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女 일이냐, 가정이냐 男 생존이냐, 도태냐

20대 여성 vs 20대 남성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4-10-21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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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펙 좋고 똑똑하고 어리기까지…
    • “입사시험 성적대로라면 여자만 뽑을 판”
    • 경제활동참가율도 남성 추월
    • 헌신, 책임감, 인맥 부족…길게 보면 남성이 낫다?
    女 일이냐, 가정이냐 男 생존이냐, 도태냐

    5월 15일 ‘삼성협력사 채용 한마당’을 찾은 20대 남·녀들.

    이제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은 ‘서로 사랑하기에 좋은 사이’만은 아니다. 양자는 ‘생존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과거 젊은 남성은 또래의 여성을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대 남성에게 또래의 여성은 경쟁 상대, 그것도 막강한 경쟁 상대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여풍(女風)은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맹위를 떨친다. 직장보다는 학교에서, 관리자 직급보다는 신입사원 세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9월 통계청이 제시한 2분기 경제활동참가율에서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을 2.6%포인트 앞섰다. 2011년 2분기에도 20대 여성 취업자는 193만9000여 명, 20대 남성 취업자는 174만2000여 명으로, 여성이 19만7000여 명 더 많았다. 당시 20대 여성 고용률은 20대 남성 고용률에 비해 0.7% 높았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 사회 20대의 현실을 매우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만 해도 20대 여성 취업자는 20대 남성 취업자의 절반에 그쳤다.

    취업 시장에서 20대 여성이 20대 남성보다 근소하게나마 우위에 서는 가장 큰 이유로는 ‘공부를 더 잘한다’는 점이 꼽힌다. ‘앉아서 하는 시험공부는 여성이 낫다’라는 말이 어느덧 정설로 굳어졌다.

    대학진학률에서 여성은 남성을 앞질렀다. 2010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80.5%, 남성의 대학진학률은 77.6%였다. 중·고교 관계자들은 평균적으로 남녀 간 학력 격차가 존재한다고 본다. 한 입시 관계자는 “게임중독자도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다.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딴청 피우는 학생도 남학생이 더 많다”고 했다.

    시험 성적에서 나타나는 여학생 우위는 사교육 투입 비율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된다. ‘2013년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3000원으로 남학생 평균인 23만5000원을 앞섰다. 사교육 참여율에서도 69.3% 대 68.4%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았다.



    대학 학업에서도 여성은 두각을 나타낸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교수는 “대학을 문과계열과 이과계열로 양분할 때 문과계열에선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대체로 성적이 우수하다. ‘학점으로는 같은 학과 여학생을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남학생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러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당연히 취업시장에서도 20대 여성의 경쟁력은 쑥쑥 올라간다. 정년이 보장돼 최고 인기 직업으로 꼽히는 공무원. 7, 9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선 여성이 더 많이 합격한다.

    경기도의 경우 최근 3년 공무원 공채 결과 여성의 합격률이 60%에 달했다. 소방직종을 제외한 경기도 공무원 중 여성은 29%인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7급 이하 공무원 중 여성은 42%다. 경기도 관계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무원 수에서 남녀 간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도 다르지 않다. 2010년 서울시 7, 9급 공채 합격자의 60.7%는 여성이었다. 2010년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에서도 여성은 각각 42%, 60%, 44.7%라는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실력 달리는데 군대까지…”

    토플·토익점수로 환산되는 영어실력에서도 20대 여성이 20대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고려대 재학생 이모(20·여) 씨는 “대체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영어강의에 참여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내 학원가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이후 여학생들의 토익 평균점수가 매년 남학생들에 비해 7~9점 높게 나타난다.

    서울시내 대학 관계자들은 인턴 경력, 사회활동 경력, 해외연수·교환학생 경험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YBM 어학원이 2006년 자사를 통해 어학연수를 한 학생들의 성비를 조사한 결과, 여학생이 54.7%에 달했다. 어학연수 기간에서도 남학생은 6개월 이하 단기연수를 선호한 반면 여학생은 주로 1년 이상의 장기연수를 택했다.

