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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제각각, 말은 러시아어 “그래도 우린 조선 사람”

외국인 정책의 그늘 한국의 ‘카레이스키’들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국적 제각각, 말은 러시아어 “그래도 우린 조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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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국내 3만 명…안산에만 5000여 명 밀집
  • ● 하루 12시간 노동에 쪽방생활
  • ● 언어불통, 최저임금, 비자 만료 삼중고
  • ● 150년 이어진 지난한 유랑史
  • ● 법적·제도적 지원 전무…무너지는 ‘코리안 드림’
국적 제각각, 말은 러시아어 “그래도 우린 조선 사람”

경기 안산시 선부2동 땟골마을(왼쪽). 다가구주택마다 가스계량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위). 고려인들의 숙소인 쪽방 내부(아래).

11월 29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일명 ‘땟골마을.’ 좁은 골목마다 사열대 앞 장병들처럼 양쪽으로 빼곡히 늘어선 다가구주택. 그 건물 외벽에 인쇄회로기판 무늬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은 가스계량기들. 오가는 이 드문드문한 한갓진 거리. 무심히 흘려보면, 여느 중소도시 변두리 주택가의 초겨울 평일 낮 풍경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슈퍼마켓, 미용실, 식당, 노래방 등 유별날 게 없는 가게들의 간판엔 이채롭게도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여 있다. 행인들의 대화에서도 러시아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중심가에 해당하는 땟골삼거리엔 닷새 전 ‘고려인 희망 나눔 바자 겸 땟골마을잔치’가 열렸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결에 춤춘다. 이곳은 국내 최대 고려인 동포 밀집지다. 볏과에 속하는 풀인 띠가 많아 ‘띳골’로 불리다 ‘땟골’로 이름 붙은 마을. 땟골의 고려인은 2000여 명에 달한다.

국내 고려인 6분의 1 거주

국내 거주 고려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매월 발간하는 공식 통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엔 중앙아시아 고려인을 별도로 통계를 내는 항목이 없기 때문. 다만 김준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의 ‘고려인 동포 권익구제 방안’ 자료에 따르면, 2013년 8월 현재 국내 거주 고려인은 최소 2만2000명 이상이다.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이 약 1만5000명으로 가장 많고, 러시아 고려인 약 4700명, 카자흐스탄 고려인 약 2000명 등이다. 체류자격별로는 방문취업(H-2 비자)이 1만2000명, 재외동포(F-4 비자) 8000명, 기타 영주권 및 결혼이민자 순이다. 그러나 불법체류자까지 합치면 실제론 3만 명가량이 국내 체류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땟골의 고려인 수는 해당 지역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땟골엔 삼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400~500m에 200여 채의 다가구주택이 있고, 집집마다 11~15칸의 쪽방이 들어차 있다. 쪽방 거주자 대다수가 고려인인 점을 감안할 때 2000명가량으로 추산할 수 있는 것. 땟골을 포함한 안산시 전체엔 5000여 명의 고려인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체류 고려인 전체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유랑과 이산은 ‘현재진행형’

박 따지아나(50) 씨도 ‘땟골 고려인’ 중 한 명이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출신으로, 2006년 한국에 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돈 벌러 왔다”고 한다. 고졸 학력임에도 우수리스크에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일거리가 모자랐단다.

박 씨의 직업은 인력파견업체 통역. 오전 7시~오후 8시가 근무시간이다. 한국에 온 첫 4개월은 서울 불광동의 쌈밥집에서 서빙을 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빨리 배웠다. 보수는 월 85만 원으로 박했다. 이후 휴대전화·자동차·냉장고 부품 제조업체, 플라스틱 사출성형 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다른 고려인보다 나은 한국어 실력을 알음알음 인정받아 2013년 6월 지금 직장을 구했다. 그나마 어릴 적 고려인 1, 2세대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입’과 ‘귀’를 통해 배운 ‘고려말’ 덕분이다.

박 씨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결혼도 했지만 이혼하게 됐고, 아들 둘을 혼자서 양육하기란 역부족이었다. 1998년 우수리스크로 건너간 그는 러시아 식당 요리사로 일했다. 그래도 생활고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택한 게 ‘나홀로’ 한국행. 아이들은 카자흐스탄의 오빠에게 맡겼다. 다행히 큰언니가 먼저 한국에 들어와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어 정신적 부담은 덜했다.

박 씨는 2007년 4월 땟골에서 만난 러시아 남성과 재혼했다. 5세 연하인 남편도 재혼. 남편은 안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통역으로 동료 고려인들이 일자리 찾는 걸 돕고 ‘고맙다’는 말도 들을 수 있으니까. 다만 일부 한국 사람들이 고려인더러 한국말 모른다고 면전에서 ‘바보’라 욕하며 깔볼 땐 무척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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