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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평가에 죽고 산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싫다!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평가에 죽고 산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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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에게 평가는 ‘누가누가 잘했나, 참 잘했어요’가 아니라 ‘누가누가 못했나, 참 안됐어요’를 구분하는 절차로 비친다.
  • 그러니 평가를 통해 얻는 것은 없고, 뭔가를 잃는 사람만 생긴다. 이런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가에 죽고 산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싫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름 앞둔 10월 28일 서울 이화여고 3학년 학생들이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다.

또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즌이 돌아왔다. 아니, 이 글이 ‘신동아’에 실려 읽히고 있을 때는 수능이라는 전국적 빅 이벤트를 또 한 번 치른 직후가 될 것이다. 매년 이때쯤 온 나라를 뒤집어놓는 한판 승부가 전국에서 펼쳐진다. 매년 약 60만 수험생과 그들의 120만 부모는 그 승부에 직접 뛰어드는 선수들이다. 수험생의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자매는 링 밖에서 응원을 하거나,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가 된 후보 선수다.

어찌 보면 매년 전국에 사는 최소 약 200만 명에서 최대 약 400만 명의 국민이 이날 하루의 승부를 위해 길게는 12년 동안 칼을 갈아왔다. 수험생의 가족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공교육과 사교육 시장, 학원가 식당들, 심지어 학원버스 기사들까지, 이 승부에 동원된 인원의 규모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수능 영어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아마 전 세계의 많은 항공사가 이해하기도 힘든 이런 일이 매년 가능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 의미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합당한지와 바람직한지를 떠나서, 그냥 단순히 객관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국민이 일생에서 몇 번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매년 국가가 운영하는 한판의 거대한 도박판과 유사해 보인다. 사람마다 목표로 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이왕이면 ‘SKY’와 같은 명문대 합격 대박을 꿈꾼다. 도박에서는 절대 돈을 딸 수 없는데도 마치 자신은 딸 수 있다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에 빠져 베팅액을 키우는 도박중독자의 모습과, 누가 봐도 공부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자녀가 명문대에 갈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고 학원비를 내는 학부모의 모습에 큰 차이가 있을까.

거대한 도박판

수험생의 시험 당일 컨디션, 문제의 난이도와 유형, 시험장의 환경 등 수험생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가 ‘운’또는 ‘팔자’라는 이름으로 개입된다. 최소 12년 동안 들인 교육비용에 대한 보상률(반환율)은 얼마나 될까. 명백한 도박이라는 카지노 룰렛 게임은 확률상으로 한 게임에서 베팅한 돈의 반환률이 경기 방식에 따라 38분의 18에서 38분의 1 사이에 있다. 경마에서도 전체 베팅액의 약 70%가 넘는 돈을 돌려준다.

요즘은 이미 수험생 수와 대학 정원에 차이가 거의 없어서 등록금만 내면 누구든지 대학은 갈 수 있게 됐으니, 아마 ‘꽝’이 없는 게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수험생이나 부모도 ‘꽝’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저 당첨됐다고 만족할 수 없다. 교육에 들어간 비용 대비 최소한 경마나 룰렛의 반환율 정도로 그 투자금을 반환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 수능의 본질을 고민해보면, 수능이 도박에 가깝다는 말이 안 되는 주장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도박판은 짧은 시간에 무수한 반복을 통해 서서히 거덜 나지만, 수능은 이미 긴 시간 동안의 교육비 베팅을 통해 거의 거덜 난 상태에서 마지막 한판을 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지도 모른다.

수능뿐 아니라 공무원채용시험, ‘삼성고시’라 부르는 SSAT, 각종 국가고시를 볼 때도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큰 판이 벌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여러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경쟁률이 더 높아졌다지만, 과거시험을 치르던 조선시대부터 각종 시험이라면 유별나게 난리가 나는 것이 한민족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원래 이렇게 평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일까.

평가를 싫어하는 한국인  

교수로서의 경험을 피상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평가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교수가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HK, BK 등과 같은 대규모 국책연구사업에 선정되거나, 정부 부처의 용역과제를 수탁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수행하다보면 교수들은 다 ‘돌아버린다’.

교수들끼리 흔히 하는 농담 중 하나로, 그런 국가연구사업에서 교수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연구가 아니라 평가용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다년 과제는 매년 보고서를 제출한다. 단기 과제도 착수 보고에, 중간 보고에, 최종 보고까지 하고, 보고서가 다 끝나도 그 연구 결과에 대한 외부 평가까지 진행한다. 아주 시작부터 끝까지, 끝나고 나서도 평가의 연속이다. 마치 평가를 받기 위해 연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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