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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미생에서 완생으로? 2015년판 노동의 새벽

“서류전형 60번 탈락 심리상담도 받아”

‘88만원 세대’ 구직 체험기

  • 강순태(가명)│2012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서류전형 60번 탈락 심리상담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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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몇 시에 일어나건 관계없는 사람
  • ● 단 하루라도 저기서 일하고 싶다
  • ● 참담했고 피폐했고 절망했다
“서류전형 60번 탈락 심리상담도 받아”
몇년 전부터 내가 아는 학과 동기들은 취업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기업 입사시험이 난공불락이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대학을 마친 뒤 선후배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업이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고, 하고 싶은 열망도 강했다. 인터넷과 관련된 일이었는데 여러 전문가가 “괜찮은 아이템이네”라고 칭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그렇게 1년9개월간 청년 사업가로 별다른 삶을 살았다.

“창업하는 남자랑 만나지 말래”

결론적으로 나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창업 연어’가 되지 못했다. 불안정한 현실에, 불확실한 미래에, 월 20만~30만 원의 턱없이 적은 수입에 버텨내지 못했다. “아빠가 창업하는 남자랑은 만나지 말래”란 여자친구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기업가 정신’을 들먹거리며 여자친구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세상사람 1000명 중 999명은 평범한 일상을 동경한다’는 걸 알게 됐다. 창업 초기 스스로 ‘배포 있는 꿈을 꾸는 1인’이라며 우쭐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하지 않은 1인’이라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창업이라는 고된 길을 계속 걸을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2014년 찌는 듯한 여름, 결국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진심으로, 나는 ‘취업시장에서 잘 팔릴 신상’인 줄 알았다. 기업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문과계열이고 변변한 자격증도 없지만, 근 2년간 회사를 키워낸 경력으로 밀어붙이면 될 줄 알았다. ‘도전 정신’ ‘실무형 인재’… 이런 식으로 인사담당자에게 어필하지 뭐,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었다. 나는 무려 60곳이 넘는 회사의 입사시험에서, 그것도 모두 서류전형에서 무참히 탈락했다. 혹여 서류전형 합격 메시지가 올까, 오매불망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건만, 기다리는 문자는 오지 않고 엉뚱하게 대출 광고 문자만 왔다. 내 삶은 점점 피폐해갔다. 현실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면접 보러 와달라는 몇몇 회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나는 매년 가을을 기다렸다. 가을은 ‘희망이 담긴 건전한 공허함’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 2014년 가을은 내게 절망 그 자체였다. 나는 ‘10시에 일어나건, 12시에 일어나건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취업 전패’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슬픔이라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자격증 시험 학원과 토익 학원에 등록했다.

각종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던 중 친구가 코엑스에서 진행하는 ‘2014 외국인 투자기업 채용박람회’에 가자고 했다. 박람회가 도움이 될지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가보기로 했다. 박람회를 위해 3일에 걸쳐 참가기업 리스트를 뽑아 분석했고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국·영문으로 준비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도 다듬었다.

“지원 불가입니다”

박람회는 취업준비생으로 인산인해였다. 7대 3으로 여성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여성은 면접을 위해 면접 화장을 따로 받는다고 했다. 아침부터 비싼 메이크업을 받고 박람회에 참여했다고 하니 왠지 더 절실해 보였다. 그러나 나 또한 그들처럼 취업이 절실했기에 남보다 두 배로 박람회장을 돌아보자고 결심하고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평소 관심이 있던 소프트웨어 판매 회사의 부스로 향했다. 그 회사는 소프트웨어 영업 직원을 채용하고 있었다. 나는 창업기간에 IT 관련 영업을 했기에 해당 직무에 자신 있었다. 채용 담당자와의 긍정적인 대화를 고대하고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라고 합니다. 이력서 드리겠습니다.”

담당자는 내 이력서 곳곳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주로 학과, 영어 성적, 경력 사항에 표시를 하는 것 같았다. 담당자가 이력서를 검토하는 동안 ‘우리 회사를 평소 알고 있었나요?’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할 거라 생각하고는 준비한 답변을 되뇌었다.

그러나 담당자의 첫마디는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 님은 지원 불가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 회사 제품이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공대 출신만 뽑는다는 것이었다. 약간 열이 받쳤다. 그리고 이력서의 경력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저는 문과 출신이지만 졸업 후 IT 관련 영업을 했습니다.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었지만 저 나름대로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IT 관련 공부를 했습니다. 이 회사는 공대 출신 신입이 들어온다고 교육 안 합니까? 저도 교육 받을 수 있고 똑같이 배워서 소프트웨어 영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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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태(가명)│2012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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