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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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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전달이라는 언어의 기술적 기능은 점차 설자리를 잃는다. 오히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 간 상호반응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어는 의사전달뿐 아니라,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상호반응 시스템을 함께 갖고 있다.
  • 한국에서 소통이 더 어렵고 불통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영어는 한국어보다 생각과 사실을 전달하는 데 더 충실하다.

중·고등학교 때 필자가 가장 싫어하고 못하는 과목 중 하나가 영어였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영어권인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미국에서 총 8년 정도를 살았고, 대학원을 다니고 학위도 받고 직장생활까지 한 나는 영어를 웬만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헷갈려서 정확히 답하기 어려운 영어 질문이 바로 “Didn‘t you have dinner?(너 밥 안 먹었니)”다. 우리말로 대답은 너무나 쉽다. 밥을 먹었을 때는 “아니오, 먹었어요”, 안 먹었을 때는 “네, 안 먹었어요”라고 하면 된다. 안 먹었냐고 물어봤으니까. 하지만 영어 대답은 전혀 다르다. 밥을 먹었을 때는 “Yes, I did.”, 안 먹었을 때는 “No, I didn‘t.”다. 더 황당한 것은, 영어로 “Did you have dinner?(너 밥 먹었니)”로 물어봐도 영어의 대답은 똑같다. 우리말로는 ‘먹었니’와 ‘안 먹었니’라는 질문에 다르게 대답해야 하고, 영어에서는 질문에 상관없이 대답은 한결같다.

처음 미국에 가서 한동안 진짜 헷갈렸다. 나중에 간신히 영어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안 먹었니” 하는 질문에 영어로 “No, I didn‘t”라고 완벽한 부정문 대답을 하면서도 머리는 더 열심히 끄덕이며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이런 사소한 질문은 괜찮다. 국가 원수들 간의 중요한 협상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우리나라 대통령이 말로는 “아니오,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정확히(하지만 어색하게) 얘기하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얼마나 헷갈리고 위험한 순간이 되겠는가. 이런 언어적 차이는 단순히 문법의 차이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언어 기능의 차이이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상호적 반응

보통 우리는 언어를 생각과 사실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어가 한국어보다 그 목적에 더 충실하다. 상대방이 어떻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물어보건 상관없이, 그 질문은 결국 나의 식사 여부를 묻는 질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의 식사 여부에만 근거해서 답하면 된다. 밥을 먹었으면 무조건 Yes (네), 밥을 안 먹었으면 No (아니오). 상대방의 질문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정확히 나의 식사 여부만 고려해서 긍정과 부정을 결정하면 된다. 따라서 나의 상태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으로 가장 오류가 적은 의사소통법이다. 더구나 질문을 듣지 않고 답만 들어도 식사 여부는 명확히 드러난다. 그래서 영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description)’이 된다.

반면 한국어는 나의 식사 여부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에게 긍정으로 물어보면, 나의 상태가 긍정이면 긍정으로 답하고, 부정이면 부정으로 답하면 된다. 하지만 부정으로 물어봤을 때, 나의 상태가 부정이면 긍정으로 답하고 나의 상태가 긍정이면 부정으로 답해야 한다.

한국어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비효율적이고 헷갈리는 문법을 가질까? 바로 한국어의 본질적 기능이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상호적 반응(interactive response)’에 있기 때문이다. 이 반응의 기능을 확인하는 방법은 한국에서 한국말로 영어처럼 대답해보면 확실해진다. 누군가 “밥 안 먹었니”라고 물어볼 때, “아니, 안 먹었어”라고 대답해보라. 십중팔구는 다시 물어본다. “밥 안 먹었냐고?”라고. 다시 “아니, 안 먹었어”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다음 우리가 들을 말은 빤하다. “너 내 말 안 듣고 있지!”

어찌 보면 한국어는 의사전달의 기능뿐 아니라,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같이 가지고 있다. 이래서 한국에서 소통은 어렵고, 불통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런 반응 확인 시스템은 한국 사회를 더 어렵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관계주의적 한국문화에 더 잘 들어맞기에 우리 스스로가 발전시켜온 것이다.

한국 사회를 동북아문화권에 속하기에 흔히 집단주의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국 문화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측면에서 보면 분명 집단주의적이다. 개인의 특성이나 고유성보다는 집단의 조화와 화합을 중요시하고, 개인의 권리나 자유보다는 집단을 위한 의무나 책임을 강조하고, 개인의 성취와 자아실현보다는 집단의 이익과 집단정체감이 더 우선시되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집단주의 국가가 똑같지 않다. 특히 수많은 심리학적 연구가 일본과 미국을 비교한 자료들에 근거하기에 일반적인 집단주의적 특성은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집단주의 vs 관계주의

일본과 한국을 비교한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집단주의는 조직에 대한 집단주의다. 즉, 조직 속의 한 개인으로 자신의 역할과 조직의 목적과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규범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집단주의는 조직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집단주의였다. 부모, 자녀, 친구, 친척과 같은 중요한 사람들이나 조직이 아닌 조직의 동료들과의 관계와 화합이 삶에서 중요한 문화적 특성을 갖는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한국인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으로 밝혀진 관계주의다.

관계주의는 조직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일대일의 대인관계적 맥락에 더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감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따라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는 맥락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조직이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임무보다 오히려 타인과의 개인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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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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