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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평양은 이북 아닌 요동에 있었다!”

‘잃어버린 땅’ 고구려 고토(古土)를 가다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수도 평양은 이북 아닌 요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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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국사기의 ‘東’자를 해석하지 않은 역사학계
  • ● 지안(集安)엔 국내성 아닌 황성이 있었다
  • ● 장수태왕은 이북 평양으로 천도한 적 없다
  • ● 말로만 식민사관 탈피, 실제론 일제 史觀에 묶여
“수도 평양은 이북 아닌 요동에 있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오랜만에 찾아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가 그러했다. 밝아지고 화려해지고 북적였다. 이유는 한국인이 풀어놓는 ‘돈’ 때문인 듯했다. 2003년 중국이 펼치는 동북공정이 알려진 후 수많은 한국인이 광개토태왕비 등이 있는 지안을 찾아왔다. ‘한국인의 성지’가 된 탓에 지안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7월 1일 지린시 인근의 한 다리에서는 고구려-발해 역사 탐방에 나선 한국의 지방공무원들을 태운 버스가 추락해 10명(운전자 포함하면 11명)이 숨졌다. 이 소식을 들은 최두영 지방행정원장은 지안으로 날아가 사고를 수습하다 7월 5일 투신자살했다.

과거 지안에는 꼬질꼬질한 지안호텔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도시에나 있을 법한 홍콩성호텔[香港城大酒店]의 불빛이 번쩍인다. 최 원장은 이 호텔에 묵었다가 자살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지안박물관은 몇 해 전만 해도 매우 초라했다. 그런데 지금은 ‘해자(垓字)’ 모양을 한 작은 연못을 두른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압록강이 휘돌아가는 첩첩산중인 지안에는 ‘한국인’만 오는데, 그들이 쓴 돈으로 지안은 환골탈태했다. 바뀐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안박물관에 들어가니 바로 한국인을 알아본 직원들이 따라붙으며,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슬쩍 찍는 것을 보면 불러 세워 삭제하게 했다. 이전 박물관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들은 동북공정을 의식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고 그런 모조품을 펼쳐놓고 ‘중국 고구려’ 운운하는 설명만 잔뜩 달아놓았는데, 뭐가 두려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가. 전시 내용이 한국에 알려질 경우 일어날 반발을 염려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인으로부터는 돈만 벌고, 중국이 생각하는 고구려사를 한국인에게 주입하겠다’는 것인가.

고조선 ‘고’자도 안 보여

내몽골자치구와 맞닿은 랴오닝성 젠핑현 우하량(牛河梁)은 한국에서 가기엔 매우 멀다. 베이징(北京)이나 선양(瀋陽)공항에서 자동차로 꼬박 하루를 달려야 한다. 그런데도 그곳을 찾는 것은 고조선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하량 일대에서는 후기 구석기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이러한 유물과 유적은 내몽골자치구 츠펑(赤峰)시 인근에 있는 홍산(紅山)에서 먼저 나왔기에 ‘홍산문화’로 통칭된다.

홍산문화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이 황하(黃河) 중류에서 일어난 오르도스 문화다. 오르도스 문화는 바로 하(夏)-상(商)-주(周)나라의 중국 역사로 이어진다. 중국 고대 문헌에는 오르도스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 제법 있다. 그러나 홍산문화 기록은 전무해, 홍산문화는 요동(만주)과 한반도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한국인은 우하량에 흥분한다.

우하량에서는 눈동자에 녹색 옥(玉)을 박고 흙으로 빚어 구운 여성의 얼굴상(像) 등과 곰 이빨을 박아서 만든 곰상(熊像)의 파편 등이 발굴됐다. 두 개의 상(像) 앞에 제물로 올려진 것 같은 돼지 뼈 등이 함께 발굴됐기에 학자들은 우하량에 살던 이들이 여성(여신)신과 곰을 숭배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분석은 환웅(桓雄)족과 결혼동맹을 맺어 단군을 낳은 웅녀(熊女)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삼국유사 등에 거론된 고조선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기에, 뜻있는 이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중국은 그러한 우하량에도 역사 공작과 돈벌이를 할 준비를 해놓았다. 적잖은 입장료를 받는 ‘우하량 유지(遺址)박물관’을 지어놓고 중국 역사에 흡수됐다고 꾸며놓은 홍산문화를 보여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곳에서는 고조선의 ‘고’자도 보이지 않는다.

숨 막히는 중국의 역사 공작이다. 답답한 심정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둘러보지 않으면 고조선의 역사 흔적을 볼 수 없기에 많은 한국인이 지안과 우하량을 찾는다. 중국의 역사 도발은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무대응에 요지부동이다. 새로운 연구는 하지 않고 일본 학자들이 과거에 내린 판단만 고수한다. 말로는 식민사관 탈피를 주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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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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