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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2말3초’ 대졸 구직자들의 ‘취업절벽’

  •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naver.com

“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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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명문대 출신도 나이 많으면 탈락”
  • ● ‘남 30세, 여 28세’가 채용 가이드라인
  • ● “연말까지 하루하루가 공포”…부모 세대도 휘청
  • ● “취업 이력서에 나이 항목 없애야”
“이 나이 먹도록 뭐했죠?”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

취업준비생들이 채용박람회에서 면접을 본다.

삼수 끝에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모(30) 씨는 스물일곱 되던 해 졸업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그도 열심히 직장을 구했다. 삼수 탓에 조금 늦어졌지만 학벌도 나쁜 편이 아니고 토익 점수도 높아 금방 취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씨는 졸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취업준비생 신세다. 수백 장이 넘는 입사원서를 썼지만 최종 면접까지 가본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요즘 김씨는 패인(敗因)을 ‘나이’에서 찾는다. 지난 3년 동안 ‘스펙’은 나날이 좋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류전형 통과율은 해마다 떨어졌다. 그는 “나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 치료도 받는다”고 말한다.

29~32세, 절벽에 서다

청년실업이 만성화하면서 20대 말~30대 초반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취업절벽은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매년 유입되는 어린 졸업생들에게 점점 밀려나 결국 나이로 인해 취업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29~32세 연령대의 수많은 이가 요즘 천길 낭떠러지의 취업절벽 위에 서서 불안감 속에 좌절하며 자포자기하고 있다. 특히 남자 32세, 여자 30세는 한 살을 더 먹는 올해 12월 31일까지 하루하루 가는 게 공포라고 한다. 올해를 넘기면 그나마 실낱같은 취업 가능성마저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이들 2말3초 취준생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서도 나이를 문제 삼는 질문을 많이 들었고 결국 나이로 인해 떨어졌다고 믿고 있었다. 인턴사원 채용에서 나이 차별은 더 극심하다고 했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모(30) 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구직 준비가 늦어졌다. 박씨는 고령이라는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스펙 쌓기에 집중했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 6개월 인턴경험, 금융자격증 등을 차근차근 확보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서류전형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잦아졌다. 28세 때는 기업 100곳 중 30곳에 붙었지만 30세 때는 100곳 중 10곳에 붙었다고 한다. 박씨는 요즘 ‘과연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라는 숫자는 바꿀 수 없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양모(29) 씨는 취업준비 3년차다. 그는 세 군데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졸업 후 공백 기간이 있는 구직자는 불리하다’는 불문율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이런 자신도 고령자 기피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많아도 경력이 있으면 감안해줄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채만 준비할 걸 그랬다”고 했다.

많은 구직자는 나이가 입사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9세 이상 구직자 열에 여덟(77.5%)은 “나이가 채용 여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고 답했다.

“장유유서 유교문화 탓”

실제로 채용 면접에서도 나이를 자주 문제 삼는다.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강모(31) 씨는 “모 기업 면접 자리에서 ‘이 나이 먹도록 인턴 한 번 안 하고 뭐했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다른 면접자들도 함께 있는데 굴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커리어의 조사에서 29세 이상 구직자의 절반 이상(53.3%)은 면접에서 ‘나이 어린 상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나이까지 취업을 안 한 이유가 무엇인가’와 같은, 나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 4명 중 1명은 “만 30세 이상 지원자는 무조건 탈락시키거나 감점을 줬다”고 답했다.

기업이 20대 말~30대 초 구직자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입사 후 나이로 인해 팀워크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결격 사유가 있어 그동안 취업을 못했을 가능성이 주로 꼽힌다. 모 건설회사 인사담당 직원 김모(31) 씨는 “지원자가 수만 명씩 오니 학벌, 나이 기준으로 우선 걸러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30세, 여자 28세 이상은 뽑지 말라’는 취지의 인사지침이 내려올 때도 있다”고도 했다. 기업이 생각하는 신입사원 적정 나이는 남자 28세, 여자 26세라고 한다(잡코리아 조사).

기업의 이러한 나이 차별은 현실과 괴리돼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계속되다보니 기업의 신입사원 적정 나이를 넘어선 남자 29세 이상, 여자 27세 이상 구직자는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친다. 이들은 나이가 몇 살 많다는 차별적인 이유로 근로의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받는 셈이다. 또한 이 대열에 매년 새로운 청년들이 추가로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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