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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집 나간 가장(家長)들 24시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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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나온 가장(家長)들이 서울 영등포역 일대로 모여든다. 역을 중심으로 한 교통근접성, 전통시장의 낙후한 환경, 주택가 곳곳에 자리 잡은 여인숙과 고시원, 각종 음식점과 술집, PC방과 노래방, 화상경마장까지 돈 없고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한 먹을거리와 놀거리, 볼거리가 풍부해서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숱한 가장의 위험한 가출 24시.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실낱같은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던 6월 2일 오후 4시 반. 서울 영등포시장 맞은편 대로변의 한 낡은 건물 1층엔 공사로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2층으로 통하는 건물 입구를 지나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자, 노숙인이 단골로 드나든다는 PC방이 나타났다. 동행한 서울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김태석 노숙자담당관(이하 담당관)이 “여긴 남자만 있는 곳이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니 절대 취재 온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궂은 날씨 탓인지 찌든 담배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찔러 숨쉬기가 불편했다. 창문이 모두 가려진 어두컴컴한 실내는 영업 중인가 싶게 조용했다. 평소 안면 있는 주인과 눈이 마주친 김 담당관은 “사람 좀 찾으러 왔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실내를 눈으로 훑자 100개 남짓한 칸막이 좌석 중 20여 개를 40~60대 남자 손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컴퓨터에 별 관심이 없는 듯 엎드려 잠을 청하거나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멍하니 있었다. 몇몇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며 자세를 고쳐 앉고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쫄’과 ‘반쫄’

평일엔 노숙인촌 일용직 ‘불금’은 화상 경마장에서

영등포시장 인근 주택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는 노숙인을 살펴보는 김태석 서울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노숙자담당관.

역을 중심으로 한 영등포 일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은 줄잡아 700여 명. 짧게는 20일, 길게는 3년간 머물 수 있는 노숙인을 위한 5개 일시보호·자활시설(쉼터)에서 생활하는 500명을 비롯해 PC방과 다방,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거리와 여인숙·고시원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 지역에서 통용되는 은어가 ‘쫄’과 ‘반쫄.’ ‘쫄’은 IMF 외환위기 이후 거리 무료급식소 앞에 ‘쪼르르’ 줄 서서 밥 타기를 기다리는 노숙인을 가리키는 은어다. ‘쫄’이 거리 노숙인을 뜻하는 반면, ‘반쫄’은 쉼터나 여인숙, 고시원 등 주거공간으론 적합하지 않지만 당장은 묵을 곳이 있는 노숙인을 가리킨다. 이들을 ‘반쫄’로 부르는 이유는 언제든 일자리가 끊겨 돈이 떨어지면 다시 길거리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

이곳 노숙인은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익명성에 몸을 숨긴다.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철저한 경계와 거리 두기로 인해 일주일의 취재기간 내내 노숙인에게 가까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PC방을 나서려는 순간 멀리서 남자 2명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그중 한 명은 며칠 전 PC방 건물 앞에서 마주쳤던 50대 초반의 이모 씨였다. 그때 그는 “반장님(김태석 담당관), 지구대에 ‘실종신고 들어왔다’고 하고 저 좀 잡아서 시골집에 보내줘요”라며 하소연했다.

얼굴을 익힌 덕에 경계심을 많이 누그러뜨린 이씨와 함께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까지 3분 남짓한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씨는 “우리 말고도 현재 PC방에 3명(노숙인)이 더 있다. 아침엔 더 많았는데 비가 그치자 여러 명이 나갔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려면 ID가 있어야 해서 우리 같은 사람은 게임을 못하고 주로 공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일이 없으면 그냥 죽치고 자거나 쉬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시간당 이용료가 600원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겐 주인이 돈을 안 받고 눈감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가? 원래 2~3층이 PC방이었는데 2층으로 줄었다. 며칠 전엔 사장이 ‘장사가 안된다’고 9월에 가게 계약이 끝나면 문을 닫겠다고 하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중앙지구대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건너편 문 닫힌 가게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여 년 전 고향(충북)에서 일자리를 잃고 가정불화로 아내와 헤어진 뒤 서울로 온 이씨는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전전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가 집을 나온 뒤 이혼한 전처는 자녀를 데리고 경기도로 이사해 살고 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보고 싶어 용기를 내서 집을 찾아간 이씨는 “스무 살이 넘은 다 큰 자식들이 하는 일 없이 제 엄마한테 빌붙어 사는 걸 보고 한심해서 호통을 치고 나왔다”고 했다. “며칠 전 실종신고 얘기는 뭔가?”라는 질문에 “3년 동안 고향에 못 가서 팔순 넘은 부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데 지금 이 꼴로는 면목이 없어서 내 발로 고향에 못 간다”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놀거리, 볼거리 풍부해 운집

영등포역 일대가 쪽방촌과 노숙인 생활공간으로 주목받는다. 지난해까지 중부대에서 겸임교수로 형사정책과 범죄학을 강의했던 김태석 담당관에 따르면, 경부선 열차역과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교통근접성, 전통시장(영등포시장)을 중심으로 한 낙후한 환경이 원인이다. 그뿐 아니라 주택가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여인숙과 고시원을 비롯해 음식점과 술집, PC방과 노래방, 화상경마장(용산 마권장외발매소)까지 먹을거리와 놀거리, 볼거리가 풍부해 돈 없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운집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췄다.

김 담당관은 “노숙인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섞이더라도 부끄러움을 덜 느끼는 환경이어야 한다. 게다가 여긴 쉼터가 많아 언제든 그곳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 비교적 깨끗하게 생활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쉼터가 연계해 노숙인 관리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잘 이뤄져 일자리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업 실패나 실직,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가장들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 이곳에 둥지를 튼 가출 가장이 현재 7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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