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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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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류성룡, 비 걱정

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척사점(擲柶占·윷점)이 들어 있는 ‘경도잡지’ 표지(유득공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와 척자점 (필자 소장,‘소강척자점’).

이순신이 직접 친 척자점은 아내나 아들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전투에 대한 예측과 적의 동향 예측, 영의정 류성룡에 대한 걱정이 주요 주제였다. 전쟁을 비롯한 갖은 시름 속에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선한 사람, 하늘을 감동시키고자 노력한 이순신이기 때문인지 그가 친 점의 결과는 언제나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그가 친 척자점을 ‘이충무공전서’ 편찬에도 참여했던 유득공( 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 나오는 척사점, 즉 윷을 이용한 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윷놀이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고, 게다가 그 시기에 윷으로 ‘주역’을 활용한 작괘점을 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윷점이 아니다.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기록해놓은 종정도(從政圖) 놀이가 5회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종정도 놀이 도구인 윤목(輪木)을 활용한 점으로 보인다. 즉 척자점은 윤목을 던져(擲) 얻어낸 숫자를 척자점을 해설하는 텍스트, 예를 들면 ‘토정비결’과 같은 책에서 찾아 읽는 방식이다.

전장에 있는 군인이며 리더였던 이순신도 한 가족의 가장이다. 스스로가 선택한 업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이순신도 그 업으로 인해 가장의 역할을 다할 수 없는 고뇌로 시름에 잠겼다. 특히 자신이 돌볼 수 없는 상태, 함께 곁에 머물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내와 자식들의 질병 소식을 듣고, 점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594년 7월 13일.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떤지 척자점(擲字占)을 쳤다. 결과는 “임금을 만난 것과 같다(如見君王)”는 괘였다. 아주 좋았다. 다시 쳐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如夜得燈)”였다. 두 괘가 다 좋았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또 류 정승(영의정 류성룡)에 대해 점을 쳤다. 결과는 “바다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다(如海得船)”는 괘였다. 다시 점쳐보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如疑得喜)”는 괘였다. 아주 좋았다. 아주 좋았다. 저녁 내내 비가 내렸다.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 비가 올지 갤지 점쳤다. 결과는 “뱀이 독을 뿜어내는 것과 같다(如蛇吐毒)”는 괘가 나왔다. 앞으로 큰 비가 내릴 것이다. 농사가 아주 걱정된다. 밤에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이 일기는 세 가지 이유로 점을 친 기록이다. 셋째 아들 면의 위독, 영의정 류성룡 걱정, 벼가 익는 시기에 연일 퍼붓는 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아들 면의 병 소식을 들은 뒤 이순신은 “애타고 답답하다”(6월 15일), “매우 걱정스럽다”(6월 17일), “병세가 다시 심해지고 또 피를 토하는 증세까지 있다”(7월 10일), “병이 어떠한지 궁금했다”(7월 11일)고 적었다. 점치기 전날인 7월 12일의 기록은 이러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신 것은 자세히 알았는데, 면(?)의 병이 중하다고 했다. 아주 애가 타지만 어찌하랴. 영의정 류성룡이 죽었다는 부고가 순변사가 있는 곳에 왔다고 한다. 이는 미워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 비방하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날 어두울 무렵(昏)에는 마음이 아주 어지러웠다. 홀로 빈 동헌에 앉아있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온갖 걱정으로 밤이 깊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류 정승이 만약 일찍 죽었다면 나랏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들 면과 ‘후원자’ 류성룡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와 같은 걱정 속에서 이순신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점괘는 모두 긍정적이었다. 일기와 역사적 사실로 확인해보면, 실제로 아들 면은 그 후 병에서 회복했고, 류성룡도 소문과 달리 큰 문제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날씨는 그가 다음 날인 14일 일기에 “비가 계속 내렸다. 어제 저녁부터 빗발이 삼대같이 내려 지붕이 새어 마른 곳이 없다. 간신히 밤을 보냈다. 점괘를 얻은 그대로였다. 아주 지극히 절묘했다”고 쓴 것처럼 정확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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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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