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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골라야 할지…아, 정말 미치겠어요”

요즘 20대 괴롭히는 마음의 병 선택장애

  • 심정현 |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차정은 | 고려대 국어교육과 2학년

“뭘 골라야 할지…아, 정말 미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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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쇼핑, 점심 메뉴, 배우자감, 진로…모르겠어!
  • ● ‘정보의 홍수’ 빠져 스스로 결정 못해
  • ● 실패 감싸줄 여유 없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 ● ‘안 좋은 습관’에서 정신질환으로 악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재학생 황모(여·23) 씨는 서울 안암동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립스틱 색깔이었다.

이윽고 황씨는 분홍색 립스틱을 골라 입술에 발랐다. 여느 고객들은 대개 손등에 바른다. 황씨가 입술에 바른 것은 색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다. 이어 한참동안 뚫어져라 거울을 봤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 색이 전체 얼굴과 조화로운지, 자주 하는 화장 스타일과 어울리는지 ‘검토’를 거듭했다.

황씨는 원래 분홍색 립스틱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진열대의 베이지색 립스틱과 오렌지색 립스틱도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립스틱을 집어 들었다. 새로 바를 립스틱의 색이 전에 발라놓은 색과 섞일까봐 솜으로 입술을 벅벅 문질렀다.

마찰열로 입술 부어올라

베이지색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한참 살펴본 뒤 립스틱을 지웠다. 그러고는 오렌지색을 바르고 고민하다 지웠다. 결국 황씨는 이런 식으로 4개의 립스틱 색을 테스트했다. 마찰열로 입술이 부어오르고 따끔거릴 정도였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점원이 “립스틱 두 개를 사시면 사은품을 드려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결정타였다. 황씨는 ‘멘붕’에 빠졌다. 4개 중에 하나를 살지 두 개를 살지, 어느 것을 살지 고민에 고민을 계속했다. 지친 점원은 다른 고객에게로 갔다. 황씨는 꽤 오랫동안 혼자 서서 계속 고민했고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황씨는 “가끔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미칠 지경이 된다. 내 선택장애가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김은규(20) 씨는 점심시간에 방황하는 일이 잦다. 김씨는 수업시간이 친구들과 달라 혼자 밥을 먹기도 하는데, 식당이 몰려 있는 학교 주변 골목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메뉴를 고민한다. 그는 “수백 미터를 걸은 뒤에도 결정을 못하는 날이 태반이다. 고르는 데 보통 30분 이상 보낸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닐수록 선택지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고 한다. 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막상 괜찮은 메뉴를 찾고 나면 더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또 망설인다. 김씨는 비단 점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 사소한 선택의 순간마다 바로 결정하지 못한다. ‘선택을 하고난 뒤 더 나은 것을 발견할 때의 후회’를 걱정해서 어느 것 하나도 고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래도 선택장애에 시달리는 것 같다”고 했다.

“뭘 골라야 할지…아, 정말 미치겠어요”

한 대학생이 물건을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나 ‘선장’인가봐…”

요즘 20대 사이에선 ‘선택장애’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 ‘선장(선택장애의 줄임말)’인가봐”, “너 선장이지?”라는 말을 곧잘 한다. 선택장애는 국어사전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리’로 정의돼 있다. 일각에선 ‘결정장애’라고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어느 정도 고민한다. 그러나 20대 중 상당수는 그 고민이 통상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 문제다. 이들은 사소한 선택에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고,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선택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면서 선택장애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애스킹(Asking)’은 선택장애와 관련해 이용자들끼리 1대 1로 대화를 주고받게 한다. ‘폴릭(Pollic)’은 여러 선택지를 등록해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 투표 결과를 참고해 선택하라는 의미다. 이 앱에다 “나는 선택장애인가”라는 질문을 냈더니 두 시간 동안 투표에 참여한 32명 중 25명이 “선택장애”라고 답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선택장애라고 여기거나 사소한 선택의 문제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 20대 여러 명을 취재했다. 그 결과 20대는 주로 △정체성 결여 △책임감 부족 △정보의 홍수로 인해 선택장애에 빠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체성 결여나 책임감 부족과 관련해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뚜렷하게 자각하지 못하면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상당수 젊은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결정하려 하지 않고 다른 친구가 알아서 결정해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선택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20대는 다른 어떤 연령대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즐겨 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종종 사람의 두뇌로는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의 홍수’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면 사람은 어떤 것도 선택하기 힘든 무기력에 빠진다”고 말한다.

회사원 김수정(여·27) 씨의 사례는 정체성 결여가 선택장애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김씨는 “나 자신만의 의견으로는 어떤 일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며 답답해했다. 김씨는 지난여름 원피스를 사러 백화점에 갔다. 각 층의 매장을 꼼꼼히 살폈고 마음에 드는 옷은 직접 입어봤다. 그때마다 확신이 들지 않아 내려놓았다. 같은 매장을 다시 찾고 또 찾는 일이 반복됐다.

이렇게 결정을 못 내린 것은 자기 의견보다 친구들의 의견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옷을 입어볼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이어 스마트폰으로 SNS 대화방에 사진을 올려 친구들의 의견을 구했다. 친구들은 맵시 등을 따지며 다양한 의견을 올렸다. 의견은 서로 갈렸다. 김씨는 어느 의견을 따라야 할지 몰라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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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현 |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차정은 | 고려대 국어교육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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