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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재상의 힘은 곧 국력

  • 김영수 | 사학자·‘史記’전문가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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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중국의 3000년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제왕들의 역사와 연대기, 제후국들의 권력 승계 과정, 역대 제도와 문물의 연혁,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전기 등 내용이 방대하다. 2100여 년 전 한나라 무제 때 기록이지만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대목이 많다.
  •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난항을 겪은 게 인사다. 그중에서도 총리 자리를 놓고 혼란이 컸다. 진통 끝에 2월 말 어렵사리 국회 인준을 통과한 이완구 총리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사기’에 등장한 역대 명재상에게 재상의 길을 묻는다.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마을 제사에서 진평이 고기를 나누는 광경을 그린 ‘진평분육도’.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 패권을 다투던 초한쟁패(楚漢爭覇) 때 유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절묘한 계책을 내놓아 난관을 헤쳐나가게 도운 진평(陳平)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지낭(智囊), 즉 꾀주머니였다. 진평은 그저 그런 꾀돌이가 아니었다.

진평은 젊어서부터 포부가 대단했다. 한번은 마을 제사에서 사람들에게 고기를 나눠주는 일을 맡은 적이 있다. 진평은 정말이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고기를 나눠줬고,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칭찬했다. 여기서 ‘진평이 고기를 나눠준다’는 유명한 고사성어 ‘진평분육(陳平分肉)’이 나왔다.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동네 어른들은 모두 진평을 칭찬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던지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하를 나누라고 해도 그렇게 공평하게 잘 나눌 텐데!” 자신은 마을 제사에서 고기나 나누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말이기도 하고, 천하의 일을 맡겨도 얼마든지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함께 묻어나는 한탄이기도 했다.

“재상 하는 일은 무엇이오?”

진평이 마을 제사에서 고기 나누는 일을 맡은 것을 ‘주재(主宰)’라고 한다. 고기 나누는 일을 주도했다는 뜻이다. 재상(宰相)이란 단어에서 ‘재(宰)’는 본래 고기를 고루 나눈다는 이 글자 뜻에서 기원한다. 제사에서 고기를 고루 공평하게 잘 나누듯이 나라 일도 그렇게 공평하게 잘 처리하는 자리가 바로 재상이라는 것이다. 다음 글자인 ‘상(相)’은 돕다, 보좌하다는 뜻이다. 합쳐 보자면 제왕을 도와, 또는 보좌해 천하의 일을 주재하는 자리가 바로 재상이다.

꾀돌이 진평은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하자 일등공신의 반열에 올랐고, 소하(蕭何)·조참(曹參)을 거쳐 여태후(呂太后) 때 마침내 자신이 호언장담한 대로 천하의 일을 주재하는 재상(당시 명칭은 승상(丞相)) 자리에 올랐다. 여태후 집권 때는 공신들에 대한 감시와 박해가 심했다. 진평은 여태후의 경계를 풀기 위해 늘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다가, 그가 죽자 바로 여씨 세력들을 소탕한 다음 문제(文帝)를 추대해 주발(周勃)과 공동 재상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덕정(德政)과 인정(仁政)으로 정국을 안정시켜갔고, 이로써 한나라를 정권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병목 위기에서 구했다. 하루는 문제가 조회석상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1년에 형사 사건으로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주발은 당황하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어 문제는 1년의 재정 수입과 지출 상황을 물었다. 주발은 이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자 문제는 좌승상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진평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건 담당하는 관리가 따로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문제가 담당 관리는 누구냐고 묻자 진평은 “폐하께서 형사 사건 판결에 대해 궁금하시면 정위(廷尉)에게 물으시면 되고, 재정이 궁금하시다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다면 재상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진평은 문제에게 절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께서 어리석은 신에게 재상 자리를 맡겨주셨습니다. 무릇 재상이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며 음양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제때에 성장하도록 살피며,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어루만지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가까이 따르게 하며, 경대부(卿大夫)로 하여금 그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평의 이 대답에 문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승상 주발은 크게 부끄러워하여 조회에서 물러나온 다음 진평을 원망하며 “그대는 어째서 내게 진작 가르쳐주지 않았소?”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진평은 웃으면서 “그대는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승상의 임무를 모르시오? 만약 폐하께서 장안(長安)의 도적 수를 물으셨다면 그대는 억지로 대답하려고 하였소?”라고 면박을 주었다. 주발은 자신의 능력이 진평에 훨씬 못 미침을 알고는 병을 핑계 삼아 재상의 자리를 내놓았다. 이로써 진평은 유일한 재상이 됐다.

임금보다 부자였던 관중

중국 역사에서 재상에 해당하는 자리가 생긴 이래로 약 80개 왕조에 1000명이 넘는 재상이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 중 재상 본연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한 사람들을 일컬어 명재상이라 하는데 대체로 다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개혁 혁신형 재상으로 전국시대 최고 개혁가로 꼽히는 상앙(商?)을 비롯해 송나라 때 신정(新政)을 주도한 왕안석(王安石), 명나라 때의 개혁 재상 장거정(張居正)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최고 통치자에게 바른말을 잘 하는 직간(直諫)형으로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諸葛亮), 당나라 태종 때의 위징(魏徵), 청나라 때의 범문정(范文程), 저 멀리 하나라 때의 관용봉(關龍逢), 은나라 때의 비간(比干) 등을 들 수 있다.

셋째는 곧은 심지를 지킨 절개형으로 나라가 망했음에도 끝까지 원나라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다 죽은 남송의 문천상(文天祥), 망한 명나라를 끝까지 지키려 한 육수부(陸秀夫)와 사가법(史可法)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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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史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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