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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먹방 전성시대’의 사회심리학

  • 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이혜미 |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4년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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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 팬들 사이에 때 아닌 ‘치맥 열풍’을 불렀고, 3월 3일(한국시각) 미국 LA에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브래드 피트 등 세계적인 톱 배우들이 ‘피자 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먹방’의 전성(全盛)에 깃든 사회심리학.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혼자 사는 남녀의 식생활 문화와 로맨스를 그린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은 실연의 고통에 빠진 두 젊은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복경찰 금성무는 4월 30일까지 유통기한이 정해진 파인애플 통조림을 계속해서 먹는다. 전 애인이 파인애플 통조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정복경찰 양조위는 매일 패스트푸드점에서 스튜어디스 애인이 즐겨 먹었던 샐러드를 산다. 이들은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애인이 좋아했던 음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사회적, 심리학적 맥락에서 보면 두 젊은 경찰관은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젊은 세대가 갖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허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는 이른바 ‘먹방’ 트렌드도 ‘중경삼림’에 나오는 두 경찰관의 심리구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육체적 욕구(need)를 해결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거나 허기진 위장을 채우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는 욕구의 배고픔이 아니라 욕망(desire)의 배고픔에 빠져 있다.

정서적 식욕, 그 욕망의 배고픔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Roger Gould)는 탐식 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왜 사람들이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연구했다. 정신과 의사인 그에게 온 많은 환자는 사랑에 실패하거나 다른 사람이 몹시 미워서,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과식을 하고 탐욕스럽게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탐식 기저엔 ‘무기력증’이 있었다. 식욕은 자신의 무기력증을 메우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먹어도 탐식은 해결되지 않는다. 환자들이 갖고 있는 무기력증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굴드가 제기한 것은 ‘정서적 식욕(emotional eating)’의 문제였다. 결국 폭식이나 탐식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는 탐식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욕구는 해결됐다. 그러나 남아 있는 빈 밥그릇을 보면서 허기를 느낀다. 나는 우리 시대 젊은 세대가 갖는 마음의 상태를 ‘정서적 허기(sentimental hunger)’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욕구만 채우면 되는 동물이 아니기에 정서적인 허기를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있어서 더 큰 허기를 야기한다.

정서적 허기는 경제적 결핍과 관계적 결핍에서 비롯된다. 경제적 결핍은 문자 그대로 경제적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허기다. 젊은 세대는 경제적 관계로부터 배제된다. 젊은 세대가 신자유주의 물결이 초래한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젊은 세대는 청년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확대로 파편을 맞는다. 동시에 이들은 관계의 과잉 속에서 허기를 느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과잉,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밖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가상공간에서 이어지는 불안감 등이 관계적 결핍을 야기한다. 가능성이 상실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불안감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부추긴다. 이 모순성이 심리적으로 관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맛에서 ‘먹는 것 보기’로

우리는 정서적 허기로부터 다양한 문화 트렌드가 부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불어온 힐링 열풍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면서 떠올랐다. 복고나 향수도 현재의 불안과 좌절에 대한 방어로서 과거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보여준 건 지금의 30대가 10대와 20대에 겪은 첫사랑의 기억이다. 또 로봇 인형을 모으는 키덜트(ki-dult) 현상도 유행한다. 일종의 세대 퇴행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 고착되는 것이다. 배타적 공격성과 자기비하, 여성 및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감을 보여주는 일베 현상도 이와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먹방 트렌드도 정서적 허기가 투영된 다양한 문화현상 중 하나다.

음식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음식 문화는 그만큼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변화를 극명하게 반영한다. 음식 문화의 변화에 따라 음식 관련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화해왔다. 전통적으로 음식 프로그램은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주부들이 주 시청 대상이었다. 참살이(웰빙) 열풍이 불어오면서 안전한 먹을거리, 몸에 좋은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화두였다. ‘잘 먹고 잘 사는 법’(SBS), ‘한국인의 밥상’(KBS)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먹는 음식들이 안전한지도 관심을 끌게 됐다. 음식과 시사 프로그램이 결합하면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채널A) ‘미각 스캔들’(jTBC)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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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이혜미 |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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