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슈 분석

“지금부터 제압합니다 많이 아프면 말씀하세요”

도둑뇌사·강제키스 사건으로 본 정당방위 논란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지금부터 제압합니다 많이 아프면 말씀하세요”

2/3
에 대해서는 맨손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깨진 병으로 대항한 것은 ‘사회통념상 그 정도를 초과한 방어행위’라고 판단했다.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방위행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것’이어야 하며 ‘사회윤리에 위배되지 않은 상당성이 있는 행위’여야 한다. 상대의 피해 또한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위급한 상황을 벗어났다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A가 칼을 들고 B를 찌르자 B가 그 칼을 빼앗아 반격해 A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도 B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 1984.1.24, 83도1873). 이미 칼을 빼앗았으므로 위급상황에서 벗어났다고 본 것이다.

도둑뇌사 사건과 더불어 최근 관심이 집중된 정당방위 관련 사건이 강제키스 사건이다. 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은 강제로 키스한 여성의 혀를 깨물어 2cm가량 절단한 것은 ‘법익 침해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시했다. 키스한 여성은 체중이 80kg이고 키스당한 남성은 50kg으로 덩치 차이가 컸더라도 “여성의 어깨를 손으로 밀치거나 다른 일행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의 방법도 있었다. 혹은 혀를 가볍게 물 수도 있었다”고 봤다. 역시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준을 벗어났고, 상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이 정당방위 인정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도둑뇌사 사건의 1심 판결도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도둑이 완전히 제압돼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이 종료됐음에도 계속 폭행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 인정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당방위 불기소 본 적 없다”



대법원이 정당방위라고 인정한 14건의 사례를 살펴보면, 2000년 이후 선고된 판례 5건은 모두 경찰이나 검찰의 불법체포에 대항해 상해를 가한 경우다. 수사기관의 불법체포에 대한 대응의 경우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로 인정한 셈이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일명 ‘변월수 사건’, 즉 야간에 인적 드문 곳에서 강제추행을 당하자 범인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도 정당방위 판례 중 하나다(대법원 1989.10.10, 89도623). 이 밖에 폭행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아래와 같다. 모두 정당방위로 유발한 피해 정도가 가볍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간에 술에 취한 피해자가 피고인 차량 앞에 뛰어들어 함부로 타려 하고, 항의하는 피고인의 바지춤을 잡아당겨 찢고 피고인을 끌고 가려 함. 이에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피고인이 피해자 양 손목을 약 3분간 잡아 눌렀음. (대법원 1999.6.11, 99도943)

△피해자로부터 깨진 병에 찔리고 이유 없이 폭행당해 방 밖으로 도망쳐 나옴. 피해자는 쫓아 나와서까지 폭행. 이에 피고가 피해자 멱살을 잡아 흔들고 서로 붙잡고 밀고 당김. (대법원 1989.10.10, 89도 623)

△피해자가 차로 자신의 아버지를 치려 하자 차를 세우려 창문으로 피해자의 머리털을 잡아당겨 흉부에 약간의 상처 입힘. (대법원 1986.10.14, 86도1091)

△피해자가 외상술을 마시고 접대부와 동침을 요구. 피고인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어와 소변까지 보고 피고인을 집단구타. 이에 피해자를 업어치기 식으로 넘어뜨려 전치 12일의 상해 입힘. (대법원 1981.8.25, 80도800)

△자신을 자전거 절취범으로 오인한 군중에게 아니라고 외쳐도 무차별 구타. 소지한 손톱깎이에 달린 줄칼을 휘둘러 전치 1주일의 상해 입힘. (대볍원 1970.9.17, 70도1473)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정당방위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고,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사 출신 조규홍 변호사는 논문 ‘정당방위의 상당성의 의미 및 구체적 판단기준’(법조, 2001년 6월)에 ‘검사로서 약 18년간 일하는 동안 정당방위를 인정해 불기소한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실무상 아예 정당방위는 잘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에 의해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정상 참작할 점이 있으면 기소유예하면 된다는 식의 수사를 해온 것으로 기억된다’고 썼다.

조 변호사는 ‘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형법 분야에서 다른 것은 선진국과 비교해 차이가 없는데, 유독 정당방위만은 많이 뒤떨어져 있다”며 “일본의 판례를 보면 사건 당시 상황을 매우 미세하게 분석해 정당방위 여부를 철저하게 가려내지만, 한국 판례는 사실 행위를 자세히 분석하지 않고 대충 감으로 판단한 듯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도둑뇌사 사건에서도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가 쟁점 중 하나다. 김병수 교수는 “청년이 도둑의 흉기 소지 여부를 알 수 있었는지, 어머니나 누나 등 다른 가족의 피해 여부를 알 수 없는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 등을 따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지금부터 제압합니다 많이 아프면 말씀하세요”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