    20대 여성은 해외여행 횟수에서도 동년배 남성을 압도한다. 2013년 한 여행사가 해외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을 성별, 연령대별로 조사한 결과 20대 여성이 23.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30대 여성(22.6%), 30대 남성(19.4%) 순이었다. 20대 남성은 군복무의 영향인지 몰라도 11.2%에 그쳤다. 국제화 정도에서도 여성이 완승을 거둔 셈이다.

    이렇게 학교, 학점, 어학점수, 인턴, 해외 경험 등 이른바 5대 스펙(specification의 준말·취업 시 요구되는 평가요소)이 짱짱한 20대 여성이 즐비한 편이다. 거기에다 이들은 대개 경쟁하는 남성에 비해 나이마저 어리다. 여성은 어학연수에 1년을 쓰더라도 23~24세부터 취업문을 두드릴 수 있다. 반면 상당수 20대 남성은 실력도 달리는 데다 24개월 군복무 부담까지 져야 해 나이에서도 손해를 본다.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같은 조건이라면 나이가 어린 응시자가 아무래도 유리한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일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채용시험 이력서에서 나이 항목을 없애도록 법으로 정했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인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이런 법이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응시자에게 나이를 밝히라고 요구한다.

    향상된 경쟁력 외에, 20대 여성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이들은 ‘닥치고 취업’이라며 일자리 구하기에 올인한다. 한 세대 이전의 20대 여성은 ‘안 되면 시집이나 가지’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지금의 20대 여성 중 상당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독신가구, 맞벌이가구가 급증하면서 경제력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생존의 필수조건이기 때문.

    “상당히 어필”

    기업이 채용 시 외모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퍼졌다. 이로 인해 20대 여성 사이에선 ‘취업 성형’이 유행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1000만 원이 넘는 수술비용이나 얼굴에 칼을 대는 공포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즉 20대 여성은 20대 남성만큼이나 절박하게 구직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실력에다 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갖추면서 20대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여러 대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문과계열 응시자들의 경우 입사시험 성적순대로면 여성만 뽑아야 할 판”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취업 현장에선 비공식적으로 남성할당제라는 걸 만들어놓고 합격자의 성비를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여성 인재가 과거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확실한 스펙 관리와 더불어 높은 피드백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입사시험에서 어떤 미션을 받으면 ‘딱 부러진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다. 한 대기업 채용 담당 임원은 “스펙이 좋은 20대 여성 응시자는 대개 패션 감각도 있고 성격도 원만해 보인다. 거기에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한마디로 상당히 어필한다”고 말한다.

    여풍은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지역 한 종합일간지 간부는 자신의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기자직 1차 서류전형과 2차 논술·작문시험 채점에 참여해봤다. 여성 응시자가 남성 응시자에 비해 글을 더 잘 쓰더라. 문장도 좋고 시각도 균형 잡혔고…. 최근 몇 년간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점수대로 곧이곧대로 뽑지 못한다. ‘글발’이 다소 달려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남성을 더 뽑게 된다. 신문사로선 사회부 기자의 태반이 여기자이면 큰 사건이 날 때 과연 취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한 번도 그렇게 운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의 약진은 선진국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공교육이 일찍 시작된 서구에서는 한 세기 전부터 여학생이 더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다만 당시엔 똑똑한 여학생이 출산을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 학교를 떠났기 때문에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의 서구 여성은 출산을 미루면서까지 직장에 밀고 들어감으로써 여풍을 허리케인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일은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결혼·출산율 저하는 20대 여성을 20대 남성과 대등하게 만들어주는 문화적 배경이 된다.

    여학생이 학업성적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남녀는 평균 지능지수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능지수의 분포에선 다소 차이가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규분포곡선의 가운데에 더 몰려 있는 편이다.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안정적이고 건강한 성이다. 반면 XY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불안하고 취약한 성이다. 이 때문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난독증처럼 학업에 치명적인 약점이 남학생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중도탈락한다.

