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텔레마케팅 사기 치고 선행표창 실형선고 후 ‘사실상 탈옥’

두 얼굴의 女사기범 신출귀몰 행적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07-22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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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마케팅 사기 치고 선행표창 실형선고 후 ‘사실상 탈옥’
    ‘신동아’는 6월호(‘기부사칭’ 주의보-‘후원’이라더니 ‘상품 판매’)에 기부모금을 사칭한 새로운 방식의 텔레마케팅 조직 H사 등의 문제점을 보도했다. 이들 조직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후원을 요청하는 형식으로 온라인 교육 동영상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일부 장애인단체를 통해 기부금 영수증까지 발부했기에 소비자들은 프로그램 구입을 ‘후원’으로 여겼다. 경찰과 국세청 등은 이 단체들의 위법 및 탈세혐의에 대해 내사(內査)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들 조직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

    보도 이후 신동아에 이들 조직과 관련한 새로운 제보가 속속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내용은 과거 이들 조직의 핵심 임원이 사기 등 범죄행위로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잠시 풀려난 틈을 타 도주했다는 것. 이 도주범은 30대 후반 여성 박○○ 씨로, 경기도지사 표창장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년 6월 刑 받고 구속

    사실이라면 사정당국의 재소자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을 뿐 아니라, 경기도가 사기범에게 표창장을 주는 행정적 오류를 범한 셈이 된다. 이 여성은 누구이고, 기부모금 사칭 텔레마케팅 조직과는 어떤 관계일까.

    이 여성에 대한 추적은 한 제보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제보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기부모금을 사칭해 영업을 하는 이들 단체는 예전부터 텔레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해오던 조직이다. 특히 텔레마케팅 사기 수법은 대부분 박씨의 머리에서 나온다. 박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가 출산을 이유로 풀려난 후 아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슨 수를 써서 풀려났는지 모르겠지만, 탈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완이 정말 좋은 여자다.”

    박씨는 1979년생으로 올해 만 36세다. 취재팀은 그의 범죄 사실부터 확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텔레마케팅 조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1만여 명으로부터 126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가로챈 업체의 대표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범죄 혐의는 사기 및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차량용 블랙박스와 콘도미니엄을 미끼 상품으로 내건 이들 조직의 범죄 수법은 교묘했다. 대기업을 사칭해 “신제품 출시 기념행사에 당첨돼 차량용 블랙박스를 공짜로 줄 예정인데, 금융감독원의 감시 때문에 일단 대금을 결제하면 매달 분할해 돌려주겠다”고 속였다. 블랙박스를 구입한 지 1년이 지난 회원에게는 “10년간 추가로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처음 결제한 보증금이 상실돼 환급받지 못하고, 고액의 위약금을 내야 하며, 금융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또한 콘도 회사를 사칭해 그 회원들을 대상으로 “콘도를 새로 인수했는데 기존 보유 지분을 포기하고 새로 결제하면 일정 기간 후 기존 결제금액까지 포함해 환급해주겠다. 그러지 않으면 회원자격이 상실되고 위약금을 물리거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속여 거액을 뜯어냈다.

    텔레마케팅 사기 치고 선행표창 실형선고 후 ‘사실상 탈옥’
    수사 받으면서 다른 조직 운영

    박씨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남동생과 제부 등을 임직원으로 앉히고 제부와 여동생 명의의 계좌를 통해 거액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범죄 행각은 2010년 8월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당시 언론은 ‘차 블랙박스 당첨됐다…120억 사기 10명 입건’ 등의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2012년 11월 기소된 박씨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3년, 벌금 7000만 원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6개월 뒤인 10월 2심에서 3년 6월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경찰에 사기 행각이 적발된 2010년 8월 이후 지난해 4월 법원의 1심 판결 전까지 3년여 동안 박씨가 남긴 행적이다. 그는 이 기간에 H사(구 P사)의 안양지사 텔레마케팅 조직을 새로 꾸리고, 이 회사의 평생교육원 원장도 맡았다. 그의 또 다른 남동생은 이 회사의 지분 일부를 갖고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씨의 공범으로 기소된 서모 씨(교육실장)는 1년간 대표이사,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씨의 제부 김모 씨는 3년간 사내이사를 맡는 등 박씨의 조직이 H사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도 확인됐다. 1만여 명의 피해자를 울린 텔레마케팅 사기 조직이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버젓이 또 다른 텔레마케팅 조직에 관여한 셈이다.

