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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길드의 자손이여, 등 따습고 배부르나니

  •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길드의 자손이여, 등 따습고 배부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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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공부해보면 상속이 물질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무형의 재산도 상속되어 왔는데, 그 종류가 무척 많았다. 서양 중세의 길드(guild)는 구성원에게 무형의 특권을 물려줬다는 점에서 일종의 ‘의사(擬似) 상속제도’였다.
렘브란트의 1662년 작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Syndics of the Drapers’ Guild)’. 네덜란드 포목상 길드에서 옷감의 품질을 평가하는 회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렘브란트의 1662년 작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Syndics of the Drapers’ Guild)’. 네덜란드 포목상 길드에서 옷감의 품질을 평가하는 회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근대 이전 중국 일본·인도에도 길드, 곧 동업자 조합이 있었다. 특히 인도의 상인 길드는 동서양 간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중국의 상인 길드 역시 국내외 무역에서 지배권을 행사했다. 당나라 때 등장한 ‘행(行)’이 그것인데, 명나라 이후에는 더욱 특이한 형태로 발전했다. 중국의 대외 교섭창구에 해당하는 광둥 지방에 ‘공행(公行)’이란 게 존재했다. 일종의 특허상인 길드로 국제무역을 사실상 독점했다. 

중국과 인도의 상인 길드는 구성원 간 과도한 경쟁을 규제하는 동시에 교역권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서양의 상인 길드와 비슷하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성격의 동업조합이 운영됐다. 

그런데 유럽의 길드는 여타 지역의 길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생산과 분배를 통제함으로써 길드 구성원의 이익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행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유럽의 길드는 경제 조직이자 정치 조직, 아니 그 이상이었다. 

역사상 길드가 최초로 언급된 것은 779년에 기록된 카를 대제의 문서다. 당시 길드는 대규모 술잔치를 담당하는 주체였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종교 모임의 성격을 띠기도 했다. 길드는 공동제사와 공동주연(共同酒宴)의 조직으로 시작해 구성원의 상호부조와 친목도모, 사업독점, 내부경쟁 방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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