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대한민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만들자!

인권 국제화를 위한 제안

  •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유엔재판관

    입력2014-01-21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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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은 인권 선진국인가, 아니면 후진국인가. 관점에 따라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주제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된 정창호 부장판사는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대한민국이 아시아 인권 선도국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만들자!

    북한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6월 4일 밤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북한 청소년의 인권 보호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기본적 인권은 우선적으로 개별 국가단위로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국가단위의 보장을 넘어서는 ‘국제적 인권 보장’의 필요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기됐고 국제인권재판소들이 설립됐다. 기본적 인권 보장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평화에 관한 문제이고,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지역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먼저 1959년 유럽인권재판소가 설립됐고 1979년 미주인권재판소, 최근에는 2006년 아프리카인권재판소가 설립됐다.

    국제인권재판소를 통한 국제적 차원의 인권 보장은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아시아도 아시아인권재판소(Asian Court of Human Rights)를 설립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필자는 아시아인권재판소의 설립을 위한 논의는 아시아 다른 국가가 아닌 바로 대한민국이 이를 주도해야 하고, 아시아인권재판소의 소재지도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1949년 설립된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국제연합이 1948년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에 따라 인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1950년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협약’을 채택했고, 이 협약에 따라 1959년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설립됐다. 현재 유럽평의회 소속 47개 회원국 전체가 유럽인권재판소 관할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이나 비정부기구에도 협약 위반을 이유로 당사국을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는 국가만을 당사자로 인정하는 전통 국제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변화를 보여준다. 앞으로 설립될 아시아인권재판소 역시 이러한 개인의 제소권한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자국 인권보장제도 완비 효과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에 개인을 제소하기 위해서는 국내적 구제수단을 모두 활용한 후에만 가능하도록 하는 ‘보충성의 원칙’이 채택되고 있다. 국내에 인권보호를 위한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이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헌법소원’과 같은 제도를 갖춘 회원국의 국민은 이러한 국내적 절차를 모두 마쳐야만 그 후 유럽인권재판소에 적법하게 제소할 수 있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칙은 유럽인권재판소 회원국들로 하여금 자국의 인권 보호 심사 기능을 강화하도록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2012년까지 헌법소원제도가 시행되지 못한 터키의 경우 자국 헌법소원에 기한 기본권 심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 모든 인권 사건이 바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됐다. 그 결과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사건이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되고 유럽인권협약 위반 판결을 가장 많이 받은 회원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게됐다. 마침내 터기 정부는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헌법소원제도를 신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시아인권재판소가 설립될 경우에도 회원국의 인권 보장에 관한 주권을 존중하고 사건 처리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서도 보충성의 원칙이 도입돼야 한다. 이를 통해 아직 인권보장제도를 완비하지 못한 회원국들이 헌법소원 등과 같은 기본권 심사 절차를 갖추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제소된 당사국이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유럽인권재판소는 판결(judgment)을 통해 물질적 및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명하며, 이러한 판결은 사건 당사국을 구속하므로 그 당사국은 반드시 판결의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한편 재판소는 이 협약의 해석에 관한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낼 수도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국내적 절차를 통해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호수단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한 유럽인권재판소는 설립 이후 사건을 매우 충실히 처리해왔다. 유럽인권재판소에는 매년 5만 건 이상의 사건이 접수되고 1500건 이상의 판결이 선고되면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신뢰받는 국제인권재판소로 정착했다. 이제는 오히려 너무 많은 사건이 접수돼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시아인권재판소 역시 당사국을 구속하는 유효한 판결을 통해 물질적 및 정신적 손해배상을 명하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재판소로 정착해야 한다.

    ‘불간섭’ 고수 중국, 관심 없는 일본

    최근 유럽 시민단체들은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과 관련해 영국 정부 소속 정보통신부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권을 보장한 협약을 위반했다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한편 유럽인권재판소는 2011년 7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해 “국가는 국민의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 ‘아세안공동체’ 출범을 준비하는 아세안은 이미 1993년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아세안 지역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인권의 국제적 보장 역할은 하지 못한다. 한편 최근에는 아랍연맹이 바레인을 중심으로 아랍인권헌장에 기초한 아랍인권재판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우며 자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유효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현재로서는 아시아 국가들에 인권의 국제적 보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룬 중국의 경우 인권문제에 대해 유엔헌장 제2조 소정의 ‘내정’을 앞세워 ‘내정 불간섭 원칙’만을 철저히 고수한다. 일본은 경제대국답게 유엔 등 국제기구에 대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 국제평화에 크게 기여해왔지만, 아시아 지역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지역 시스템의 구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제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인권 보장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결과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발전한 인권 보장 국가가 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인권 보장을 위한 의미 있는 판결과 결정을 지속적으로 선고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인권 보장을 강화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비정부기구가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법원은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석하면서 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사법부 독립, 사법부 투명성, 사법부 접근성 등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개별 아시아 국가와의 사법 교류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한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인권을 침해하는 입법과 불법적인 공권력에 대한 위헌 선언을 통해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화 정착에 기여해왔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2010년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설립되는 성과를 냈다.

    대한민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만들자!

    지난해 12월 9일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시청역 안에 설치된 조각품. 다른 사람을 밟고 서서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글귀를 적는 모습이 역설적이다.

    인권 제도의 수출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회의와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은 회원국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시아 각국의 사법부와 헌법재판을 발전시킴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을 논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은 자명하다.

    아시아 국가는 대부분 자국의 인권 상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힘든 여정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럴수록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을 위한 논의는 대한민국이 주도해야 하고 인내하면서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발전된 인권 시스템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인권 제도를 수출할 기회를 얻는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사법체계가 해외로 수출된 사례가 있다. 국제무역의 발전은 무역 자체의 발전뿐 아니라 무역 관련 법규의 발전도 이루었다. 세계적으로 통일된 국제무역법규를 제정하는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는 한국의 이런 발전을 중시해 최초의 지역사무소를 2012년 1월 송도에 설립했다. 그 후 아시아 각국은 송도에 위치한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를 방문해 우리나라의 무역법규 발전과정을 배운다.

    대한민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만들자!
    정창호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과대 국제법 석사, 제32회 사법시험

    2008년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외교부 사법협력관 파견, 2010년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2011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ECCC) 유엔재판관


    이제는 이러한 국제무역의 경험뿐 아니라 인권 발전 경험도 아시아 각국과 공유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을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나아가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가 위치한 송도를 아시아인권재판소 소재지로 제공하면서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국제무역법규 확산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인권 발전을 이루기 위한 국제인권재판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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