    이후 박씨는 H사 평생교육원장 자격으로 전국 지자체와 경찰서를 돌며 소외계층이나 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한 ‘나눔교육문화 실천운동 협약식’을 체결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대외적으로 선행활동을 이어갔다. 덕분에 2011년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로부터 ‘선행도민 표창장’도 받았다. 그에게 표창장을 주도록 추천한 곳은 경기도 지방자치 담당 부서. 추천사유는 ‘평생교육원 대표로 재직하면서 2011 평화통일염원바자회 전국장애청소년예술제를 비롯, 각종 나눔교육 행사를 펼쳤다’는 것. 경기도 관계자는 “박씨가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았거나 범죄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지자체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대외활동을 평가해서 표창장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씨를 중심으로 한 텔레마케팅 조직은 2013년 7월, 별도로 H사와 유사한 법인을 만들어 독자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법인 대표는 강모 씨. 지분도 100% 강씨 앞으로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강씨는 박씨의 실질적인 남편이다. 법적으로 혼인신고만 돼 있지 않을 뿐 사실혼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박씨가 그동안 관여해온 텔레마케팅 회사나 평생교육원 등 관련 법인의 등기부등본 등 공개된 자료 그 어디에서도 박씨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H사의 실질적인 소유주로 알려진 박△△ 씨도 비슷하다. 박△△ 씨는 회사 내에서는 ‘회장’으로 통하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다. 등기상 아무런 자리도 맡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인 지분도 100%가 그의 어머니 김모 씨 소유로 돼 있다. 대표이사는 급여를 받는 경영인으로 수시로 바뀌었다. 올해 3월 취임한 서모 대표는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권을 (박 회장으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런 취지에서 회사 지분 15%도 넘겨받았다”고 말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현재는 “사회공헌을 위한 재단법인 설립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1월에 집 나가 안 들어왔다”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당연히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야 할 박씨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가 법원에 신고한 주소지는 안양시 동안구 소재 L오피스텔 15층 XX호. 하지만 이곳엔 오래 전부터 세입자들이 살고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박씨와 사실혼 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강씨와 계약했다는 세입자는 “지난해 2월 계약하고 들어왔는데, 이전에도 (박씨가 아니라) 다른 세입자가 살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씨 앞으로 가끔 광고안내 우편물 같은 것이 배달된다고 한다.

    세입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 오피스텔이 강씨 소유인 건 맞는 듯한데, 강씨의 주소지는 같은 오피스텔 8층 XX호다. 우편물 함에 쌓인 우편물 등을 감안하면 이곳에는 상당 기간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박씨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안양시 만안구 소재 아파트에 가봤다. 마침 집 안에 누군가 있었다. 처음에 자신을 박씨의 어머니라고 밝힌 이 여성은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갑자기 이모라고 말을 바꿨다.

    ▼ 박○○ 씨는 지금 어디에 있나.

    “글쎄, 잘 모른다. 1월엔가 언젠가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왔다.”

    ▼ 교도소에 있다가 나왔다던데.

    “그렇다.”

    ▼ 강○○ 씨가 박씨의 남편인가.

    “같이 조금 살기는 했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다.”

    강씨의 행방과 박씨의 동생들에 대해 묻자, 이 여성은 더 이상 답변을 거부하고 문을 거세게 닫고 들어가버렸다.

    “해외 밀항 소문 돌기도”

    박씨는 교도소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는 2013년 초 첫째(아들)를 낳고, 지난해 12월 말 둘째(딸)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실형선고를 받을 당시 그는 임신 7~8개월 상태였다.

    사법당국 관계자들은 “피의자가 임신 중이라 하더라도 형이 확정되면 대부분 교도소에 수감돼 교도소 내에서 출산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외부로 나가는 게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교도소 수감자 관리는 법무부 교정본부 소관이다. 법무부에 박씨가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박씨가 현재 국내 교정시설에 수감돼 있지 않다는 사실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박씨의 사기 사건 수사를 담당한 수원지방검찰청 측에서 일부 경위를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심리 도중 박씨가 출산 등의 이유로 대법원으로부터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왔다.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결정을 내린 것은 올해 1월 15일이고,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은 기간은 2월 2일까지다. 그런데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았다”. 박씨는 지금 형 미집행자 상태로, 해당 지청에서 지명수배 및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박씨의 두 자녀와 강씨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강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텔레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인가, 꽤 오래전부터 사내에서 강씨를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씨가 가족과 함께 다른 나라로 밀항했다는 소문도 들린다”면서 “도피 자금도 충분하고 조직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H사 측은 박씨와의 관계에 대해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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