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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들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충남 아산 ‘지중해마을’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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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농촌이 유럽풍 마을로 탈바꿈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인기 마을로 변했다. 각종 개발로 원주민이 흩어져 공동체가 해체되는 기존 형태를 답습하지 않고 주민이 똘똘 뭉쳐 ‘공동이주’와 ‘공동건축’ ‘공동운영’이라는 새로운 재정착 모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 지중해마을의 이주개발 성공 스토리.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태풍 ‘너구리’ 북상 소식에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서울 공기를 뚫고 차로 1시간 40여 분 달렸을까. 나지막한 산과 들판 사이로 우뚝 솟은 선문대학교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울 강남에서나 볼 법한 아찔한 고층 아파트 여러 동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곳을 지나쳐 조금 더 가자 시골이라고 믿기 어려운 유럽풍의 아름다운 집이 수십 채 나란히 줄지어 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이색 마을로 뜬 일명 ‘지중해마을’이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에 삼성디스플레이시티가 형성되면서 산업단지 내에 자리 잡은 지중해마을은 프로방스풍의 아기자기한 집과 파르테논 신전을 축소한 듯한 집, 하얀 벽면에 파랑과 주황색 돔을 얹은 지붕이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을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국적 느낌을 자아낸다.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자 푸른 유리벽돌을 층층이 쌓아올린 아치가 맨 처음 외지 손님을 맞는다. 아치 중앙엔 ‘블루 크리스탈 빌리지(BLUE CRYSTAL VILLAGE)’라는 마을 명칭이 새겨져 있다. 첨단산업 단지에 위치한 마을답게 붙인 ‘미래도시형’ 명칭이지만,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의 입소문을 타고 ‘지중해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마을 주민이 주주로 참여해 2011년 설립한 탕정산업의 김환일 총무이사는 “주민들이 ‘블루크리스탈이라는 이름이 어렵다’고 해서 아예 ‘지중해마을’로 명칭을 바꿀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블루크리스탈 빌리지’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유럽의 화려한 밤을 연상케 하는 지중해마을 밤거리.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2만여 ㎡에 6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서 거리를 걷는 동안 사람들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데다 평일이다보니 마치 텅 빈 무대 세트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골마을과는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건축물들이 한몫 거든 탓이리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포도 산지로 유명했던 평범한 농촌이 유럽풍의 지중해마을로 탈바꿈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인기 마을이 된 배경에는 마을공동체가 있었다. 도심 재개발 등 각종 개발로 원주민이 흩어져 공동체가 해체되는 기존 형태를 답습하지 않고 주민이 똘똘 뭉쳐 ‘공동이주’와 ‘공동건축’ ‘공동운영’이라는 새로운 재정착 모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마을공동체를 구상하게 된 건 장차 주민이 겪게 될 위기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다.

마을이 개발로 술렁이자 주민은 불안감을 느꼈다. 평생을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던 70~80대 노인들은 “이대로 고향 친구들 곁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2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한 50대 초반 변모 씨는 고향으로 내려와 농지 6만600㎡(2만 평)를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수천만 원의 명퇴금은 농기구를 마련하는 데 썼기 때문에 개발이 시작되면 가족을 데리고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자신의 땅 한 평 없는 탓에 넉넉한 보상비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그는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개발이 시작되면서 가옥 보상비로 3700만 원을 받은 40대 후반 배모 씨는 마을 주택을 공동으로 건축한다는 결정이 나자 지인들에게 “토지계약금만 도와주면 마을 주민과 같이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때까지 그의 수중에 남은 보상비는 고작 100만 원. 주민들로부터 토지계약금을 빌리면서 배씨는 그토록 원하던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공동체마을을 구상하지 않았다면 마을 어르신들의 소망도, 변씨나 배씨같이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던 동네 친구들과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김 이사는 누구보다 지중해마을에 대한 애착이 크다. 대기업 전무로 명예퇴직한 그는 천안에서 학원사업을 하다 실패해 낙향했다. 도시를 전전하다 삶이 무너져내린 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곳에 온 뒤 어릴 적의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천렵과 꿩 사냥을 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추억과 마음의 위안을 뒤로하고 다시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개발 초창기 대다수 마을사람이 ‘반대’ 편에 섰을 때 내심 ‘찬성’ 편이었던 그가 주민과 끝까지 함께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다.

‘재정착’의 첫 단추를 꿰다

이주 대상 지역 주민들의 성공적인 고향 재정착과 행복한 공동체 탄생 배경엔 주민과 주민, 주민과 기업 간 양보와 배려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중재 노력도 한몫했다. 하지만 개발을 둘러싼 복잡한 과정이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이들도 개발 초창기엔 여느 개발지역과 유사한 갈등과 팽팽한 대치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4년 4월 중순, 삼성전자는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명암리, 용두리 일대 325만3800여 ㎡(98만6000여 평)를 ‘탕정 제2 지방산업단지’로 지정해줄 것을 아산시를 통해 충남도청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해당 마을 주민 70여 명이 도청으로 몰려가 ‘반대’ 시위를 벌였다. 현행법상 민간이 산업단지를 개발할 경우 택지나 아파트를 분양할 수 없지만 삼성 측이 단지 내 주거지역에 아파트를 지어 일부를 일반인에게 분양하겠다고 나서자 “막대한 개발이익이 원주민이 아닌 기업에 돌아가는 땅 투기”라며 들고일어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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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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