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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王氣 서린 권력의 섬 선유도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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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의 지도자를 기다린다는 전설을 지닌 선유도 망주봉은 권력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길지(吉地)다. 이곳에서 조선 고지도에 명기된 고려왕릉을 ‘풍수고고학’으로 찾아보았다.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망주봉 정면과 고려시대 추정 건물 터(아래).

전북 군산시의 야미도리 선착장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5월의 바닷바람을 가르며 목적지인 고군산군도의 선유도(仙遊島)로 달려간다.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45km 지점, 63개의 섬(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이 군락을 이룬 고군산군도의 중심지가 선유도다. 고려시대 왕이 임시로 머물던 행궁(行宮)과 관아, 수군(水軍) 진영이 있었던 곳이자 중국과의 해상교통로에서 핵심 중계지 구실을 했던 섬이다. 조선시대에 이곳의 수군 진영이 현재의 군산으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내어주고, 원래의 군산도는 접두어 옛 고(古) 자가 붙어 고군산이 됐다고 한다.

유람선은 선착장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곧장 엔진 소리를 드높이며 속력을 낸다. 저 멀리 왼쪽으로 새만금방조제가 고군산군도의 신시도와 선처럼 연결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 변산을 연결하는 길이 33.9km의 세계 최장 방조제다. 머잖아 새만금방조제의 육지 쪽 바다(401㎢)는 모두 뭍으로 변하게 된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 크기에 달하는 육지가 새로 생겨나는 것이다.

유람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평균 수심 34m의 바다가 육지로 된다는 사실을 옛사람들은 이미 알고나 있었던 걸까. “수저(水低) 30장(丈)이요, 지고(地高) 30장(丈)이라”는 예언이 전라도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왔다. 군산과 변산의 앞바다가 30장(약 90m) 깊이로 물이 빠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솟구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1754~1825)의 예언이다. 전라북도 사람들은 새만금방조제가 놓인 변산 앞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됨으로써 이서구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놀라워들 한다. 이서구는 유가(儒家) 계열의 도학자(道學者)로 천문과 지리에 능통했다고 역사적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니 그의 예언을 마냥 허황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서구만이 아니다. 변산의 앞바다는 예부터 ‘칠산 바다’로 불렸고, 칠산의 섬은 뭍으로 변하게 되고 여기서 범씨(范氏)의 천년왕국이 세워진다는 예언 역시 도참서인 ‘정감록’ 등을 통해 조선 백성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근래에도 주역에 해박했던 탄허 스님(1913~1983)이 서해안이 융기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천년왕국’ 전설 지닌 섬

필자는 지금 이 모든 예언의 중심지에 선 선유도를 찾아간다. 과연 이 조그만 섬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만한 강력한 권력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 조선 숙종 8년(1682)에 제작된 지도 ‘동여비고(東輿備攷)’에서 ‘군산도 왕릉’이라고 표기된 고려 왕릉을 ‘풍수고고학’으로 찾아보자는 속셈도 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왕릉이나 궁궐을 조성할 때 반드시 풍수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망실된 분묘라고 해도 그 시대에 통용된 풍수 논리 관점에서 찾아보면 그 입지를 밝혀낼 수 있다. 필자는 이번 탐사에서 지한 풍수고고학연구소장과 함께 왕릉을 발굴해보기로 했다.

유람선은 1시간 남짓 걸려 선유도 선유3구 선착장에 우리 일행을 내려놨다. 2개의 암벽 봉우리가 불끈 솟은 망주봉(152m) 코밑이다. 누군가 선유도를 중심으로 한 고군산군도 일대를 연화부수(蓮花浮水), 즉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형상으로 묘사했던가. 실제 선유도 망주봉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신시도 등 주위 여러 섬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에워싼 모습이다. 산의 모양새와 지세(地勢) 중심으로 살피는 형세파 풍수의 시각에서 보자면 마치 연꽃처럼 펼쳐진 형국이며, 망주봉은 연꽃의 꽃술쯤에 해당할 것이다. 망주봉 일대가 지기(地氣)의 핵심처이자 명당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지도자 기다리는 망주봉

선유도의 뛰어난 지세는 외국인 눈에도 신선하게 비쳤던 듯하다. 고려 인종 때인 1123년, 송의 사신으로 고려를 찾은 서긍은 ‘고려도경’이라는 저서에서 선유도를 상세히 묘사했다.

“아침 밀물을 타고 운항하여 진각(辰刻·오전 7~9시)에 군산도에 이르러 정박하였다. …접반(사신을 맞이하는 고려 측 인사, 당시 김부식 일행이 왕의 명령을 받아 송의 사신단을 맞이했음-필자 주)이 채색 배를 보내 정사와 부사에게 군산정(群山亭)으로 올라와 만나주기를 청했다. 그 정자는 바닷가에 있고 뒤에는 두 봉우리가 받쳐주고 있는데, 그 두 봉우리는 우뚝 서 있고 높은 절벽을 이루어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문 밖에는 관가 소유의 건물 10여 채가 있고, 서쪽의 가까운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五龍廟)와 자복사(資福寺)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崧山行宮)이 있고 좌우 전후에는 민가 10여 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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