    여학생이 표준 학생像?

    20대 여성의 약진 이유는 우리 사회의 획일적 교육 및 평가 시스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근대적 공교육은 프러시아에서 압축적 산업화를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산업화 시기엔 기계의 부품처럼 정확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인재가 필요했다. 주입식 교육은 이런 의도에 부합했다.

    삼성의 초창기 역사는 이런 방식의 유효함을 잘 보여준다.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에서 머리를 단정히 빗거나 구두를 깨끗이 손질했는지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과거 삼성맨의 이미지는 은행원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런 인재들이 산업화 초기 단계에 크게 활약했다. 이것은 이건희 회장이 추구하는 현재의 인재상과는 다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그의 지론은 인재관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구인 방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 채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女 일이냐, 가정이냐 男 생존이냐, 도태냐

    피카소의 그림, ‘꽃다발을 든 남과 여’

    우리나라의 대학, 관공서, 기업은 뭐든지 점수로 환산해 줄 세우는 계량화한 평가 시스템으로 사람을 뽑고 역량을 평가한다. 여학생들이 획일적 교육에 잘 적응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처럼 숫자로 환산 가능한 평가 체계에선 남학생에 비해 확실히 좋은 결과를 얻는 것으로 비치기는 한다.

    남녀 공학의 증가도 이유로 꼽힌다. 남성과 여성은 육체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다른 성장곡선을 보인다. 남성은 느리지만 장기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남학생을 성장속도가 빠른 여학생과 같이 경쟁을 시키다보니 초기에 나타나는 격차를 여성의 우세로 혼동한다는 것이다.

    여교사의 증가로 말미암아 여학생을 ‘표준적인 학생상’으로 간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 주어진 과제물을 착실히 제출하는 여학생이 이상적인 학생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다소 괴짜이지만 창의적인 사내아이’가 ‘문제아’로 취급받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훌륭한 인재를 찾기에 혈안이 된 기업은 성별에 상관없이 실력으로만 뽑아 쓰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여러 기업이 사실상 남성 할당제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스펙과 장기적 업무수행 능력 사이에서 오는 괴리 때문일 것이다.

    외교부의 현실은 이런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여성 외교관이 급증하면서 외교부는 요즘 골머리를 앓는다. 여성 외교관들이 험지와 장기 해외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외교부는 2년간 선호지역에서 근무한 후 다시 2년을 험지로 발령하는 이른바 냉탕온탕 원칙을 고수했다. 그런데 여성 외교관들이 선진국 근무만 원하고 험지 발령이 나면 사직하는 경우가 많아 인사 원칙이 깨질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우대 방식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직의 단물만 빨아먹는다?

    공군사관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지난 2월 공사는 임관식을 앞두고 대통령상 수상자를 번복하는 곤욕을 치렀다. 졸업 성적이 수석인 여생도 대신 차석인 남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 논란 끝에 대통령상을 받은 수석 생도는 조종사가 아닌 정책분야를 지원한 여성 생도였다. 공사는 4년 전에도 졸업 성적이 1등인 여성 생도가 공수훈련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판에 대통령상 수상자를 바꿨다. 외교관이 해외근무를 마다하고 공군사관생도가 전투기 조종을 마다하는 현상은 조직의 관리자로서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조직의 단물만 빨아먹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대학교가 여성신입생 선발 비율을 12%로 제한하는 것을 성차별로 간주하고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만일 같은 원칙을 사관학교에 적용하면 한국 군대는 ‘싸움할 줄 모르는 책상물림 집단’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남성할당제는 조직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비치기도 한다.

