팎에서 비판론이 일었다. ‘구태 정치인은 공천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해당 선거구의 자기 당 소속 다른 후보자의 반발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실세는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공천에 반발하던 다른 후보자 A씨는 정부 산하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거래가 당사자들로서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 거래에서 을의 위치였던 A씨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그가 사용한 거래의 전략은 무엇일까.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라

정치권에서 거래할 때는 거래에 앞서 치열한 논리전과 홍보전을 벌인다.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일단 밀어붙이는 것이다. A씨는 공천에 앞서 실세 구 정치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공천을 강행하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무소속 출마로 표를 분산시켜 떨어뜨리겠다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런 모습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협상 출발점,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한 나의 협상 출발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방 역시 나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양극단을 확인한 다음 그 중간의 어떤 지점에서 절충점을 찾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정치 협상의 기본이다. 여야가 극한대립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모습, 수없이 봤을 것이다.

논리전과 홍보전을 벌일 때는 통상적으로 포지티브 전술과 네거티브 전술을 혼합 사용한다. 나의 강점을 설명할 때는 주로 포지티브 전술을, 남의 단점을 설명할 때는 네거티브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네거티브 전술은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상대방이 반발해 거래가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내줘야 하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실 네거티브 전술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적극적으로 거래에 임하도록 하는 촉매제로 한정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을 아예 제거할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때 필요한 ‘신의 한 수’가 바로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촘촘하게 절충안 만들어야

홍보전을 거치고 나면 본격적인 거래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절충안을 많이 가진 쪽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상대편이 얻을 수 있는 최고치와 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치의 중간 어디쯤에 서로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이때 서로의 이익이 정확하게 반분되는 균형점이 어디인지를 우선 노려보자. 나의 목표는 내가 바라는 최고치와 그 균형점 사이에서, 가능한 한 내 최고치에 가까운 지점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배열할 수 있는 절충안을 가능한 한 촘촘하게 만들어서 협상에 임하자.

물론 그 절충안은 구체적으로 정의된 것이어야 한다. 내가 이번에 출마를 포기할 테니 정부산하기관 기관장 자리를 보장해달라는 식보다는 이번에 공석이 된 한국○○공사 사장 자리를 보장해달라는 식의 절충안이 더 좋다는 것이다. 대충 준비한 절충안 말고 매우 철저하게 준비한 절충안 말이다.

상대방이 고개를 저을 때마다 내게 유리한 절충안을 하나씩 내놓으며 끈기를 갖고 지구전을 벌여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상대방이 무너지거나 반색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흡족하다는 표정은 금물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반대로 협상 도중에 상대방이 고개를 가로저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게 무너지는 것이다. 을이기 때문에 더 그러해야 한다.

레시피 하나는 있어야

죽기살기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죽거나 그가 죽는 결과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 거래를 하는 이유가 뭔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 당연히 거래할 이유도 없다. 슈퍼을과 그냥 을의 차이점은 결국 누가 이익을 더 많이 남기느냐에 있다. 슈퍼을은 어떤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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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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