    특히 사기업에 취업해 근무하는 여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근무하는 남성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남성에 비해 조직에 덜 헌신한다’ ‘책임감이 떨어진다’ ‘회사에 기여할 끈끈한 외부 인맥이 없다’와 같은 비판을 듣기도 한다. 일부 대기업 사람들은 이런 이유들을 들어 ‘중장기적으로 보면 20대 남성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여성 간부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삼성그룹이 대졸여성 공채를 실시한 1993년을 여성의 사회진출 원년으로 삼는다. 이 무렵 1기생들은 현재 관리자 직급에 도달했다. 그런데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할 때와는 달리 자신이 일을 시키는 처지가 되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단점이 드러난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기본적인 리더십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도 1990년대 이런 일을 겪었다. 여성이 조직 내에서 권력을 쥐자 여학생 세계처럼 은밀한 따돌림이나 언어 폭력 문제가 나타났다. 리더로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함에도 자주 감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런 여성 리더를 가장 힘들어한 사람은 여성 부하 직원이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먹튀’ 논란을 일으킨 이소연 씨는 우리 사회가 젊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여성상과 여성의 본성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성이어서 더 많은 혜택을 입었다. 그가 예비우주인 두 명 중 한 명으로 뽑혔을 때부터 여성 쿼터제의 수혜자라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다 경쟁 후보의 뜻하지 않은 낙마로 한국 최초 우주인의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살려 한국우주과학의 대표 학자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결혼과 함께 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고, MBA유학을 택했다. 물론 2년간의 의무근무기간을 마쳤고 어떤 법적 하자도 없었다. 하지만 260억 원이 투자된 프로젝트는 그의 퇴장과 함께 아무 소득 없이 막을 내려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했다.

    女 일이냐, 가정이냐 男 생존이냐, 도태냐

    20대 남녀 학생들이 토익강좌를 수강하기 위해 서있다.

    실제로 여성 인재를 키우려는 조직은 종종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여성 내면에서 일과 가정이 심각하게 충돌한다. 래리 서머즈 미국 하버드대 총장은 공학 분야에 여성이 드문 이유로 ‘주당 80시간의 일을 수행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 환경’을 들었다.

    캐나다의 발달심리학자 수전 핀커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문화권을 초월해 여성은 남성보다 사람을 돌보는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 변호사는 자발적으로 승진과 높은 보수를 마다한 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했다.

    본성과 숙명의 핸디캡

    20대 여성은 취업 후 결혼하면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일과 육아를 모두 환상적으로 해내야 하는 ‘슈퍼 맘’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을 모두 잘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해내더라도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상당수는 본성상 일과 가정 중 가정에 더 기울게 마련이다.

    조직은 여성 직원의 이런 점을 내심 못마땅해한다. 결국 여성은 더 오를 수 없는 직장 내 유리천장을 목도하게 된다. 육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이는 많은 커리어우먼이 경험하게 될 숙명이다. 20대 여성은 이러한 사회문화적 핸디캡을 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리천장을 깼지 않느냐고 말한다. 미국에서도 아직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박 대통령은 대처나 메르켈 같은 서구의 여성 지도자보단 인도의 인디라 간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같은 아시아 여성 정치인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 정치인의 공통분모는 ‘승계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을 업고 정상에 올랐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스스로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우리는 20대 남성, 그중에서 또래 여성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남성의 처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자세히 보면, 20대 여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과 서울대에 강남 아이가 다수를 차지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 두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스펙 좋은 강남의 부잣집 딸들이 군대 갔다 온 비(非) 강남 서민의 아들들에게 승리하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생존하느냐, 마느냐

    20대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하면 그 수만큼 20대 남성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좋은 일자리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는 필연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그리고 이 게임의 패자(敗者)는 하위 계층의 20대 남성이 될 것이다. 이전 세대 20대 남성은 집안이 좀 어려워도 스펙이 좀 안 좋아도 노력하면 그럭저럭 무난히 취업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죽도록 일하고 싶어도 취업 자체가 원천 봉쇄된다. 지금의 20대 남성은 ‘생존하느냐 마느냐’의 실존적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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